11월 28일... 드디어 남인도&스리랑카 26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원래는 중부인도의 뭄바이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는 여정을 계획 했지만 "인도소풍"여행사의 모객부족으로

"인도로 가는길"의 남인도&스리랑카로 계획을 변경하여..

다른 팀원 보다는 17만원씩을 더 주고(늦게 신청하여 비행기 표값이...) 참가하는 것이다..

쬐끔 불만 이지만 그래도 남인도도 어차피 나중에는 가야 하는 곳...나름 기대도 크다..

 

그동안 프렌즈 인도 책을 사서 이곳에 대한 공부도 틈틈히 하고 검색도 하고 스리랑카도 공부 하고...^^

대진의 신고하고 어제 만나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28일 아침.. 원래는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 이었으나 버스 시간이 변경되어

오전 10시 5분의 강남 가는 버스 타고 여행의 시작....

강남에서 지하철 9호선으로 김포역, 다시 공항철도로 환승하여 약속시간 보다 약간 늦은 1시 20분경에 인천공항 약속 장소에 도착..

인도로 가는길 관계자 만나서 발권하고 짐 부치고 출국수속하고, 면세점에서는 간단하게 1달간 양식(담배 1보루)사고

뱅기 타고 오후 3시 15분에 홍콩경유 뭄바이로 출발...

 

 

 

 

홍콩가는 비행기에서 본 미국 영화 "Letters to Julliet" .... 이태리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

 

작가 지망생 소피는 전세계 여성들이 비밀스런 사랑을 고백하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우연히 50년 전에 쓰여진 러브레터 한 통을 발견하고, 편지 속 안타까운 사연에 답장을 보낸다.
며칠 후, 소피의 눈 앞에 편지 속 주인공인 70을 훌쩍 넘긴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가 기적처럼 나타나는데…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어 50년 전 놓쳐버린 첫사랑 찾기에 나선 클레어.
할머니의 첫사랑 찾기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없이 따라나선 손자 찰리.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게 된 소피.
이런저런 고생 끝에 기적처럼 클레어 할머니의 옛사랑 로렌조를 다시 만나고, 

그 후로 소피와 찰리도 서로의 감정은 알지만 헤어 졌지만

두 노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약혼상태였던 소피는 약혼자(빅터)와 결별을 하고 두 노인의 결혼식에 참가하고 찰리를 만난다..

그곳에서 '페트리샤'라는 찰리의 사촌을 찰리의 연인으로 착각한 소피가 쓸쓸히 식장을 떠나려는 순간 찰리가 나타나 오해를 풀고

둘은 사랑을 확인하고 오랜 키스를....그리고 끝..

 

6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런 로멘스 영화에 몰입을 하고 보다니...^^ 

 

클레어 할머니의 명대사... "사랑을 얘기 할 때 늦었다는 말은 없다."...

 

오랫만에 영화 한편 보고 와인도 두잔 마셔주고..홍콩에서 두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홍콩에서 밤 9시 출발 뭄바이로..

6시간 정도 걸려서 뭄바이에 도착하니 후끈하고 열기가 밀려온다..아!!! 인도지...

짐 찾고 입국수속..일행과 같이 나와서 밤 2시에 인도 현지의 길잡이인 "엘리스 최"를 만나

프리페이드 택시로 Hira호텔에 도착하여 짐 풀고 ... 간단설명 듣고 나니 4시... 바로 간단취침...

 

 

 

 

 

홍콩의 첵랍콕 공항에서..

 

 

인도 뭄바이 공항을 빠져나와서..

 

29일 아침..

한국 습관대로 일찍 잠이 깨어 아침도 해결할겸 해서 간단한 차림으로 카메라만 메고 밖으로...

"성 테레사 교회" 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인 어슬렁거리기 여행의 시작..

아침 일찍인데도 엄청난 사람들과 길을 배회하는 소들...

짜이를 파는 노점상에서 한잔 사먹어보고 와와(??)라는 과일도 사서 먹어보고..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빵집에서 갓 구워낸 빵을 사고 바나나도 사고 다른사람들과 같이 길거리에서 빵을 먹었는데 맛이 좋다..

난 여행 체질 인가벼....^^   빵의 반 정도는 호텔로 가져와서 점심 예비용으로 하고..

 

 

"성 테레사 교회" 사거리..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다닌다...

 

 

20루피(약 380원)에 산 빵...

 

맨발로 다니는 어느 힌두승려(사두)..

 

호텔에서 간단히 씻고 짐을 호텔에 맡기고 우선 "도비가트(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빨래터)"로 50루피(한화로 약900원)로...

처음엔 어떤 택시가 100루피를 불렀는데, 다른 택시로 미터기를 사용해서 가니 46루피가 나와서 50루피를 줬다..

가는동안에도 사람과 차가 엄청 많고 소들도 많고 오토바이, 릭샤, 무단횡단,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비가트 가는 길의 풍경...무질서에 지저분한 건물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비가트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가 기다리느냐고 묻길래 그냥 보내고 도비가트 안으로 들어 가려니....

어떤 청년이 오더니 자기가 안내 해 주겠다고 한다....물론 공짜가 아니쥐~~~

둘이 30분에 600루피 주기로 하고 청년을 따라서 입장...그 지저분한 환경에서 깨끗한 빨래가 나오는데...

빨래를 말리는 곳과 삶는곳, 빨랫감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과 가져다 배달하는 사람들, 깔별로, 종류별로

 여러가지의 분업이 잘 되어 있으나 .. 그 들의 열악한 환경과 지친 표정, 불만섞인 표정,

떄로는 그 좁은 곳에서 아이들도 키우고, 기계라고는 탈수기 정도만 보이고

다림질 조차도 숯불 다리미를 이용 하는듯 보인다..그 좁고 어두운 곳에 간이 이발소도 눈에 뜨인다..

설명 들으면서 사진 찍으면서 나오니...걍~~ 멍~~~ 한 느낌이다...세상에 이런곳도 있구나...

 

 

다리위에서 본 도비가트의 모습..

 

 

 

 

 

 

 

 

빨래를 하는 모습..

 

 

이렇게 멋들어지게 짜이도 만들고...

 

 

 

간이 이발소도 보이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두 아이의 어머니...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말리고..

 

 

도비가트를 나와서 색다른 길거리의 모습 찍어주고 쉬다가 토마토를 사서 먹다가...마지막으로 다리 위에서 마지막 사진 찍어주고

바로 옆에 있는 기차역으로 와서 표사고(1인당 5루피)... 처치게이트 역으로 와서 구내에서 빵 두조각에 토마토를 먹고 쉬다가

11시반경에 택시를 타고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가 있는 꼴라바로...

 

 

 

 

 

 

 

거리의 이발사들...

 

 

꽃가게...

 

 

처치게이트 가는 표 사는 줄...

 

 

기차 안의 풍경..

 

 

1인당 5루피(약 90원)....싸서 그런지 표검사를 안한다..

 

 

처치 게이트 역 구내의 풍경...

 

 

 

꼴라바 구역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에 내렸다..

 

1924년 영국인들이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를 만들고 결국은 영국이 물러날때

이 게이트를 통하여 인도를 물러나 영국으로 갔다는 사연이 있는 유명한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란다...

또 바로 옆의 웅장한 타지마할호텔도 봐주고 사람들도 봐 주고 사진 찍어주다가 타지마할 호텔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휴식...그런데 이곳 스타벅스는 입장하는데도 짐검사를 한다...짜식들...

2008년 11월에 이곳 뭄바이에서 폭탄테러가 있었다나....^^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높이가 48m란다..

 

 인도황제를 겸하던 영국의 조지5세가 1911년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24년에 완공한 것이라고..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웅장한 '타지마할호텔'

 

인도의 대표적인 민족자본가인 '타타'가  1898~1903년에 지은 호텔로 입구나 객실의 창이 모두 바다쪽으로

향해 있어 당시의 관행으로는 파격이란다...왼쪽건물이 처음의 건물이고

오른쪽 건물은 1973년에 지은 신관건물...

 

 

웅장한 타지마할호텔 내의 스타벅스...

 

 

  쉬다가 나와서 가이드 북을 보면서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잘 지어지고 전시한 볼거리가 많은 '웨일즈 왕자 박물관'을 봐주고...

걸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바쁜 일상과 뭔지 모를 표정에 애틋한 마음이 인다..

 

 

아마도 경찰서로 기억되는 건물...

 

 

 

'웨일즈 왕자 박물관' 가는 길을 물었는데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는..

한국에서 왔다니까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대단한 미모의 인도여성..

아마 시집도 잘 가고 잘 살듯...나중에 사진을 보니 내입이 귀에 걸렸다...^^

 

 

'웨일즈 왕자 박물관'...

 

'웨일즈 왕자 박물관'은 영국의 조지5세가 1911년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졌지만

1923년 박물관으로 변경 되었단다..인도 네팔 티벳등 다양한 전시물은 볼거리로는 좋다..건물도 훌륭하고..

 

 

 

거리화가..

 

 

길거리에서 즉석에서 즙을 짜주는 달콤한 사탕수수 한잔(10루피)마시고

뭄바이대학(이곳은 입장불가)의 거대한 시계탑을 봐주고 고등법원의 고풍스런 건물 찍어주고

후따뜨마촉 사거리에서 고풍스런 건물들 봐주고 어떤 힌두사두의 이상한 얘기를 한귀로 흘리면서 들어주는 척 하고, 사진도 찍고....

뭄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식 건물이라는 성토마스성당(1617~1718년까지 100년에 걸쳐 완공),

또 길거리에서 한국의 호떡 같은 얘네들 길거리 음식 맛보고...먹을 만 하다..

 

즉석에서 즙을 짜주는 사탕수수 한잔(10루피) 사 마시고..

 

 

이곳에서 유명한 뭄바이 대학의 '라자바이'의시계탑..높이가 79.2m 란다..

 

 

뭄바이 대학의 북쪽에 있는 고등법원의 고풍스런 건물

 

 

고등법원의 고풍스런 건물

 

 

 

어떤 힌두사두...

 

 

후따뜨마촉 사거리의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지금도 많은 은행들이 이 일대에 있단다. 

 

 

 

 

뭄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식 건물이라는 성토마스 성당(1617~1718년까지 100년에 걸쳐 완공),

 

 

성토마스 성당의 내부..

 

 

 

'호니먼서클가든'문에서 본 거리...오래 된 곳이란다..

 

 

 '호니먼서클가든'의 풍경...모두가 평안해 보인다...

 

 

'호니먼서클가든'에 가서 쉬면서 얘네들 군상도 봐주고...쉬다가 조금 비싸게(무려 200루피) 택시를 타고 얘네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이며 아라비아해를 바라보며 길게 뻗은 "마린드라이브" 해변을 갔다...

4시반경에 도착한 해변에는 아직은 이르지만 곳곳에 아베크족이 각자 자리를 잡고, 멀리 뭄바이의 빌딩들은 서로의 키를 자랑한다..

한참 쉬면서 사진 찍으면서 젊은이들 노는거 보면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바다 속으로 잠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여행의 첫번째 일몰을 아라비아海에서 본다....

 

 

 

 

아기를 데리고 구걸에 나선 젊은이...표정이 묘하다...

 

 

이슬람족의 학생들...

 

 

길고 긴(약 4.5Km)... 마린드라이브의 해변..

 

 

 

 

 

 

 

마린드라이브에서 본 아라비아海 일몰...

 

배도 고프고...택시를 타고 Hira 호텔로 가서

인근의 식당에서 파스타와 후라이드치킨과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고 약속시간인 7시반에 호텔에 가니 모두들 와 있다...

모두 건물 옥상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 맞으면서 엘리스로 부터 이번 여행에 대한 간단한 설명...

그리고 모두들 짐을 들고 택시타고 세게문화유산인 CST역으로 가서 야간열차로 밤 10시 15분에 '고아'로 출발...

 

굉장히 고풍스럽고 사람 많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많은 현지인들이 호텔 바닥에 누눠있고 밥먹고 하는 CST역에서..

웨이팅룸에서 간단세수 하고 쉬다가 밤 10시 15분에 출발...하루종일 여유 부리면서도 바쁜 하루..

뭄바이의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인 '엘리펀트섬'은 다음 뭄바이에 올때 보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곳만 주로 보았다...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

 

 태어나 처음 타보는 침대열차...이것도 급이 많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내가 탄 걍~~ 3층의 침대열차, 다음으로 좋은 곳은 에어컨이 나오는 3층 침대.. 다음은 에어컨이 나오는 2층 침대열차...

요금은 급이 오를수록 따따블 이고 표 구히기도 어렵다고 길잡이는 말한다...믿거나 말거나..

암튼. 이 3층의 침대열차는 선풍기가 돌아가서 처음에는 걍 올라가서 잠이 들었는데 갈수록 춥다..

결국 배낭에서 긴바지와 긴옷을 입고 ..밤새 덜컹 거리고 춥고 시끄러운 기차안에서

그래도 자면서, 뒤척이면서, 태어나 처음인 야간침대열차를 탔다....^^

 

 

세게문화유산인 CST역...

 

세게문화유산인 CST역...밤에 와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CST역의 대합실...의자가 모자라서 걍~~ 바닥에서 잠자는 사람에, 밥 먹는 사람에,...무더위에 냄새에....ㅠㅠ..

 

 

  CST역...'고아'로 가는 기차...

 

 

기차의 내부...3층침대열차...

 

 

Give The Children A New World  / Dana Winner

 

 

 

 

 

 

용기를 내어 도전했던 26일간의 배낭여행..

물론 완전 나홀로 배낭여행이 아닌 '인도로 가는길'이라는 여행사를 통한 단체 배낭여행이다..

항공과 도시간의 이동, 그리고 숙소를 대행 해 주고, 나는 단지 식사와 도시 안에서의 이동이나 입장료만

열심히 챙기면 되는 조금은 쉬운 배낭여행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완전 배낭여헹도 도전해 보고 싶은 자신감도 생기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목표도 생기고 다음에는 좀더 멀고, 좀더 어려운, 하지만 조금더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은 여행을 꿈꾼다....

 

원래는 북인도를 생각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날자에 북인도 스케쥴이 나오지 않았고

또 언젠가는 남인도도 가야겠기에 남인도와 스리랑카가 같이 나온 상품을 택해서 여행을 시작했다..

 

13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3억 이상의 힌두신이 있다는 거대한 대륙같은 인도..

혹~~ 신도 만나보고 사람도 만나보자고 마음 먹었던 인도 여행...

그 어디에도 신은 안 보이고, 사람은 넘넘 많아서 안 보이고..빈 손으로 돌아왔다...

하긴 인도에 가서 무얼 얻겠는가...단지 허허로운 가슴만 더 키워 왔다...

 

대부분 인도를 여행 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인 두가지 라고 한다..

좋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이제껏 한국사람들이 접해 보지 못했던 풍광과 수 많은 유적들, 그리고 순수한 사람들..

여행하기에 좋은 여러가지 조건(특히 싼 물가와 교통비, 숙박비 등등)을 꼽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지저분하고, 사람들 많고, 거지들 많고, 덥고, 무질서 하고, 바가지 많고..

 

이번 여행을 하고 난 후의 나는 전자다...즉 언젠가는 또 한번 가고싶단 얘기..^^ 혹시나 하는 마음은 아직도 있다..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며

모 항공회사의 CF에 '세상 어디에도 없던 곳'이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후벼 판 곳이다..

동양의 진주, 인도양의 눈물, 신밧드가 찾은 지상낙원,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 짙게 우려낸 실론티의 고향 등등 이 모두가 스리랑카를 예찬 한 말 들이다..

 

이번 일정은 2013년 11월 28일 한국을 출발 하여 홍콩을 거쳐 뭄바이에 도착 하면서 부터 시작 했다..

뭄바이~고아~함피~마이솔~코친~바르깔라~깐야꾸마리~마두라이~뿌두체리~마말라뿌람~깐치뿌람~첸나이~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라~폴론나루와~담불라~시기리야~캔디~갈레~콜롬보~한국..

 이렇게 모두 26일간을 여행하고 12월 23일 저녁에 인천 도착..

 

  

 

처음 도착한 뭄바이의 호텔 근처 사거리에서...처음 본 소들의 도심 행진..

 

 

세계 최대의 빨래터라는 '도비가트'... 불가촉 천민이라는 최하층의 직업...

만나본 사람들은 걍~~ ~보통의 사람들...

 

 

거리의 이발사...

 

 

인도의 서민 교통수단인 기차를 타고 이동...1인당 5루피(90원)..

 

 

인도 뭄바이의 상징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뭄바이의 시내에서 만난 어느 사두(힌두교 성직자)...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뭄바이의 유명한 '마린드라이브'에서 본 '아라비아해'로 지는 태양...

 

 

뭄바이의 세계문화유산인 'CST역'...

 

 

고아의 '바가토르해변',,

 

 

고아의 '안주나'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과 소...아주 편안해 보인다..

 

 

고아의 아침.. 어느 길거리에서...사람이나 개나 집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듯...

 

 

올드고아의 대표관광지인 '붐지저스 대성당'...세계문화유산이다..

 

 

'붐지저스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성캐서린 성당과 수도원...이것도 세계문화유산이다..

 

 

함피에서 어느 사두도 찍어 주고...

 

 

가장 함피스러운 풍경..

 

 

함피의 대표선수인..'비루팍샤 사원'과 마을..

 

 

함피의 명물인 '바구니 배'와 멀리 보이는 '하누만 사원'..

 

 

함피의 유명한 '로터스마할'...아래 사진인 '빗딸라 사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이다..

 

 

세계문화유산인 '빗딸라 사원'의 상징인 돌로 만든 전차...

 

 

빗딸라 사원 안에서 기수련 중인 프랑스에서 왔다는 어느 여성....아들을 데리고 왔다..

 

 

남인도 어디에서나 보이는 풍경..사진의 위는 코코넛, 중간의 갈대 비슷한 것은 사탕수수..아래는 벼농사...

 

 

마이솔 '데바라자 마켓'의 풍경..염료를 파는 가게..

 

 

마이솔 '데바라자 마켓' 앞의 석류 파는 노점상..

 

 

마이솔의 대표 관광지 '마이솔 궁전'..

 

 

마이솔의 동물원...인면수심(人面獸心)아니라 인면수신(人面獸身)이다..

 

 

자인교의 최대성지 라는 '스라바나 벨라골라'의 나신상...

 

 

 

할레비두의 "호이살레스와라"사원..

 

 

할레비두의 "호이살레스와라"사원의 내부..

 

 

인도 4대무용중의 하나라는 '까따깔리' 공연 전 분장모습..

 

 

께랄라주의 관광대표인 수로유람...

 

 

 

 

 

코치의 명소인 '중국식 어망'..

 

 

유명한 바르깔라 해변..

 

 

바르깔라 해변에서 가동중인 이동식 힌두교의 의식..

 

 

 

 

바르깔라 해변에서의 일몰..

 

 

 

바르깔라역에서 만난 프랑스 에서 왔다는 다리 굵은 여인의 포즈..

 

 

 

깐야꾸마리의 '비베카난다 메모리얼'...

 

 

깐야꾸마리에서 마두라이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만난 성지순례 가는 아줌마 부대..

 

 

마두라이의 대표 관광지인 '스리미낙시 사원'

 

 

마두라이의 '나약궁전'에서..

 

 

 

마두라이의 한 시내에서 얼마 전 사망한 '만델라'의 사진을 걸어놓고 공산당 집회를 한다..

만델라와 공산당이 뭔 상관이 있는지...

 

 

뿌두체리의 '오로빌'..

 

 

뿌두체리의 '오로빌' 입구에 있는 이 나무는 가지에서 다시 뿌리가 내려와 이 일대를 점령한다...

 

 

마말라뿌람의 해변에서...소도 일광욕 겸..쉬고 있다..

 

 

 

마말라뿌람의 '빤치 라타스'..세계문화유산이다..

 

 

마말라뿌람의 '해변사원'...여기도 세계문화유산..

 

 

마말라뿌람의 밤바다 풍경..장노출로 후레쉬 없이 촬영..

 

 

깐치뿌람의 '바라다라자사원(Sri Varadaraja Temple)'..

 

 

깐치뿌람의 '카일라사나타 사원(Kailasanatha Temple)..

 

깐치뿌람의 '카일라사나타 사원(Kailasanatha Temple)'의 밖 풍경..

 

깐치뿌람의 '엑암베스와라 사원(Ekambaswara Temple)'으로 깐치뿌람의 대표선수라 할만하다..

 

깐치뿌람의 '엑암베스와라 사원(Ekambaswara Temple)'의 내부..

 

 

깐치뿌람의 '까막쉬 암만 사원(Kamaksh Amman Mandir)'..

코끼리에게 강복 받고 돈을 내면, 옆의 흰옷 입은 남자가 돈을 받고 있다..

 

첸나이의 '산토메성당'..

 

비행기에서 바라 본 스리랑카의 해변...우리나라의 동해 석호처럼 이곳 해변에는

이렇게 호수와 라군들이 많고 예쁘고 아기자기 하다...규모가 큰곳도 있고...

 

 

아누라다뿌라의 유명한 보리수 나무 근처에 모여서 기도와 강복 받으려고 기다리는 중..

이날이 이 나라에서 큰 불교행사중의 하나라고..

 

아누라다뿌라의 '루완웰리세야 대탑'..

 

 

아누라다뿌라의 '아바야기리 다고바'...

 

 

폴론나루와의 '갈 비하라'로 가는 중에 ..

 

 

폴론나루와의 대표인 '갈 비하라'...

 

 

담불라로 가는 길에서 찍은 어느 여행자...

 

 

담불라의 황금사원..

 

 

담불라의 동굴사원중에서 제1동굴...

 

 

스리랑카의 관광대표선수인 '시기리야'의 뒷편모습..

 

 

스리랑카의 관광대표선수인 '시기리야'의 앞모습..

 

 

스리랑카의 관광대표선수인 '시기리야'의 하일라이트인 미녀도....

 

 

'시기리야'에서의 어느 예술가...^^

 

 

 

벼 파종을 위해 논을 정비할때 백로들이 하얗게 내려와 먹이를 찾고 있다..

 

 

이곳에서 많이 나는 잭플루트..불치사 정원에서..

 

 

 

불치사에서 스님들의 독경후 촛불행진..

 

 

캔디호수의 백로들의 축하비행...

 

 

스리랑카의 남쪽 '갈레'의 어느해변..야자수 한 그루를 위해서 건물에 따로 구멍을 냈다...

 

 

세계문화유산인 '갈레포트'...

 

 

세계 어느곳에도 없는 이곳 만의 풍경...'갈레'에서 본 '외나무 장대 낚시'..

 

 

2004년 쓰나미가 와서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애도하는 기념비...

 

 

예쁜 해변의 풍경...

 

 

콜롬보 시내 어느 호수의 풍경...아베크족이 많다...

 

 

 

Wellcome to my world / Anitar Kerr Singers


 

 

갑오년 1월4일에 산우회 겨울 정기모임이 속초 한화콘도에서 열렸다..

정우신임 총무가 장소를 마련하고 저녁과 아침을 거하게...^^

강원도 동해에 눈에 온다는 예보에 망설였지만 차를 그랜져로 바꿔서 3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

 

기름 채우고 광우형과 출발하여 홍천을 거쳐 인제를 거치니 눈발이 조금씩 날린다..

미시령터널을 지나는데 쌓인 눈이 약간씩 늘고 제설차가 보인다...

마지막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5시반경에 호텔에 도착..

 

인천 형님과 천호동 형님내외분이 미리 오셔서 소맥을...^^

 

약속 시간인 7시 전에 모두 13명(인천형, 천호동 형님내외,광우형, 용우형내외, 우리둘,근우내외,재우,정우내외)이 모여서

서로 안부 묻고 인사하고 정우가 미리 예약한 식당(한산횟집)에서 미니버스가 와서 편안하게 고고...

푸짐한 안주를 먹으면서 소맥도 넘기고 여러가지 음식을 음미하며 본 메뉴인 회를 또 맛있게 먹고

서비스로 게도 나오고 묵은지에 싸먹는 맛도 굿이고...

암튼 신임총무의 노고에 박수를 짝짝짝....

 

 

 

 

 

 

오늘 참석 하지 못한 영동형과, 석우에게 아쉬움과 미안함이 든다....

오랫만에 취하도록 먹고 마시고 콘도로 돌아와

 

오늘 장소와 음식을 정우내외에게 수고비 전달... 

 

 

예년에 하던 신년맞이 윷놀이 대신 부부가 함께하는 게임을 하여 간단하지만 웃음으로 상품을 전달하고..

 

신임총무인 정우의 게임설명..

 

요런 게임을 했다는...^^난 3등..

 

 

 

 

 

 

 

 

2차로 남성들은 과메기에 소주와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하고...

여성 동지들은 와인으로 분위기를 돋우고..

얘기꽃이 넘넘 만발하여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더라...난 일찍 자느라고 모르고...^^

 

 

 

 

1월 5일 아침 7시전에 모두 일어나 볼일들 보고 눈 덮인 설악산 구경에 분위기는 Up되고..

모두 차에 올라 이곳의 명물인 순두부를 먹으러 출발...

 

울산바위가 앞에 떡~~하니 보이는 식당에서 다소 비싼 느낌(1인당 8,000원)의 순두부를 먹고

호텔로 돌아와 짐싸고 설악동을 향하여 고고..

 

콘도객실에서 본 전경...멋있다...새해벽두부터 대박~~~

설악동으로 출발하기전 단체 인증샷..

 

설악동으로 가는 차안에서 찍은 가로수...또 대박~~~

 

 

 

 

느낌 아니까~~~~

 

일찍 가야만 권금성 올라가는 케이블카 일찍 타고 또 모두 빨리 집으로 가야 하니까..느낌 아니까~~~~

눈을 가득 이고 있는 나무들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발걸음 가볍게 입장..

온통 하얀세상이 우리를 반기고 저마다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일찍 케이블 카에 올라 눈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 권금성이 쪼기 보이는 곳에서

다시한번 백설의 기쁨을 만끽하고 인증샷 날리면서 놀다가 ...

케이블카 타고 오르는 중...

 

울산바위와 신흥사와 큰 불상..

 

 

권금성을 향하여 오르는 중..

 

요게 권금성...

 

 

 

 

 

 

 

 

 

 

 

 

 

 

 

 

 

 

 

꼭 누에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

 

 

 

 

 

 

 

케이블 카 타는 쉼터에서 정우가 특별히 마련한 와인으로 정상주 한잔 씩하는 호사도 누리면서 즐거움은 입에서 떠날줄 모른다..

 

아래 사진은 울산바위의 여러 모습들...

아침 먹은 식당에서 본 울산바위..

 

 

권금성에서 본 울산바위..

 

 

 

위 사진 3장은 케이블카 타고 내려 오면서 찍은 울산바위, 그리고 신흥사..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신흥사로 가서 봐주고(입장료가 아까워서지..절떄루 신흥사가 보기 좋아서가 아니다..) 

 

 

 

 

 

 

입장료 받는다고 불상이 흘리는 눈물....신흥사 관계자가 이 눈물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디....^^

 

 

 

 

 

 

 

 

 

 

 

 

 

 

 

 

설악산의 상징물 앞에서 단체 인증샷 날리고 천천히 걸어서 주차장으로...

우리는 다보고 떠나는데 지금 입장하는 차가 주욱~~밀려있다..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리고 총무님이 미리 봐 둔 "점봉산산채"로 ....

 

 

 

 

 

 

"점봉산산채"에서 색다른 점심 먹고 콘도로 돌아와 서로 인사하고 1시에 각자 집으로...

난 3시반에 집에 도착...아주 즐거운 1박2일 이었다.....

 

올해도 늘 하는 신년맞이 관문트레킹을 다녀왔다..

다른것은 상열이가 회사사정으로 참석을 못한 점...

내년부터는 날자를 바꾸던지..아님 의무참석을 하게 해야 하는지...쩝~~

암튼 날이 푸근해서 편안하게 다녀왔다..

코스는 늘 하던대로 2관문 까지 갔다가 2관문휴게소에서 파전에 막걸리..그리고 컵라면..^^

 

 

 제1관문에서..

 

 

 

 늘 머무르던 원터..

 

 

교구정..

 

 늘 하던대로 제2관문에서..

 

 

 

 

 아주 예전 25년전쯤에 많이 놀았던 2관문 휴게소..

 

 

그리고 오랫만에 영화 "변호인"보고 은혜식당에서

삼겹실에 소주...좋다...^^

 

 

131017 북경 스치하이 전취덕 식당에서 촬영..

묘기 / 입선

 

 

남인근의 사진여행 / 모로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ingeun&logNo=3017533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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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외나무다리 :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무섬 전통문화마을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서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한 곳으로 선저된 길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행사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재현하게 되었습니다.
  • 무섬외나무다리축제 소개
    •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무섬 전통문화마을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서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한곳으로 선정된 길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행사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재현하게 되었습니다.
    • 일시 및 장소 : 문수면 수도리 전통마을
    • 주최/주관 : 영주시 / 영주무섬외나무다리축제추진위원회
    • 문의전화 : 054)639-6064, 6065
    • 축제내용 : 마을 대항 씨름대회와 농악한마당, 사또행차, 과객 맞이하기, 쟁기지고 소몰고 건너기, 소풀지고 장분이 지고 건너기, 소 갈비짐 지고 건너기, 말타고 장가가기, 전통혼례식, 장례행렬(상여메기), 참석자 전원 다리 건너기 체험 등
무섬외나무다리
  • 무섬외나무다리 길이
    •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는 길이는 150m로 뭍과 섬을 잇고 다리의 높이는 하천바닥에서 60cm, 폭은 30cm로 옛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 무섬마을 이란?
    • 낙동강의 상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하여 3면을 감싸고 돌아 육지의 섬이라 하여 수도리 또는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돌출한 반도형상을 지닌 마을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인 해우당고택을 비롯한 9개의 문화재가 있는 전통마을입니다.
  • 외나무다리 설치 시기
    • 매년 10월중 설치, 다음해 5월 철거(여름철 홍수대비)

 

                                                                                                (Srilanka History-스리랑카)                                                    (Sigirya Ancient City Photo)

인도양 위에 떠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는 적도의 북 회귀선 사이의 열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푸르른 자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이다. 총면적은 65,609평방km로 남한의 3분의 2정도의 크기이며 북쪽으로 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이 섬의 형상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인도 대륙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것 같다고 한다. 전에는 국호를 실론이라 했는데 1972년 새 헌법을 공포하면서 스리랑카로 국호를 바꾸웠다.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며 이 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국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나 실론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도처에 남아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이름으로도 우리 귀에 익숙하다. 이 섬은 변화가 풍부한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베이지색 모래밭이 100km이상이나 이어지는 해안과 키가 작은 나무들이 무성한 정글 그리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은 작은 섬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지형들은 대부분 오염되지 않은 자연상태 그대로 남아 있으며 특히 정글지대에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고대로부터 불교 왕국으로 번영을 누려왔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교의 거대한 유적들은 세계 유네스코에 의해 보수공사가 계속되고 있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대 왕들이 남긴것은 불교 유적들뿐이 아니며 이 섬에서 드라이 존이라 불리는 건조지역 여기저기에는 거대한 저수지들이 있다.

 

역대 왕들이 건설한 이 위대한 유산들은 농업국인 스리랑카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 온 소중한 재산으로 지금은 완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여 인간분만 아니라 새와 짐승까지도 생활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스리랑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석이다. 그 역사는 아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0세기에 솔로몬왕이 시바의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물한 루비가 스리랑카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섬을 자배해 온 여러나라가 탐내던 것도 충푸한 보석때문이었으며 영원한 빛을 발하며 사악한것은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전해지는 이 보석의 대표적인 산지인 산속의 작은 마을 라트나푸라에서는 오늘도 남자들이 소박한 방법으로 계속 꿈을 캐고 있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 모든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스리랑카는 우리들의 여행을 낭만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기후)

작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어딜 가더라도 기후가 같을것 같은 스리랑카는 그러나 몬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지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기후가 많이 다르다. 인도가 망고를 떨어 뜨렸다는 표현이 그롷듯하게 들리는 섬 스리랑카는 인도의 끝 동남쪽에 위치해 있어 어딜 가더라도 덥고 매일 세찬 소막비가 심하게 내릴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열대 기후라고는 하지만 의외로 지내기 좋고 기온은 연간 2-3도 정도의 차이로 변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지형에 따른 기온차이는 아주 심하다. 해안지방의 낮은 지역은 열대지방 답게 일년내내 덥지만 중앙 고원 지대인 누와라 엘라야 같은 곳은 연평균 섭씨 16도로 항상 봄 날씨이다 스리랑카 전체는 열대성 몬순 기후에 속하며 적도 부근에서 불어 오는 남서 몬순과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동북 몬순의 영향으로 우기와 건기가 찾아온다.

 

11월-3월

동북 몬순기로 벵골만에서 오는 몬순이 섬의 동북부를 중심으로 하여 스리랑카 전체에 비를 뿌린다.

 

4월

일년중 가장 더운 시기이며 때때로 저기압에 의한 비나 해양풍에 의한 뇌우가 있다.

 

(주 식사인 카레)

스리랑카 사람들은 오로지 카레만 먹고 살며 아침에도 카레 점심에도 카레 물론 저녁에도 카레를 먹는다. 스리랑카는 불교국이지만 고기에 대한 제약은 없으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무엇이던 먹으며 국토가 자연의 혜택을 입어서인지 몰라도 풍부한 생선이나 야채를 넣어 만든 카레 종류도 매우 많다. 그런 카레를 밥이 담긴 접시에 조금씩 옮겨 담아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섞어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스리랑카 카레의 특징은 맵다는 것이며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섞어 혀끝이 찌리할 정도로 매운 카레를 만든다. 외국인에게 특별히 덜 매운 카레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렇게 매운 카레를 먹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스리랑카의 빵은 의외로 맛이 좋의며 별로 맛이 없을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식빵이나 핫도그용의 가늘고 긴 빵도 있으며 스리랑카의 음료수라고 하면 뭐니뭐니 해도 홍차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론티의 원산지인 만큼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홍차를 즐긴다. 날씨에 관계없이 뜨거운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것이 스리랑카식 홍차이다. 설탕물처럼 단 홍차를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별도로 설탕을 요청하는것이 현명하다 매운 카레와 뜨겁고 달콤한 홍차는 단연 스리랑카의 먹거리의 상징인 것이다.

 

(역사) 

지금도 신할라인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얼리 퍼져 있으며 옛날 인도에서 숫사자와 뱅골의 여왕사이에서 쌍둥이 남매가 태여났다. 아들은 커서 사자를 죽이고 여동생과 결혼하여 라라국을 건설했다 지삭복이 많았지만 큰 아들 윗샤야는 무리를 지어서 온 나라를 어지렵히고 돌아 다녔다.

 

그래서 결국 배애 태워 추방해 버렸는데 스리랑카에 도착한 그는 야차를 정복하고 신할라 왕국을 건설했다. 이 일족은 사자를 죽인 신할라라고 불리게 되였다.이 이야기는 6세기경에 편찬된 책인 마하완사에도 있는 왕권신화의 한 대목이다.안타깝게도 스리랑카는 민족주의 자들은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으며 따라서 신할인은 북인도에서 왔다.

 

이 섬에서는 신할라인이 최초로 개화된 민족이며 최초로 나라를 세운 것은 신할라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학문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오히여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인도 남부에서 온 이주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대에는 작은 나라가 여기 저기 있었는데 어느 한 나라가 불교를 받아 들여 강대화한것 같다는것이 합리적인 스리랑카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왕조사 채색되는 고대에서 중세로)

기원전 3세기 부렵부터 아누라다푸라를 도읍으로 하는 신할라 불교 왕국이 번성했으며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로마와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도읍은 불교의중심지가 되여 법현과 같은 승려는 멀리 중국에서도 유학을 왔다. 이러한 번영은 대규모 저수지를 이용한 관계로 풍부한 쌀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며 판디야나 쵸라등 타밀의 여러나라로 부터 온 원정군과 자주 전쟁을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민족적 대립관계는 없었다.

 

전쟁은 왕권간의 문제이며 신할라 왕실의 왕위 계승 다툼에 타밀인이 용병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동맹이나 혼인관계도 있었다. 불교도와 힌두교 사이에도 항쟁이 전혀 없었는데 그 이유는 7세기경 남인도에서 힌두교 복고주위가 강해지기 전까지는 타밀 지방의 여러 나라들도 불교를 널리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도읍은 풀론나루와로 옮겨 졌는데 13세기 무렵에는 건조지대를 중심으로 한 국가가 급속도로 쇠퇴한다.

 

왕과 백성들은 남부의 습지지대로 계속 이주했고 건조지대에 세워졌던 사원과 왕궁 저수지는 버려져 정글로 변해갔다. 그 무렵 자후나 지방에는 타밀 왕국인  아루파나무가 건설되었다. 이주의 원인에 대해서는 타밀 세력의 압박 또는 기후의 변화 말라리아의 발생과 과잉개발등의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독림을 향한 길)

19세기 중반에 커피농장이 생기자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 났으며 노동력이 필요해 남이도에서 타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토착민인 싱할라인 타밀인 무술림 사이에서 발생한 상업 자본가를 중심으로 엘리트층이 형송되었다. 이들은 점차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며 종교 부흥운동이였다. 사원 학교와 부료 학교가 건설되였고 불교 교육이 추진 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경제적 종교적 배타주의의 색채를 짙게 띠고 있었다. 그들의 공격은 그리스도를 믿는 지배자인 영국인에게만이 아니라 타밀인과 무술림 카토릭 교도인 심할라인에게도 겨누워졌다. 스리랑카에 있어서 최초의 민족 폭동이라 할수 있는 신할라와 카톨릭의 충돌은 이미 1883년에 콜롬보에서 일어 났다.

 

(고뇌하는 현대사)

저항운동의 파도는 점점 높아 졌으며 마침내 의회제도의 도입과 헌정개혁의 과정을 거쳐 1948년2월4일에 독립이 실현되였다. 그러나 여전히 스리랑카 민족주의는 형성되지 않았다.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는 통일국민당과 자유당 두 정당 사이의 정권다툼으로 일관되였다. 1956년 자유당의 반다라나이케 정권이 신할라어 공용어법을 제정하자 타밀족은 강력하게 반발하여 연방제 아래에서 자치를 요구했다.

 

1972년 자유당 평등사회당 공산당의 통일 전선 정권이 헌법으로 불교에 준 국교적인 지위를 부여하자 타밀인들은 드디어 타밀 이라무국의 불리 독립을 요구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절은이들은 독립을 부르짖으며 무장투쟁을 개시했다. 1983년에 반 타밀 대 폭동이 일어나 많은 희생자가 나오자 타밀 게릴라들의 반격은 거세어 졌다 마침내 1987년에는 인도가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연방제의 태두리안에서 타밀인들에게 대폭적인 자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일단 타협이 이루어 졌다.

 

분리 독립은 타밀인들의 2류 시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하는 방편이었지만 민족문제의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타밀 이라무 국이 독립한다고 해도 그 지역안에는 또 신할라인과 무술림 등 소수민족이 포람되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부의 무슬림은 몇년전부터 독자적인 정치 조직을 만들어 타밀인의 지배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현대정치는 통치의 잔재 이웃 아라인 인도의 정치 상황등과 깊은 관계를 지니며 민족분쟁이라고 하는 형태로 분출되어 온 셈이다.

 

                                                                                                 (카스트 제도)

스리랑카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으며 이 제도에 대하여는 인도와 비교(인도의 카스트 제도에도 뚜렸한 차이가 있음)해 보면 쉽게 알수 있다.우선 인도의 브라만에 해당하는 최고 지위가 없고 위계제도(브라만을 최고로 하고 수드라를 최하위에 두는 제도)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신할라인과 타밀인이 각각 웰라라 고이가라 하는 농민 카스트가 상위라고 하지만 실은 이 카스트가 인구의 약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가 여러가지 기능을 전통적으로 담당하는 직업 카스트이다.

 

신할라의 카스트는 옛날 왕조의 정치체재와 관련이 있다. 1818년에 멸망하기전까지 고지에서 이어져 온 왕국의 영토는 국왕의 직활지와 국왕이 귀족(관료)사원등에 하사한 토지로 나누워져 있다. 이들 토지의 영주는 국왕에게 하사받은 토지의 점유권을 가지고 수확의 일부나 부역을 국왕에게 바치는것이 의무였다. 토지를 실제 경작하던 사람들이 농민 카스트이고 그들의 촌락주위에는 여러 카스트의 촌락이 있어 상호 보완 적인 분업체재였다.

 

이와 같은 체재를 라자카이라 제(라자 국왕 카리야 부역)라 부른다. 이처럼 카스트제도는 국왕-영주-농민형태의 경제적 사회적 계층구조로 이해 하는것이 적절하다 영국의 식민지 체재가 들어선 이후에 이 제도가 해체되어 카스트의 구성원도 농지를 보유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직업 집단으로서의 기능도 거의 사라져 갔다. 애초 카스트를 의미하는 신할라어는 없고 이들을 표현할때에는 신할라어로 친구 또는 사람들의 모임등을 의미하는 캇티야란 말을 사용했다.

 

분명히 스리랑카의 카스트는 인도의 영향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유럽인들이 분업 집단의 분류를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같은 용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했던데서 오해가 생겨 오늘날에 이른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의식을 할때에는 그 의식을 주재하는 특별한 역활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 정 또는 부정 이란 개념이 뚜렸해 진다. 옛날부터 살던것이 아니고 떠 돌아 다니며 살던 집단도 정착해 가는 중에 기존제도와 사회구조의 밖에 있다고 하여 아주 낮은 카스트로 구별되였다.

 

타밀 사회에서 최고 지위가 없다는것은 이미 이야기 했지만 브라만이 종교 직능자라는 지위에만 존재하는 점이 인도와 다르다 그러나 소위 건드릴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에서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유사하다고 할구 있다.  

                                                                              

                                                                                               (스리랑카의 별 점보기)

스리랑카에서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별을 보고 점보기가 성행하고 있으며 신문지사에도 그 날의 길시 흉시 운세등이 게제되여 있고 일요일판에는 점성술에 관한 화제가 특집으로 꾸며지는 일이 매우 많다. 개인의 생일과 출생시간에 근거한 별 점이 그사람의 그때 그때 운세 특히 결혼 할떼의 궁합등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의 개시 시간을 결정할 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에서 길흉을 여러가지 행사를 계획했던 것과도 상통하는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처럼 우주의 운행에 근거한 생활규제는 특히 젊은이가 결혼을 생각할 때 카스트 신분과 여성의 지참금 그리고 궁합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스리랑카 신문의 일요일판에는 구혼광고란이 있어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광고가 게제되는데 그 광고에도 이러한 단서가 붙어 있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라고 애세우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이런 조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볼수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부모나 친척등이 중간에 끼는 맞선을 통한 결혼이 대부분이고 자유로운 연애결혼 특히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은 큰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특정 카스트로 태어나는것은 그 사람의 업에 근거한 운명이며 움직일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그리고 넓게는 그 사람이 타고 난 별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결혼이 개인간의 매듭이 아니라 가족간의 매듭이란 성격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혼인관계가 있는 친족간의 결합을 선호하는데 이때는 지참금이 별로 무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관계가 성립 될때나 도시의 부유층에서는 신부측이 신랑측에게 지참금을 보내야 한다. 이퍼럼 스리랑카에는 인도의 영향아래 별 보고 점보기등 우주의 운행을 기준으로 한 세계관이 일상생활을 크게 지배하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서구와 인도등의 복잡한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해와 달을 기준으로 한 몇가지 체계가 혼란을 낳고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아의 풍습)

(인사방법)

인사는 양손을 잡고 가슴께에 모아 합장한다음 아유보완이라고 한다. 아주편리한 말로 만날때나 해어질때 언제나 쓸수 있는 인사말이다. 또 이에 대답하는 말로 아유보완이라고 하면 된다.

 

(카레는 오른손으로)

스리랑카 사람들이 손으로 카레 먹는 모습을 보고 경멸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볼수 있으며 밥에 섞여 있는 작은 고기가 생선의 뼈를 포크나 나이프로 초리하기에는 어렵다 오른 손의 제1관절을 이용하여 카레를 섞어 먹는것이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잘 관찰하여 흉내 내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체험이 될것이다.  

 

(사원방문)

사원을 방문할때는 모자와 신발을 벗고 조용히 참배하십시다. 사원은 신성한 지역이며 큰 소리로 이야기 한다거나 소리내어 웃지 말아야하며 불탑등을 구경하러 가면 바닥이 햇볕에 데워져 발바닥이 따가운 경우도 있음으로 양말은 그데로 신고 들어 가는것이 매우 좋다 근처에 꽃을 파는 곳이 있다면 꽃을 사서 헌화하고 깨끝한 마음을 가져 본는것도 바람직 하다.

                                                                                                   (주요 여행지 소개

 

                                                                                                     (코롬보)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최대의 도시이며 아시아와 유럽을 있는 해상수송의 중계지로서 발전해 왔으며 지금은 이 나라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콜롬보시의 인구는 1987년에 약 67만명 그 뒤로 계속 증가한 것을 감안한다면 수도권의 인구는 120만명을 훨씬 넘어 보인다. 현재도 인구는 계속 증가 콜롬보는 점차 비대해져 가기만 하다 남국의 풍취가 물신 느껴지는 스리앙카니지만 콜롬보만은 특별하다. 아침 저녁의 러쉬 아워에는 교통체증이 다반사이며 그 소란도 대단하다. 길 가는 사람들로 다른 도시에 비해 멋을 부린 젊은이블과 부유해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뜬디.

 

1985년1월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약10km떨어진 곳에 스리 자야와르다나풀라라는 새로운 수도가 생겼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아직도 콜롬보라고 할수 있다. 콜롬보 시 북쪽에 있는 케라니야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이 주변에서 아주 귀중하고 오래된 불교 사원이 있는 도시이다. 또 남쪽에는 마운트 라비니아라고 하는 휴양지가 있어 식민지시대에 세워진 리조트 호텔 등이 있으며 언뜻 보기에 대도시로서의 모습만 눈에 비치는 콜롬보이지만 주변에 국경거리가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다.    

 

(캔디)

열대의 섬나라 스리랑카는 중앙부 일대에는 1000m가 넘는 산들이 줄지어 있으며 이지역은 열대이면서도 기후가 온난하고 물이 풍부해서 영국 식민지 시대에 홍차 재배로 개발된 곳이다. 구래서 이 지역은 산은 거의 홍차밭이다. 산의 정상까지 홍차가 프르게 덮여 있고 그 사이를 아름다운 폭포와 푸른 시내가 수 놓는다. 줄지어 서있는 산들의 남서 분지에는 보석의 마을로 알려진 라트나푸라가 있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토산품인 보석이 대부분 이 마을의 주변에서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채굴되고 있다.

                                                                       (세계 유네스코 1988년 제298호 문화유산 지정) 

(담블라)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 사원이 있는 담불라는 캔디의 아누라다푸라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이라 해도 주의하지 않으면 그런 사원이 있다는것 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아주 작은 마을이다. 간선도로와 쿠루에갈라에서 뻗어 나온 길이 닿는 부근에 펼쳐지는 시니가는 그래도 아름답게 북적이지만 2km정도 남쪽에 있는 구 시가는 양쪽 도로변에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다.

 

그래도 담불라가 스리랑카에서도 널리 알려진 마을이 된것은 그만큼 이 석굴사원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바위산 정상 부근에 뚫린 이 천연 동굴에는 극채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아주 많은 불상이 조각되여 있다. 이 석굴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놀라운 박력으로 다가와 신성한 느낌을 받지 않을수 없게 된다. 불교 설화를 그린 수많은 벽화가운데는 신할라인과 타밀인 사이의 전쟁을 그린것도 있다.  

 

(시기리아)

시기리아는 고대부터 불교 승려들의 수련장이였으며 5세기 후반에 1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곳을 다스리며 장대한 바위산의 걸작을 남긴 광기의 왕 카샤파의 전설은 스리랑카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있다. 카샤파는 459년 477년에 아누라다푸라를 통치했고 넓은 저수지를 건조한 다투세나 왕의 장남이였다. 카샤파에게는 배 다른 동생 목갈라나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왕족 혈통의 여인이였고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이였다.

 

이때문에 카샤파는 동생에게 계승권을 빼앗길가바 두려워 아버지인 다투세나 왕을 감금하고 왕위를 박탈했다. 동생 목갈라나는 형의 이런 행동을 증오하며 인도로 망명했다. 그후 카샤파는 아버지에게 감춘 재산을 전부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투세나 왕은 아들을 자신이 건설한 칼라웨아 저수지로 대려가 저수지를 가리키며 이것이 내 재산의 전부다라고 말 했다. 이에 분노한 아들 카샤파는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부하를 시켜 살해한다.

 

동생 목갈라나의 보복이 두려워 했기 때문이였는지 아버지를 살해한 후회와 고통때문에 카샤차는 신들린 사람처럼 시기리아의 깍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에 궁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7년 후 그는 그의 왕좌를 산 정상의 궁전으로 가져갔으며 그리고 11년후 이복동생 목갈라나가 인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그의 형과 싸우러 왔다. 형재간의 싸움이 한창일때 카샤파가 타고 있던 코끼리가 전진하던 방향에 나타난 수렁에 다리가 빠졌다

 

통제력을 잃은 카샤파의 군대는 후퇴한다. 혼자 남겨진 카샤파는 단검으로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그후 목갈라는 시기리아의 왕궁을 불교 승려들에게 기증하고 수도를 다시 아누다라푸라로 옮겼다.                                         (세계 유네스코 1982년 제294호 문화유산 지정)

 

(프론나루와)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걸쳐 스리랑카는 격동기를 맞았는데 남인도의 쵸라 왕조는 대군을 보내 신할라 왕조의 수도 아누라다푸라를 정복하자 신할라 왕조는 어쩔수 없이 수도를 플론나루와로 옮겼으며 신할라 왕인 비자야바후 1세는 관개설비를 복구하고 국가건설과 불교 보급에 힘을 쏟았다.

 

그 뜻을 이어받아 12세기에 비자야 바후1세의 손자인 파라쿠라마 바후1세는 관개용 저수지 파라투라마 사무드라와 다수의 건축물을 세우고 플론나루와를 불교 도시로 개발했다 사원이 많아짐에 따라 성역이 되여 태국이나 버마등지에서 승려들이 많이 찾아 오고 있다.  (세계 유네스코 1982년 제295호 문화유산 지정)

 

(아누라다푸라)

석양속에서 거대한 탑이 그림자를 남기며 천천히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아누라다푸라 약2500년젼에 이곳은 스리랑카의 최데의 도시였으며 그 문명을 상징이라도 하듯 거리의 곳곳있는 탑은 하늘을 향해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고 수많은 조각은 어느것이나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불교는 이 지역에서 스리랑카 전역으로 그리고 버마 타일랜드 캅보디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 지역에서 번영했던 왕조는 매우 수준이 높은 문명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쓰고 있는 관개시설이나 상하수도는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누라다푸라에서 번영했던 이 왕조는 남인도에서 펴 들어온 침입자와의 거듭된 전쟁끝에 1400여년에 걸친 영화의 막을 내리게 된다. 아직도 스리랑카에서는 민족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지만 분쟁의 시초라 할수 있는 도시는 마치 그런일 따위는 잊은 듯이 평화로운 전경으로 여행객을 맞아준다.

 

스리랑카 방방곡곡에서 순례하러 온 가족 일행과 근엄한 표정으로 경을 외우는 수도승 나무위에서는 원숭이들이 장난을 치며 오가고 한가라게 오가는 우마타는 마치 유구한 시간속을 지나는듯 하다                                                   (세계 유네스코 1988년 제297호 문화유산 지정)

 

                                                                                               (관광 명소 소개)

(불치사)

불치사는 캔디 호반의 차분한 풍취를 보여 주고 있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불교사원이며 불치사는 살색 벽에 갈색 지붕을 한 신할라 건축양식의 팔각형 불당이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원 내에는 크리스탈 바위를 깍아 만든 석가의 좌상 정밀한 조각이 새겨진 돌문 옅은 감색의 화려한 당초 모양으로 만들어진 천장등이 차분한 사원 내부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사원 안에 봉납되여 있는 불치는 기원전 543년 인도에서 석가를 화장할때 입수한것이라고 말한다.

 

그후 4세기에 인도의 오릿사주 카링가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실론에 들려와 아누라다풀에 봉납했다. 그 뒤로 수도를 롦길때마다 불치도 함께 이동했으며 마지막에는 캔디에 보관되였다. 불치가 캔디로 옮겨진 것은 1590년 캔디 왕 수리야1세 때였는데 그는 불치를 모시기 위해 2층 건물의 사원을 지었다. 그리고 3대 아래인 신하 왕이 사원을 신축하였으며 불당은 캔디의 마지막 왕 라자신하에 의해 건설되것이다.

 

팔각형 탑은 19세기 전반 영국점령시대 1796년-1948년에 유치장으로 바뀌었으나 지금은 야자잎 사본이 소장된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불치를 매우 소중한것으로 여겨 왔으며 왕권의 상징으로서 불치가 있는곳이 바로 스리랑카의 수도였다. 16세기 후반 그리스도교인 포르투갈인이 불교도의 혼이라 할수 있는 불치를 빼앗아 인도의 고아지방에서 부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신할라인들은 가짜 불치로 포르투갈인을 속여 진짜 불치는 캔디에 안전하게 보존할수 있었다는 사연도 있다.

 

사원은 새벽부터 황홍무렵까지 개방되여 있어 참배가 자유롭지만 불치가 있는 방의 문이 열리는 것은 하루에 세번 행해지는 푸쟈때 이다. 이때는 스리랑카 각지에서 모여든 참배객으로 원내가 북적거린다. 악기소리와 더불어 공손히 공물을 바치는 의식이 행해지고 사람들의 진지한 기도가 이어진다. 불치 실물이 공개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실제로 볼수있는것은 작은 다고마 모양을 한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금제 상자이다. 이 상자는 일곱 겹으로 되여 있으며 그 안에 불치가 있다. 불치의 실물이 공개될 때는 금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접시위에 놓여진자.    

(페라데니야 식물원)

캔디관광에서 빼 놓을수 없는 곳 가운데 하나이며 총면적6평방km의 넓이로 걸어서 전부 구경하려면 꼬박 하루라도 부족할 정도이며 식물의 종류가 4천종 이상이나 된다 그 때문인지 식물원내에는 자가용이나 자전거로도 돌아 볼수 있다. 1821년 식물원으로서 문을 열었는데 그대까지는 14세기의 왕 파라쿠마라 바후3세가 왕비를 위해 만든 정원으로 유명했으며 별명인 로얄 가든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붙은 것이며 원내는 지금도 그 궁전의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또 가는곳마다 동물의 모습을 볼수 있어 자연을만끽할수도 있는 곳이다.  

 

(가달라 데니야 사원)                                               

캔디 주변에는 작지만 매력있는 옛날 사원이 매우 많으며 그러나 한결같이 교통이 불편한 산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페라데니야의 서쪽 캔디에서 6km떨어진 가달라데니야 사원이 있다. 스리랑카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1344년에 건립된 석조건물이다. 석상이나 옻칠이 되여 있는 문이 볼거리이며 이곳에서 3km정도 남쪽에는 랑카릴라케내부의 벽화는 300년젼의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캔디 동쪽으로 약9lkm지점에는 데갈도루와 사원이 있는데 18세기 왕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캔디 왕조기의 양식으로 벽화가 매우 유명하며 당시의 관습이나 풍속을 소개하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담블라 석굴사원)

도로에서 조금 들어가 토산품을 파는 가게가 늘어선 지역을 빠져 나오면 작은 건물이 서 있다. 이곳에서 표를 사며 너무 작아서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표를사지 않으면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바위의 경사면을 올라 간다 중간에 비교적 평평한 곳까지 오면 여기서부터는 계단이다. 상당히 힘이들지만 15분정도 오르면 사원입구에 닿는다.이곳의 높이는 180m정도이지만 평원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어서 주변의 숲을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20km가량 떨어진 시기리야도 멀리 보이며 입구에서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들어간다.  

 

 제1동굴(데바 라자 비하라)

이름은신들의 왕의 절 이란 의미이며 가장 오래된 석굴인데 여기에는 이 사원 최대의 불상인 열반불이 누워 있다. 벽과 같은 자연석으로 조각된 것으로 전체 길이가 약14m이며 이 거대한 본존불은 전신이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발바닥만은 빨갛게 불꽃같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제2동굴(마하 라자 비하라)

위대한 왕이란 절을 세운 도투게무누 왕으로 절안에 그의 석상도 있다. 제2동굴은 담불라 최대의 동굴이며 폭이 약52m깊이가 약25m 높이는 입구 부분이 약6m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동굴안에는 56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나 이곳에서 볼 만한것은 뭐니뭐니해도 벽과 천정에 그려진 벽화이다 석가의 생애 스리랑카의 역사도 그려져 있으며 그 가운데는 신할라인과 타밀인의 전쟁을 그린것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제3동굴(마하 알트 비하라)

이름의 뜻은 위대한 새로운 절 이름 그대로 18세기의 57개의 불상이 있는 곳이다.

 제4동굴(파스미사 비하라)

이름의 뜻은 서쪽의 절로 좌상이 매우 많은 곳이다.

 

 제5동굴(1915년에 지어진 가장 새로운절)

1915년에 지어진 가장 새로운 절이며 석굴은 이와 같이 제1동굴에서 제5 동굴까지 오래된 순서대로 늘어서 있으며 그러나 제1 동굴의 벽화 대부분은 17세기의 왕 세나라트의 명에 의해 복구되였고 제3동굴을 만들 때에도 많은 벽화가 복구되였다. 복구라고 해도 전에 그려져 있던것을 그대로 재현하는것과 전혀 별개의 그림을 넣는 경우가 있음으로 지금 남아 있는것이 어느때의 그림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시기리야이 프레스코화)

바위산 입구에서 걸어서 20분정도 거리에 있으며 그 중간쯤에 영국이 만들었다고 하는 주위에 청망두른 철제 나선 계단이 이 있으며 이 계단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이었다고 한다. 계단은 경사가 심한데다 자주 강한 바람이 불어오곤 하므로 짐은 등에 지는등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르도록 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돌출된 바위면에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미녀의 모습이 있다. 5세기의 작품으로 여겨지지 많을 만큼 아름다운 충취를자아낸다. 그 농염한 자태와 신비스러운표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보릴것 같다.

 

이 벽화는 크게 3층으로 되여 있으며 우선 바위면에 왕겨나 까보나이트(유기섬유)를 석은 타미이른 흙(점토의 일종)으로 발라 굳힌다 다음에는 석회와 모래를 석은 점토로 다시 칠하고 마지막으로 이전보다 더 두껍게 꿀을 석은 석회로 매끈하게 바른다. 그 위에다 야채 꽃 잎 나무 즙등을 재료로한 적 황 노색 안료로 미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카샤파왕이 살해한 아버지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이 미녀 벽화를 그리게 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림속의 여자들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는 이 바위산 벽에 미녀 들이 500명 정도 그려져 있었다는데 지금 남아 있는것은 18명 뿐이다. 그 대부분이 비바람에 침식디였고 또 그중 몇개는 1967년 반달인의 공격으로  지워져 버렸다고 한다.    

 

(도서관 유적 포트굴 비하라)

저수지 파라쿠라마 사무드라 옆으로 난 넓은 도로에서 숲으로 들어가다 보면 4개의 작은 다고바에 불러싸인 돔 형 건물이 있으며 정적의 땅에 세워진 우주기지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은 예전에 도서관이었던 곳인데 야자잎으로 만든 불교 경전이 보관되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으로 되여 있는데 여기서 불전등의 문헌을 낭송했다고 한다.

(바타다게)

쿼드랭글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원형 불탑이다. 사방으로 난 입구에는 각각 문스톤과 가드스톤이 있는데 특히 북쪽 입구에 있는것이 비교적 그 형태를 제데로 유지하고 았다. 가드스톤은 입구에서 악마가 들어는것을 막아서 내부의 본존을 지키기 위해 불탑이나 절 입구에 세웠다. 문스톤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나타내는것인데 아누라다푸라의 것과 무늬가 다르고 숫소도 없다. 옛날 이곳을 참배한 사람들이 이 문스톤 위에서 발을 씼고나서 불탑안에 들어갔다.

 

이 불탑은 플론나루와가 수도가 되기 이전 7세기경의 것이라 하는데 가운데 있는 다고바는 아누라다푸라의 실라 메가반나 왕이 세운것으로 옛날에는 절의 일부였다. 벽의 조각은 닛상카 말라 왕의 명에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타다게)

바타다게의 거의 정면에 있는 불치사의 흔적으로 12세기에 닛상카 말라 왕에 의해 건설되였으며 문은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위엄스런 산그크리트 문자의 비문이 남아 있다. 이것은 닛상카 말라 왕을 칭송하는 글이라 하며 비문의 주위에 있는 댄서와 음악가들의 조각도 움직이고 있는것처럼 느껴져 매우 흥미롭다.  

 

(고대의 책 갈포타)

하타다게 동쪽에 있는 야자잎 책 형태를 한 석비(돌책)라는 별명이 붙어 있으며 길이 약9m 폭이1,5m 두께 44-66cm인데 닛상카 말라왕의 멸령에 의해  약100km나 떨어진 미힌탈레에서 가져온 돌에 문자를 새겼다. 비문은 인도에서 쳐들어온 침략자에 관한 내용과 플론나루와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의 관계 그리고 닛싱카 말라 왕에 대한 찬양등으로 되여 있다.

 

(아누라다푸라 최고의 투파라마 다고바)

루완웰리 세야 대탑에서 북쪽으로 약500m떨어진 푸르른 탑으로 4세기 후반에 석가의 오른쪽 쇄골을 모시려고 세운 것이며 완공당시에는 건초를 쌓은 듯한 산모양이었던것 같으나 1894년에 재건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탑 둘레에는 몇개의 돌기둥도 세워졌다. 이것은 탑에 울타리를 치려고 만들어던것 같다. 지금은 스러져 가는 기둥도 있어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루완웰리 세야 대탑)

버스나 열차의 창 너머로 루완웰리 세야 대탑이 보이기 시작하면 차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라다푸라에 도착을 알리는것이 바로 이 탑이다. 우완웰리 세야 대탑은 유적지구 중심부에 세워진 거대한 탑이다.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 이 탑에 이르는 길은 가로등이 있는 아름다운 석조 보도로 이어진다. 스리 마하 보리수의 돌문을 나와 이 석조 보도를 걷기 시작하면 우선 오른쪽에 로하 파사다라 라고 불리는 돌기둥들이 있다.

 

로하 파사가를 지나 그 끝에 우뚝선 루완웰리 세야 대탑을 향해 걷는다. 이 탑은 수많은 코끼리 조각에 둘러 싸여 있는데 새하얗고 엄청나게 크다. 바블 세이프라 불리는 만두 모양의 탑으로 높이는 55m이며 처음 완공했을 때는 무려 110m정도의 높이였다고 한2세기의 도투게무누왕 시대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왕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틱사 왕자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완성시켰다.

 

도투게무누 왕은 남인도에서 침략해온 티밀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차례의 전쟁이 있었는데 도투게무누 왕 말년에 남인도의 엘라라 왕이 싸움을 걸어 왔다. 이때 사다 팃사 왕자는 선두에 서서 싸우기를 원했으나 아들을 염려한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왕자는 이 탑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 아버지를 위해 대나무와 천을 이용해 하루밤 사이에 탑이 완성된 모습을 만들어 죽기 직전의 어비지에게 보여 드렸다고 한다. 우대한 왕 도투게무누 그의 모습은 정문 왼쪽에 있는 조각을 통해 알수 있다.    

 

(스리 마하 보리수)

이수루무니야 정사에서 북쪽으로 약1.2km지점에 아누라다푸라가 불교의 성지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인식시켜 주는 곳 스리 마하 보리수가 있는 곳이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 왕의 딸 상가밋타가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스 부처가 도를 깨쳤다고 하는 철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많은 순례자가 이곳에 기도를 드리려 와 이 철책에와우(기)를 묶고 석대위에 꽃이나 코코넛등을 공물로 바치고 있다.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에서는 부러울 정도의 신앙심이 느껴진다. 이곳의 보리수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수령이 2000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늘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기도를 받아 들일것만 같은 강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 소개)

1)시기리야 고대도시-Ancient City of Sigirya(세계 유네스코 1982년  제294호  문화유산 지정)

 

2)폴론나루와 고대 도시-Ancient City of Polonnaruwa(세계 유네스코 1982년 제 295호 문화유산 지정)

3)아누라드하푸라 신성도시-Sacred City of Anuradhapura(세계 유네스코 1988년 제297호  문화유산 지정)

4)캔디 신성도시-Sacred City of Kandy(세계 유네스코 1988년 제298호  문화유사 지정)

5)갈레 구 도시와 요새-Old Town of Galle & Fortffcations(세계 유네스코 1988년 제299호 문화유산 지정) 

6)담블라 황금사원

                                                                                  (Old Town of Galle Port unesco Photo)


 

스리랑카 날씨 비자 환율

1. 스리랑카(Sri Lanka) 국가 정보
수도: 코롬보(Colombo)
면적: 한반도의 1/3배 크기
인구: 2,100만명 (2008년)
날씨: 열대 몬순( 연평균 27℃)
인종: 싱할리(74%), 스리랑카타밀(13%),인도타밀(7%), 무어(6%)
언어: 싱할리어와 타밀어(공용어),영어
종교: 불교(70%),이슬람(8%), 힌두교(7%)
독립: 1948년 영국에서 독립(1948.2.4)
정부: 대통령제,수상
화폐: 루피(Rupee) / US $1=  130.06루피 (2013.12)
시차: 한국보다 3.5시간 늦다(한국이 오전 9시면, 자카르타 오전 5시30분)
전기:  230~240V 50Hz  사진보기: 국가별 전기플러그 형태
도로: 우측통행 (운전석이 오른쪽/한국과 반대) 국가별 통행방향

스리랑카의 위치지도

2. 국가 유래
기원전 6세기경 싱할리족이 인도에서 타밀족 침략을 피해 스리랑카로 이주하여 왕국을 건설하였다. 16세기부터 서양열강의 침략이 시작되기 시작했는데, 포갈투갈, 네덜란드, 영국순으로 정복자가 바뀌었다. 영국은 19세기 싱할리왕조를  멸망시키고 완전히 식민지화를 완성시켰다. 이후 영국은 농업 노동력 착취를 위해 인도에서 타밀족을 강제로 스리랑카로 이주시켰다. 이때부터 타밀족과의 민족 갈등이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내전에 원인이 되고 있다.

3. 스리랑카날씨
열대 몬순기후이며 우기와 건기 2가지 계절이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우기 :  5월 - 11월 : 3,4월이 가장 더운계절, 우기지만 계속 비가 오는 날씨는 아니다.
건기 : 12월 - 4월

4. 스리랑카비자 비자필요 및 면제국가
입국시 공항에서 30일간의 도착비자를 특별한 준비사항 없이 받을 수 있다

5. 항공편
한국과 직항노선이 없으므로 홍콩, 싱가포르, 콸라룸푸르, 동경을 경유해서 입국해야 한다.

6. 공항 도착후
택시를 이용 시내(콜롬보)로 이동한다 요금은 $10~$15 미국달러 정도이며 미터기 요금을 받는다. 요금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등의 대중교통은 외국인에게 적합치 않다.

7. 스리랑카환율
$1(미국달러)는 130.06루피(SLK)이며 도착 후 공항에서 환전하는 게 가장 유리하다 (2013.12)
100루피 =약900원

8. 현금.신용카드
대형 쇼핑센터, 백화점은 신용카드 사용가능 그 외에는 현지 루피화 사용

9. 국제전화 이용(국가번호 +94 )
(한국->스리랑카): 001/002+94+전화번호
(스리랑카->한국): 00+82+2+전화번호 (2: 서울 지역번호)

10.물가정보
공산품의 경우 수입에 의존하므로 가격이 한국보다 비싸다. 그러나 인건비가 싸므로 서비스 요금은 저렴하다
생수1리터: 60루피 
영화관람 : 250루피
맥주1병(주점): 100루피
호텔1박(모텔): 600루피

11. 한국인 거주(교민,주재원)
약 700명 정도

12. 스리랑카 전기   230~240V 50Hz
국가별 전기플러그 형태

13. 기타
황열병,뎅기열 예방을 위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 해야한다.
물은 유명 상표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끓여서 마셔야 한다. 참고: 조심해야 할 전염병(동남아시아)
팁 문화가 있다. 약간의 팁을 위한 잔돈 준비
소매치기 주의

****************

 

 

 

스리랑카는 길이가 350Km, 너비가 180K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나라지만 다양한 지형의 영향으로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기후를 나타낸다.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일년 내내 기온이 일정하다.
평균 기온 27도로 최고기온이 31도, 최저기온이 26도이다.

 

해안지방과 낮은 지역은 전형적인 열대지방의 기후를 보이지만 누와라엘리야(해발1,890m)와 같은 섬 중앙의 고원과 산악지대는 연중 기온이 섭씨 16도로 항상 봄, 가을과 같아 생활하기에 아주 적당한 기후이다. 
스리랑카 전체는 열대성 몬순기후에 속하며 적도 부근에서 불어오는 남서 계절풍 기간(Yala시즌 - 5월~9월)에는 남부, 서부, 중부 지역에 비를 뿌리고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북동 계절풍 기간(Maha시즌 - 10월~1월)에는 북, 동부 지역에 비를 뿌리지만 강수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남서 몬순기
(5~9월)
적도 부근에서 발생한 습한 공기를 포함한 계절풍이 남서 해안지대에서 고원지대로 이동하며 이때 섬의 동북부는 건조기이다.
인터 몬순기
(10월)
무풍 기간으로 저기압에 의해 비가 내리거나 번개가 친다.
동북 몬순기
(11~3월)
벵골만에서 오는 몬순이 섬의 북동부를 중심으로 하여 스리랑카 전체에 비를 뿌린다.
인터 몬순기
(4월)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이다. 때때로 저기압에 의한 비나 해양풍에 의한 뇌우가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 고원지대 방문에 제일 좋은 시기는 12월과 3월 사이이다. 5월에서 9월은 동해안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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