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이상진
    
     행 복 / 유 치 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1953년>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는 게 행복이란다



    Love Is Just A Dream / Claude Choe

     



    
    
    
    ▲ 일러스트=클로이
    
     낙화, 첫사랑 / 김 선 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2007년>
    

    내 속에서 추락하는 그대는 꽃이다, 바람이다

    Pardonne Moi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남택상



    
    
    
    ▲ 일러스트=이상진
    
     제 부 도 / 이 재 무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2007년>
    

    그대와 나 사이에 '섬'이 있다

    Together We Fly / Darby DeVon



    
    
    
    ▲ 일러스트=클로이
    
     날랜 사랑 / 고 재 종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1995년>
    

    욕망의 늪 거스를 줄 알아야 진짜 사랑이다

    Flight of the Eagle / Mehdi



    
    
    
    ▲ 일러스트=이상진
    
    혼자 가는 먼 집 / 허 수 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1992년>
    

    당신을 부르는 것이 또 한번의 상처임을…

    Just Show Me How To Love You / Sarah Brightman

 



    
    
    
    ▲ 일러스트=클로니
    
    저녁의 연인들 / 황 학 주
    침대처럼 사실은 마음이란 너무 작아서 
    뒤척이기만 하지 여태도 제 마음 한번 멀리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만이 당신에게 다녀오곤 하던 밤이 가장 컸습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잡아들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수습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 세 그루만 마당에 심었으면
    진흙탕을 걷어내고 
    진흙탕의 뒤를 따라오는 웅덩이를 걷어낼 때까지 
    사랑은 발을 벗어 단풍물 들이며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어디 사는지 나를 찾지도 않았을 
    매 순간 당신이 있었던 옹이 박인 허리 근처가 아득합니다 
    내가 가고, 
    나는 없지만 당신이 나와 다른 이유로 울더라도 
    나를 배경으로 저물다 보면 
    역 광장 국수 만 불빛에 서서 먹은 추운 세월들이 
    쏘옥 빠진 올리브나무로 
    쓸어둔 마당가에 꽂혀 있기도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올리브나무로 내 생애 들러주었으니 
    이제 운동도 시작하고 오래 살기만 하면, 
    <2006년>
    

    사랑은 회색 지대… 반은 낮 반은 밤

    Beautiful Dreamer&TennesseeWaltz / EnriqueChia



    
    
    
    ▲ 일러스트=이상진
    
     백년(百年) / 문 태 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2008년>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 / Giovanni_Marradi



    
    
    
    ▲ 일러스트=클로이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 박 성 우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들려왔다 
    고추는 매운 물을 죄 빼내어도 맵듯 
    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녀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 
     
    ************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울고 있는 사람… 나를 울리는 사람…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 Ace Cannon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 / 박 형 준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 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 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있다. 
    산 너머로 뒤늦게 날아온 한 떼의 오리들이 
    붉게 물든 날개를 호수에 처박았다. 
    들풀보다 낮게 흔들리는 그녀의 맨발, 
    두 다리를 맞부딪히면 
    새처럼 날아갈 것 같기만 한. 
    해가 지는 속도보다 빨리 
    어둠이 깔리는 풀밭. 
    벗은 맨발을 하늘에 띄우고 흔들리는 흰 풀꽃들, 
    나는 가만히 어둠속에서 날개를 퍼득여 
    오리처럼 한번 날아보고 싶다.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 
    오래 전에 
    나는 그녀의 눈 속에 
    힘겹게 떠 있었으나. 
    <2002년>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홍조가 드는 그녀의 맨발을 간질어 주고 싶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 Julio Iglesias



    
    
    
    ▲ 일러스트=클로이
    
     농 담 / 이 문 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2004년>
    

    아름다운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 있나요
    당신곁에 소중한 사람 / Susanne Lund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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