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파티( Nicolas Party, 스위스, 1980년 7월 1일 생)는 초현실적 구상 회화와 건축적 크기의 벽화로 주목 받는 스위스 출신 작가로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국내 개인전으로, 파티는 즉각적이지만 일시적인 재료인 파스텔로 대형 벽화를 제작하여 회화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제안합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호암미술관 로비와 전시실에 5점의 대형 벽화를 그렸으며 이 5점은 전시 기간 동안에만 존재한다고, 전시는 파스텔 고유의 불안정성을 자연과 문명 , 인간과 비인간 종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시키며,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호암미술관의 환경과 공명합니다.
인간, 사물, 동물, 자연, 풍경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작품 70여 점과 리움미술관 소장품을 포함한 한국 고미술품을 함께 전시하여 시대간 문화간의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 펌글-
용인 에버랜드 근처에 있는, 처음 와 보는 호암미술관,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전시는 느낌이 쎄~~~하게 온다.
5시에 눈을 떴으나 구름이 없다는 핑계대고 또 잠. 7시에 또 일어나니 흰구름 동동...^^ 오늘은 우루겐치로 가서 비행기로 타슈켄트로 간다.
8시경 늦은 아침을 먹고 쉼. 키르키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양국 대통령의 히바 방문으로 도로가 폐쇄될거라는 우려 때문에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빠른
11시반에 호텔에서 우루겐치 공항으로 출발~~ 도로가 막혀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근데 공항 도착 얼마 전에 버스가 되돌아 간다. 잠시후에 유턴후 다시 공항으로ㅠㅠ
공항에 도착하여 검색대 통과하니 1시 이제 짐 부치고 발권하고 쉬다가 15시20분 비행기 타고 슝~~ '타슈켄트'로~~ 정확한 시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아무다리야강을 보여주더니 채 10분도 안되어서 사막을 보여주고,
강에서 멀어질수록 땅 색깔이 노랗게 되면서 흰구름이 도드라진다.
또 잠시후에 (목화를 많이 심어서 그런가~~)목화솜을 늘어 펼쳐 놓은듯이 노란 사막위에 흰 구름이 적당히 늘어서 있다. 마치 하늘에서 목화솜을 휘리릭 ~ 흩뿌린것 같다. 아름답고 또 멋지다. 그런데 너무 단조롭다. 출발한지 35분경 오른쪽으로 커다란 호수(Aydar Lake)가 보인다 아마도 호수 건너 멀리에 사마르칸트가 있을 것이고 호수 이쪽은 사막이 여전하고~ 잠시후 사막은 녹색지대로 바뀌고, 다시 또 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는 카자흐스탄의 Shardara 댐이 만든 호수..
이륙한지 1시간만에 착륙~ 1,000Km를 1시간만에. 짐 찾고 호텔로 5시 30분경에 도착,
'Grand Mir Hotel'이라는 연식에 쫌 된 4성급 호텔 방에 짐을 대충 놓고 나가야지.. 놀면 뭐하나.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여 택시를 부르고(얀덱스 앱이 없어서^^), 한참을 가니 바로 그 식당이 나온다. 'Besh Qozon' 이라는 현지인이 많이 찾는 그 유명한 식당에서 쁠롭을 주문.... 가마솥이 여러개 있다, 그런데 직원이 양이 많으니 0,7인분씩 주문도 가능하단다. 내맘을 정확히 읽는 직원.. 맘에 드네.. 둘이 물한병 포함 95,000정도 1만원이 안되고 맛도 좋았다.
쁠롭;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로 한국의 비빔밥과 비슷하지만 이것은 쌀,야채,양고기 등을 커다란 솥에 넣고 기름을 듬뿍 넣고 찌고,볶고, 찌고, 섞어서 하는 일종의 볶음밥.
가성비 좋게 잘 먹고, 그리고 바로 옆의 TV타워를 들어 가는데 입장료가 1인당 10만숨 1만원이 넘는다.
전망대로 가서 시내 잘 보고 일몰 잘 찍고 택시를 타려는데, 얀덱스 앱이 없어서 살짝 고민 중인데
현지인이 친절히 자기 앱으로 우리에게 택시를 먼저 잡아 주고는 자기도 바로 택시를 부른다.
고맙지요..
호텔로 돌아와 그동안 깍지 못했던 텁수룩한 수염을 깍으려고 이발소를 찾는데 구글지도에
호텔근처에 이발소가 있어서 갔는데 면도 하는것만 15만숨이란다. 엄청 비싸서 왜? 자기네 가게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제일 비싼곳 이란다. 서울의 청담동?
고민 살짝 하다가 내일 오전에 다른 곳 찾기로 하고 호텔근처 점빵에서 캔맥주 2개 사서 마지막 파리.
시간이 많아서 방에서 불 끄고 호텔앞의 로터리 장노출 찍어 보고.
타슈켄트의 호텔 : Grand Mir Hotel(연식에 쫌 된 4성급 호텔), 신시가지의 중심지에 있어서 위치 좋음.
7월 20일(토),
오늘은 타슈켄트의 시내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보고 찍고 하다가
오후 6시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간다..
아침 6시에 호텔에서 가까운(걸어서 15분 정도), 미리 검색해 둔 러시아정교회로 출발.
오늘은 시간이 여유가 많으니 별 걱정도 없고, 좋은 사진이나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그게 맘대로 안되지.. 혹 이발소가 있나 찾으며 천천히 가니 20분이 걸렸다.
근데 입구에서 경비원이 스마트폰은 되지만 큰 카메라는 안된다고 ㅠㅠ
걍 스마트폰으로 찍다가 좋은 장면이 나오면 슬쩍 찍고, 세상이 그렇지 뭐...^^
Holy Assumption Cathedral Church(성모승천대성당).
성모 승천 대성당은 1945년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교구의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입니다.
대성당은 1871년에 지어졌으며 1990년대에 증축되었으며, 종탑은 2010년에 재건축되었습니다.(펌글)
호텔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생각보다는 아름답고, 깔끔하고, 아침 날씨도 좋아서 꼭 추천하는 곳.
사진에 충실하게 잘 찍고, 천천히 걸어오니 7시가 조금 넘는다. 운동 잘 했네~~ 면도 고민하다가 시간이 많이 남아서 1회용 면도기 꺼내서 도전... 약 20분에 걸쳐 깔끔하게 끝~ 150,000숨(16,500원) 벌었다. 돈 보태서 맛난 저녁 먹어야지~
8시에 아침식사를 하는데 호텔식당에서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준다. 집에서 먹는 그 라면 아마도 한국라면인듯~ 세상에 외국의 호텔 아침식사에 라면이 나오다니..^^ 처음이지만 신선한 충격이다. 8시반에 방에 드와 쉬다가 12시까지 짐을 호텔로비에 맡기고 나머지 못다한 타쉬켄트 투어.
호텔직원에게 부탁하여 택시를 불러 '하자티 이맘 광장'으로 고고.
하자티 이맘 광장(Hazrati Imom majmuasi)
하자티 이맘 광장에 있는 '하자티 이맘 모스크'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주도로 2007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은 독특한 타슈켄트 건축 양식의 상징이며 이슬람 사원 입구에는 20 개의 조각된 샌들 우드 기둥이 있는 테라스가 있다. 이 사원에는 두 개의 커다란 푸른 돔이 있으며, 그 내부는 사마르 칸트의 틸라 카리 마드라사처럼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다. 돔의 창 개구부는 태양 광선이 일출에서 일몰까지 이슬람 사원 내부를 지속적으로 비치도록 설계되어 있고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이슬람 사원 안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 입구에는 높이가 53 미터인 두 개의 미나레트가 세워져 있다.(펌글)
하자티 이맘 광장 보고 찍고 , 첨탑 2개를 가진 '하자티 이맘 모스크'를 들어가 내부 살펴보고 천장 찍어주고,
나와서 '오스만 코란'이 있다고 입장료를 따로 받는 무이 무보락 마드라사는 패스(^^)하고,
'Barak Khan 마드라사'는 상점으로 변모 한것을 안타깝게 보고,
무이 무보락 마드라사(Muyi Muborak madrasah) 이 마드라사는 하지트 이맘 광장 한가운데에 규모가 작은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18 세기경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의 이름은 예언자의 머리카락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다하여 “예언자의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무이 무보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메르레세에는 현재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을 보관하게 되므로 신학교에서 코란 도서관으로 역할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트 이맘 광장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로 된 금고에 보관 되어있는 '오스만 코란'을 관람 할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 있다고.
나오다가 그 옆 신축중인 거대 모스크 ;Islamic Civilization Center 건축중인 건물
곽튜브에 나오는 식당을 찾아서 꽤나 많이 걸었다. 얀덱스앱이 없으니 대략 난감..
구글지도에는 'National Food'라는 말만 나와서 헷갈렸다. 원래의 식당 이름은 ' XADRA'
그래도 두 다리가 튼튼하지는 않지만 써 먹을만 하니 도전!!!
더운 날씨에 쬐끔 많이 걸었다.
나름 점심은 맛나게 먹고 초르수시장을 찾아 또 다시 이리저리 헤매다가 많이 걸어서 갔다..ㅠㅠ
초르수 바자르(ChorsuBazaar)
초르수란 우즈베크어로 네 개의 물길이 만나는 곳을 뜻하며, 바자르란 시장을 뜻한다. 이곳은 부하라 아미르의 명령으로 급격히 폐허가 되어 가고 있던 비비하눔 모스크의 건축자재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돔 아래가 바자르로 한낮의 햇빛을 피할 수 있다. 과일, 채소, 빵, 향신료, 각종 식용 가루 및 우유, 치즈, 샐러드, 주스, 고기 등의 음식과 음식 재료뿐 아니라 옷, 카펫, 청소도구, 가구, 철제품 등 모든 물건들을 판매한다. 실크로드 시대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두산백과).
본 시장 인근에 짝퉁시장이 너무 많다. 막상 드가보니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찾아 가는데 가까운것 같은데 헤매다가 더워서 죽는줄 ~~ 잠시 보고 찍고 건포도 사고(0,5Kg씩 두가지 합1K) 8만숨, 택시타고 호텔로 돌아와 짐 싸고 쉼~~~
좌회전 신호등이 없는 나라. 좌회전은 알아서 해야하고, 그래서 접촉사고가 꽤나 있단다..
4시반에 호텔 옆 가마솥 이라는 한식당에서 라면(7만솜)으로 이른 저녁식사. 6시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이리저리 눈 돌리고 쉬다가 밤 10시 비행기는 쓩 올라가고 난 바로 잠 들고~~ 4848Km거리에 6시간 15분 걸린단다. 비행기는 동쪽으로 가는것이 좀 빠르다.
'히바'는 우즈베키스탄 서부 호레즘 주의 도시. 약 1500년 전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도시로 우르겐치 시에서 남서쪽으로 35km정도 떨어져 있다. "히바"라는 이름은 호라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인 이곳에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카라쿰사막의 출입구이자 실크로드의 중요 경유지로 도시가 발달했다.
1500년대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트란스옥시아나를 점령했으며, 그곳에서 우즈베크 칸국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1506년 부하라에서 부하라 칸국이 세워졌고, 1510년 히바에서는 히바 칸국이 세워졌다. 히바 칸국은 1873년 8월 12일 제정 러시아가 이곳을 정복한 뒤로도 계속 남아 있다가 1920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히바의 중심인 이찬 칼라(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는 성곽 도시로서, 그 성곽과 내부의 건축물들이 거의 통째로 남아 있는 역사 도시이다. 1920년대 러시아 혁명의 후폭풍으로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구간이 잘 보존돼 있고 훼손된 구간도 1970년대부터 재건을 시작해서, 2021년에 거의 완성.
성곽 내에는 전부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 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다.
친구는 아침 사진 쉰다고 해서 나홀로~ 살짝 고민하다가 카메라 챙겨 나가서 ~~
먼저 해가 뜨는 동문으로 갔다.
오래된 문을 나서니 또 생경한 풍경이다.
미나렛도 있고 모스크도 있고 사람도 살고, 해는 떠있고..
Palvan Darvoza(이찬칼라의 동문)은 1835년 Allakulykhan에 의해 완성되었고
동문 오른쪽에는 1873년까지 노예 시장이 있었다고,
다음에 간 곳은 알라쿨리 칸 마드라사 라는 곳...입구에 식당이 있다. 2개의 정면이 있다.
알라쿨리 칸 마드라사
다음은 밤에 왔을 때의 알라쿨리 칸 마드라사의 야경사진... 또 멋있다.
북문 쪽으로 골목길을 따라서 걷다보니 아침의 분주함이 느껴지는 곳..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Pahlavan Mahmoud Mausoleum)를 갔다.
푸른 돔을 가진 히바의 수호성인인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Pahlavan Mahmoud Mausoleum)카메라 요금이 별도 계산.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전사였으며 히바의 수호성인이 된 영웅 팔라본 마흐무드(Pahlavon Mahmud)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영묘는 1362년에 지어졌으나 19세기에 재건되었으며 1913년에 징집되어 칸의 가족 영묘로 바뀌었습니다.
방은 칸 모하메드 라힘(Khan Mohammed Rakhim)의 무덤이 있는 청록색 돔이 있는 페르시아 스타일이라고.
또 다른 방에는 타일로 장식된 Pahlavon Mahmud의 무덤이 있습니다.
성지 순례지 밖에는 다른 칸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영묘에는 우아한 줄무늬 타일로 장식된 마드라사와 첨탑도 있습니다. 파흘라반 마흐무드는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전사로 존경받았던 인물입니다. 1810년에 히바 칸국 콩기라트 왕조 무함마드 1세가 정치적인 의도로 우즈베키스탄의 히바를 수호해 줄 성인으로 믿고 그의 영묘를 건설했습니다.
푸른색 타일이 인상적~ 입장료 둘이 5만숨
Arab Muhammad-Khan Madrasa(아랍 무하마드 칸 마드라사)는 히바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기념물중의 하나로 이찬칼라의 중심부에 있으며, 예전 우르겐치에서 히바로 수도를 이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616년에 처음 단층으로 세워졌었다고.
이곳 히바의 관광대표선수인 이슬람 호자 미나렛으로 간다.
히바의 이찬칼라에서 어디서나 보이는 이슬람호자미나렛....
이슬람 호자 미나렛(Islam Khoja Minaret),
이슬람 호자는1898년 26살의 젊은 나이에 대재상에 올라1898~1913년 동안 히바 칸국의 대재상이었는데
1908년 그는 이 미나렛을 건립했다. 높이는 45m로 히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관광객들은 미나렛 상부까지 올라가서 히바를 조망 할 수 있다. 역사 도시 히바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랜드마크로 도시가 크지 않은 반면 45m의 미나렛은 툭 튀어나와 어느 곳에서 봐도 눈에 띈다.
이슬람 호자 미나렛에서 잠시 휴식 보면볼수록 대단한 이곳 히바 이찬칼라의 랜드마크. 조금 더 쉬다가 북문 쪽으로 가봐야겠다. 9시에 조금은 늦은 아침을 먹고 쉼... 점심은 호텔에서 쉬다가 아침에 식당에서 가져온것으로 대충 먹기로~
3일후면 한국이라 적응 겸 해서 유튜브를 본다. 내가 잘 보던 코텐츠들이 나타나고 쭈욱 보면서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가려한다. 당구ㆍ정서주ㆍ수길따라ㆍ조국ㆍ 계속 보다가 잠자다가 또 보다가~~
칼타 미노르 미나렛 ‘칼타‘는 우즈벡어로 ’짧다‘라는 뜻으로, 계획대로라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미나렛이 건설되었어야 했지만, 착공 3년만에 공사가 중단되어 현재 미나렛의 모습이 되었다. 당시 히바 칸국의 통치자였던 Muhammad Amin Khan의 사망을 공사 중단의 원인으로 보는 듯하다. 이찬 칼라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다.
독특한 형태와 특유의 푸른 색감이 눈길을 끈다.
무하마드 아민 칸 마드라사(Mukhammad Amin-khan),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의 큰 건물로,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컸었다는 신학교로 260명의 학생이 있었고,현재는 호텔로 개조되어 잘 사용중이라는..
주마 마스지드 (금요일 모스크), 213개의 각기 다른 기둥이 압권인 이곳은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나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모스크로. 18세기 이란의 공격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 불타버렸고. 기둥 6개만 오래되었고, 나머지는 화재 이후 여러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각각의 솜씨가 다른 이유라고,
히바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꼭 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곳.
주마맛지드(기둥213개), 주마모스크는 소박하지만 정교한 나무 기둥의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운이 좋아서(내일 키르키스스탄 대통령이 와서 대청소중), 입장료 체크하는 분이 잠시 자리를 떠서~~ 공짜^^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나도 좋으다....^^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대신 홍보비는 안 받겠소..
얼른 보고 또 이동...
이찬 칼라의 서문, 이곳 이찬칼라의 4개의 출입구 중에서 가장 출입하는 사람이 많은 문.
쿤 아크(Kuhna Ark), Ichan Kala의 서쪽 성벽에 자리 잡은 Khiva의 중심부에 위치한 요새화 된 성채로,
‘오래된 궁전’ 이란 뜻을 가진 쿤 아크는 17세기에 지어진 칸의 궁전으로 타쉬 하울리 궁전 (Tash-Khauli Palace)과 구별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란다. 이곳은 전망대를 가기위해서 꼭 들르는 곳으로 입장료(10만숨,1만원)도 따로 내야 하기 때문에 전망대가 아니면 갈 이유가 없는 곳, 일몰도 좋고, 시내전망도 좋고..
어제 다녀 왔으므로 오늘은 패스..
쿤아크 앞 광장으로 가면 ' 모하메드 라킴 칸 마드라사'하고 하는 큰 마드레사가 나온다.
모하메드 라킴 칸 마드라사 건물도 크고, 아름답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
어제 예약한 'Terrassa Cafe & Restaurant'라는 식당의 3층의 오른쪽 모서리 최고 명당으로 7시반에 가서 사진 시작..
히바의 이찬칼라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멋진 노을의 사진을 편안히 맥주와 함께 식사하면서 찍고 즐기고 천천히 즐기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곳 멋진 건물들의 조명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식당에서 내려간다.
알라쿨리 칸 마드라사의 야경사진
이곳은 사막기후라서 낮에는 엄청 뜨거워서사람들이 오후 늦게 밖으로 나 다닌다.
즐겁게 이런저런 사진 찍고 10시에 호텔로 ~
내일 비행기로 타슈켄트 가서 하루 더 자고 토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
환전:오쉬에서 우즈베키스탄 돈 100달러, 타슈켄트 에서 50달러, 부하라에서 50달러 환전 우즈베키스탄에서만 모두 200$ 환전
오늘은 부하라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 도시인 '히바'까지 가서 히바의 '이찬칼라'를 알아서 보고.
아침에 구름이 쬐끔 좋아 5시반에 부하라의 마지막을 보러 고고,
친구는 팔이 아프다고 쉬고, 혼자서 가는데 어제 그 댕댕이가 마중을..^^ 이쁘네 어떻게 알고.. 구름의 색이 이쁘긴 했는데 내가 조금 늦었다 어느 건물 루프탑으로 가서 일출 해를 찍긴 했는데, 그냥 그렇다.
감동이 없다.
바로 어제의 그 오래된 시장건물 사거리에서 오가는 자전거와 사람 사진 찍고~~ 호텔로 돌아와~~
(이상은 어제 여행기 참조)
6시30분에 아침식사, 그리고 늘 하던대로 짐 싸고 7시50분에 히바를 항하여 출발~~
양옆으로 대규모의 목화밭이 이어지고 하얀 목화꽃이 드문드문 보이고 밭고랑은 바싹 말라, 보는 내가 갈증을 느낀다. 관개수로가 잘 되어 있다지만 워낙 물을 많이 요구하는 목화밭.
그래서 아랄해가 바짝 말라서 환경단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그 목화밭이 계속 이어진다. 수확이 끝낸 밀밭은 소나 말들의 간식터가 되고~~
출발한지 1시간여가 지나면서 양쪽의 밭은 어느덧 잡초와 모래가 반반 섞인 황무지로 변해간다. 물론 물을 무한정 공급하면 농사는 지을 수 있겠다. 이제 키질쿰사막의 시작인가보다. 폐허가 되어버린듯한 학교 비슷한 건물도 보이고 길옆에는 휴게소가 공사중인 곳도 있다. 교통량이 늘어가니 그럴 수 있겠다. 왕복4차선의 고속도로는 일직선으로 쭈욱 뻗어 있고, 양쪽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면 갈 수록 잡초보다는 모래가 더 많아진다.
황폐화~~~ 내 인생도 이처럼 황혼기에 접어드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다. "황폐화" 처음으로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단어다.
백지영이 노래한다 "나를 잊길바래 나를 지워줘~" 백지영의 명곡 '사랑안해' 라는 노래의 가사다. 유익종이 부르는 "삼포로 가는 길" 사랑도 이제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그 삼포는 어드메에 있는지 꼭 찾고 싶다. 이제 3일후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삼포'타령이나 하고..^^
9시20분 Gazli라는 동네가 나타난다. 길가에 주유소(가스)가 2~3개 있고 그에 딸린 편의점, 1~2개의 카페가 있는 시골의 모습. 여전히 잡초보다 모래가 더 많은 모습. 이 동네는 뭘 먹고 살지? 쓸데없는 걱정을 해 본다. 멀리 늙은 목동(?)이 2~30 여 마리의 소를 끌고 그 황무지 속으로 들어간다.
멀리 가끔 얕으막하고 붉은 기운이 도는 모래언덕이 나타나고 끊겨지기도 하고 또 이어진다. 기찻길(?) 공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
10시경 이 황무지의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느 여행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10시반에 화장하러 쉼 10시50분 출발
11시20분경 호라즘이라는 이름이 적힌톨게이트 비슷한 곳을 지난다. 11시반 왼쪽으로 '아무다리아'江과 초록의 띠가 보이는데 그 너머가 '투르크메니스탄'이란다
아무다리야강은 트란스옥시아나 지방과 호라산 지방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파미르고원 일대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아랄해로 흐른다.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구분과 겹치는 개념이다. 아무다리야강 상류는 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이루며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 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이루기도 한다. 강의 길이는 2,400 Km이다.
아랄해로 가는 아무다리야강의 왼쪽은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이고 카라쿰사막이 있고,
오른쪽은 우즈베키스탄 영토이고 키질쿰 사막이 있다,
아무다리야江을 경계로 사막 이름도 다르단 얘기... 이 부근은 옛날 호라즘왕국의 영토였고 지명도 예전 그대로 사용 ; 우루겐치,히바,키질쿰 등
아무다리야강 건너서 우르겐치 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가면 '히바'.
이곳의 아무다리아 江을 건너는 "원웨이 철교"가 있어서 기차가 지날때는 차는 통행금지. 그리고 옛날의 대우 다마스공장이 우루겐치에 있어 다마스 실은 트럭이 타슈켄트 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중간에 점심을 알아서 먹고(난 주전부리만 약간), 1시10분에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1시20분 출발, 호텔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단다.
2시10분에 히바의 이찬칼라 남문 앞 아시아 호텔 도착 방에 드와 마지막 컵라면으로 점심 해결..^^
7월 16일, 부하라의 아침이 궁금하여 새벽 4시45분에 아르크 고성으로 고고, 15분 정도 걸린다.
칼론모스크의 돔에 조명이 있어 코발트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그리고 아르크성으로 갔으나 별~~ 그래도 찍고
아르크성 바로 앞의 볼로하우스도 찍고.
아르크 고성(Ark of Bukhara)
부하라의 고성의 위치는 기원전 2~3세부터 도시의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성을 쌓은 것은 5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여러 시기를 거치며 붕괴와 복원을 반복하며 지금의 형태에 이른다. 정면의 거대한 성문(입구)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성은 1920년까지 지배자의 거처로 사용하였지만, 소련에 병합되며 더 이상 성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하라의 상징과도 같은 기념물 중 하나인 아르크 고성은 '아르크(Ark)' 자체가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잔존하고 있는 기념물 중 눈에 띄는 건물들은 역사가 긴 편은 아니다.
성벽의 울긋불긋한 흔적을 보면 얼마나 많은 보수가이루어졌는지짐작할수 있다.
지금도 뒷 쪽에는 계속 보수공사중..
Bala khauz Mosque(볼로 하우즈 모스크)는 ‘연못(khauz) 위쪽(Bala) 모스크’란 뜻으로
1718년 아르크 성의 맞은편에 왕의 기도처로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목재에 아름다운 무늬가 조각된 사원의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고 높은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1920년에는 부하라의 회중모스크(금요일모스크)로 사용되었다.
모스크 앞의 연못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 오면서 칼론미나렛 광장에 또 들러서 사진.
1535년에 처음 세워진 돔 형태의 시장이었던 Toki Sarrofon에서 또 사진, 빛이 좋으니 자꾸 발길이 간다.
바로 옆의 라비하우스에 가서 또 찍고.
시장 지나가는 사람들 찍고 7시에 호텔 그리고 아침 식사.
아침의 그 작고 오래된(약 500년) Toki Sarrofon 시장이 또 궁금하여 8시에 가서 오고가는 사람들 사진...
그러다가 빛의 방향도 바뀌고 짧아져서 9시에 방으로 컴백~
12시에 부하라의 젊은 사진작가 딜숏을 호텔에서 만나, 랍비하우스에서 샤슬릭ㆍ라그만으로 점심 먹고 택시불러 고고.
먼저 들른곳은 '바하우딘 낙쉬반디'이라는데
Bakhauddin Nakshbandi(바하우딘 낙쉬반디) 사원. 부하라 동쪽 카스리 오리폰(Kasri Orifon)에 위치한 바하우딘 낙쉬반디 모스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수피(이슬람 신비주의) 학교를 세운 바하우딘 낙쉬반디(Bakhauddin Nakshbandi)의 영묘가 있는 곳으로 묘가 많이 있고 모스크도 있고,
잠시 쉬면서 택시를 불러 '시토라이 모히 호사'로..
Sitorai Mohi-Khosa(시토라이 모히 호사) 여름 궁전에 도착.
'시토라이'는 '별'을 '모히'는 '달'을 의미하고, 호사는 궁전을 의미한다. 달과 별이 모여드는 여름궁전이라... 멋있다.
광장을 둘러싼 아담한 건물들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손님을 접대하던 접견실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유럽풍으로 호화롭고 도자기들도 비치되어 있었다. 궁전 뒤쪽은왕의 여인들의 공간인 하렘으로하렘 내부에는 카펫, 도자기와 집기들이전시되어있고, 앞에는 인공 연못 하우즈가 자리하고연못 옆에 자리한 높은 망루는 왕이 수영하는 여인들을 구경하던 곳이다. 부속건물에는 16세기에서20세기에 걸쳐 부하라 왕궁에서 사용했던 의복과 장신구와 신발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었다.
여름궁전(Sitorai Mohi Xosa) : 유목민들의 지배자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절에 따라 거처가 옮겨졌다.
이러한 습관이 부하라에도 남아 있었다. 지배자들은 더운 여름 가장 시원한 지역에 여름의 궁전을 만들어 기거하였다.
부하라 칸국의 건축 유산으로 유럽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지금은 박물관의 형태로 사용 중이다.
10시 50분 궁전을 나와 약 20분 택시를 타고 부하라 서쪽 약 6km 지점(Sumitan)에 위치한 죽음의 도시라 불리는 초르 바크르(Chor Bakr)에 11시 03분 도착하였다. 입장료 10,000 솜을 지불하였다. 무덤군을 구경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서니 무덤가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초르 바크르 영묘 주위에는 일반인들의 무덤도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스크 내부는 2016년 새로 단장을 하여 아주 깨끗하였으며, 길가로 천도복숭아가 많이 심어져 있어 하나 따 먹으니 맛이 있었다. 초르바크르까지 택시비 26,000숨(꽤 먼거리인데 한국 돈으로 2600원).
쵸르바크르(Chor-Bakr)는 부하라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의 역사단지로 대형 모스크와 마드라사, 그리고 수많은 영묘들이 있다. 10세기 사마니드 시대에 무하마드의 후손들을 시작으로 성지로 알려졌다.
16세기에 가장 번성하였다는데. 고요한 영적 공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하마드 후손인 아부 바크르(Abu-Bakr)의 4명 형제(Chor-Bakr)의 묘를 중심으로 커진 넓은 묘지로 순례자의 숙박지(khanaka), 모스크, 마드라사 순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옆쪽에는 많은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 숙박지인 하나카가 보이고 오른쪽에 푸른 돔이 있는 모스크가 보인다. 모스크 오른쪽에는 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드라사 앞과 옆에는 많은 성인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무덤은 남북 방향으로 자리하고 얼굴은 메카 방향인 서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택시를 타고 이스마일 샤마니드 영묘로 이동.
Ismail Samanids Mausoleum(이스마일 샤마니드 영묘 )
이스마일 사마니의 묘당은 현재 남아 있는 중앙아시아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인정받고 있는데, 사마니드 왕조의 창시자인 이스마일 사마니와 그의 가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묘소는 그의 강력한 통치와 부하라의 번영을 상징하고 있다.
9세기말에 지어진 건물인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이슬람 건축물이 손에 꼽힌다.
그 이유는 징기즈칸의 군대가 우즈벡 고대 오아시스 도시들을 휩쓸면서 대부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한 사마니 왕조의 건축양식이기도 하다. 규모가 작은데, 알면 알 수록 놀라운 건물이다.
1925년 흙더미 속에서 발견된 이 건물은 햇볕에 말린 벽돌이 요철 모양으로 차곡차곡 벽을 이루고 있고, 지붕은 둥근 반원 모양이다. 사각의 바닥은 땅을, 지붕은 우주를 의미한다. 정교한 조각과 기하학적인 벽돌 건축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가로, 세로가 10m인 정사각형 건축물은 비록 크지는 않지만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무늬의 빛깔이 변화하여 신비감을 준다고 한다.
특히 입구 문 위의 중앙에 있는 역삼각형은 죽은 사람을 뜻하고, 양쪽에 있는 사각형의 무늬는 이슬람교와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혼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 있는 차스마이 아윱 영묘로 간다.
Chashmai Ayub Mausoleum(차스마이 아윱 영묘) : 차스마이 아윱이 지팡이를 꽂자 치유의 연못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건물 자체는 13세기 초반에 만들어져, 부하라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문화유산이다.
이스마일 영묘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욥의 우물이라고~~
그 영묘 앞에 있는 독특한 건물도 보고, 찍고.
호텔로 가는 길에 있는 Bala khauz Mosque(볼로 하우즈 모스크)로 또 간다.
‘연못(khauz) 위쪽(Bala) 모스크’란 뜻으로 1718년 아르크 성의 맞은편에 왕의 기도처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길 건너의 아르크 고성으로 가서 찍어주고.
Kalon Tower가 있는 광장으로 가서 또 찍고. 뭐 어차피 호텔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까~~
호텔에서 쉬다가
7시에 전기차 릭샤를 타고 골목 골목을 누벼서 '초르미노르' 가서 굿 사진~~
그리고 걸어서 인근의 '9292'라는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로 기운 보충..^^
우리팀의 2조분들이 타타와 같이 식사 중이었다..^^
5년 전에 헬싱키에서 봤던 '캄피예배당'이 생각났다.
택시를 불러서 8시20분에 볼로하우스 도착, 그리고 야경사진~~ 몇장 찍고 9시경에 어제의 그 조명쇼 하는 칼론미나렛 광장으로 가서 큰 미나렛 옆의 물건을 파는 작은 모스크가 궁금하여 들어 가서
부하라 시내 모형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주인이 와서는 이곳이 뮤지엄이니 2천숨을 내란다.
장사하는 집이 뮤지엄이라는것도 그렇고, 분명 유적지인데 점포로 세를 준것도 그렇고, 빈정 상해서 걍 나왔다. 사진은 어제와 다르지 않아서 ~~ 일찍 드옴
어제와 비슷해서 몇장 찍다가 일찍 들어와서 쉬고 일찍 잠..
7월 17일(수요일), 오늘은 히바로 가는 날,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새벽에 길을 나섰다.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의 서쪽에 있고 유적의 보존상태가 좋다고 하고 차로 4시간정도 간다고~~ 가는 길의 구글지도를 보면 길을 중심으로 녹색의 띠처럼 있고 나머지는 황량한 사막지역이다. 즉 사람이 살고있는 녹색지대로 길을 낸 것이지.
암튼 서쪽으로 갈수록 사막화가 많다고 한다,
하긴 우즈베키스탄은 全 국토의 70%가 사막이란다.
市 경계를 벗어나자 과수원ㆍ농토 ~ 하늘은 뿌연 구름이 가득.. 덥지는 않다. 길 양옆에는 간혹 끝없는 목화밭이 이어지고.
길가에 수박과 멜론을 파는 노점상도 보인다. 중간에 화장하고 11시40분에 출발.
12시반(?) 정도에 도착하여 방 배정 받고, 너무 뜨거워서 밖에 나갈 생각은 없고 방에서 라면으로 간단해결..
초원의 실크로드 등대 라는 수식어가 붙은 고대도시 부하라..
부하라(Buxoro)는 제라프샨강(Zeravshan River) 하류에 위치해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주의 주도이다. 인구 약 28만명(2020년 기준)으로 사마르칸트, 히바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중 하나로, 실크로드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부하라 칸국의 수도로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고대 중앙아시아의 박물관과 같은 도시이고. 아르크 성을 비롯하여 '카론 미나렛' 등 부하라가 남긴 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부하라는 9세기 사만 왕조가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이었는데, 사만 왕조를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교역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때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당시 세계 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부하라는 1220년 봄 몽골 칭기즈 칸의 침입을 받았는데 당시 하레즘 왕조의 도시였던 부하라의 지배자는 칭기즈 칸의 지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몽골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자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 칭기즈 칸은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귀중한 유물을 약탈하면서
부하라를 처절하게 파괴하여 폐허만 남게 되었다. 부하라가 다시 제2의 운명을 개척한 건 14세기 티무르 시대였다.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승자 티무르의 열정과 이슬람에 대한 깊은 신앙으로 부하라는 찬란한 이슬람 도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거대한 성벽과 요새가 만들어지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도로가 뚫렸고 화려한 왕궁이 지어지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 병원, 도서관, 공중목욕탕, 주거지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 되어 되살아났다.
전성기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360여 개, 마드레사가 113개, 도시를 가득 채웠고
1993년에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간단점심 먹고, 4시가 쫌 넘어서 카메라 메고 슬슬 나가서 눈, 손을 사용해서 사진..
Lyabi Khause(라비하우스)라는 이곳은 부하라의 관광중심지인데 바로 코 앞이니 먼저 들러서 이런저런 사진.
중앙에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연못 주변에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샵, 작은 호텔로 둘러싸인 멋지고 핫한 곳.
여기에는 옷, 공예품,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많이 있고 항상 바쁜 곳으로
낙타와 코자 나스리딘(Koja Nasriddin)과 같은 조각상도 있다.
Lyabi Khause Square(라비하우스광장),올드시티의 랜드마크로 부하라 여행의 시발점 정도로 생각 하면 됨.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연못도 있고, 아이스크림점, 식당, 등등
Nadir Divan Begi Khanaka, 라비하우스(Leb'i Hauz)에 위치한 작은 마드라사 박물관앞의 건물, 입장료가 있어서 패스.
그리고 가까운 오래된(약 500년) 사거리에 돔이 씌워진 작은 건물로 가서 마음에 드는 사진..
이 부하라에는 오래 되고, 돔이 씌워진 시장이 세군데 있다.
Toki Sarrofon(1535년), Toqi Zargaron(1569~1570년), Toqi Telpak Furushon(1571년)
이 Toki Sarrofon은 1535년 페르시아 스타일로 지어진 유명한 지붕이 있는 시장 중 하나라고 한다.
제일 작지만 처음 세운 시장.
다음에는 지도에 미리 저장해 놓은 근처의 '포토갤러리'를 들러 사진 보고, 그 아버지 소식(작고)듣고, 페친 만들고,
그 젊은 사진가에게 좋은 곳을 추천 해 달라니까, 가까운 곳을 얘기한다.
Khoja Gaukushan Ensemble 라는 곳, 바로 가야지..
Khoja Gaukushan Ensemble에는 마드라사, Khoja Kalon의 높은 첨탑이 있는 Kalon 대성당 모스크 및 Hauz(연못)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드라사는 1562~1566년에 지어졌으며, 금요일 모스크의 개장과 함께 1598년에 복합 단지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단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모스크의 눈에 띄는 특징은 동반되는 첨탑(1127년)입니다. 이것은 '칼론타워'의 작은 버전입니다(펌글).
문이 잠겨 입장 불가(솔직히 들어가 봐야 비슷 비슷..그래서 외관만 ~~~)
이제 천천히 걸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Toqi Telpak Furushon로 간다.
세 군데의 옛날 돔 형태의 시장중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그래서 더 웅장하고 더 멋있는 곳.
Toqi Telpak Furushon은 역사적인 중심지의 일부를 형성하는 부하라에 위치한 시장입니다. 이 건축 기념물은 샤이바니 통치자 압둘라 칸 2세의 통치 기간인 1571년에 지어졌습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국가 물질문화유산 부동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펌글).
이제 이 시장에서 Mir-i-Arab Madrasa 가는 길은 오래 된 길, 양쪽으로 식당과, 호텔, 상점들이 쭈우욱~~ 늘어서 있다.
그리고 나타난 Toqi Zargaron.
Jeweler's Dome(보석상의 돔)으로도 알려진 Toqi Zargaron은 부하라의 유명한 무역 돔입니다. 샤이바니드 왕조의 압둘라 칸 2세 통치 기간인 1569년에서 1570년 사이에 건설된 이 건물은 도시의 무역 돔 중 가장 크고, 건축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곳입니다. 주요 교차로에 위치한 토키 자르가론(Toqi Zargaron)은 처음에는 보석상들의 중심지였으며 장인들이 정교한 전통 보석을 제작하는 36개의 작업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세라믹 벽돌로 지어진 구조물 자체는 더운 여름에도 내부를 시원하게 유지하도록 설계된 직경 14m에 달하는 대형 중앙 돔이 특징입니다(펌글).
왼쪽으로 돌아가면 이런저런 기념품 가게들이 나타나고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웅장하고 화려함의 끝판왕 정도 되는
이곳 부하라의 엄지척인 Mir-i-Arab Madrasa, Kalan Mosque, 그리고 Kalon Tower가 있는 큰 광장이 나타난다.
야간에 조명이 들어오면 다시 올것이라서, 날도 뜨거우니 호텔로 돌아가기로 하고 천천히 걸어서 간다.
Tim Abdulla Khan Trading Dome1577년에 지어진 건물로 처음부터 상업용 건물이었다고, 즉 상가를 잠시 들르고..
Toki Sarrofon의 사진이 궁금하여 다시 갔다.
호텔로 가다가 8시에 패션쇼를 한다는 Nodir Devon begi Madrasah(나디르디반 베기 마드레사)에 가서
패션쇼의 쇼+저녁을 18만숨(약 18,000원)에 좋은 좌석으로 예약하고 호텔로 돌아가서 쉰다.
8시 즈음에 입장하여 제일 좋은 그 좌석(제일 앞자리)에 앉아 우즈베키스탄 미녀들이 펼치는 패션쇼..
식사는 그냥저냥, 1만원 짜리의 식사를 먹는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으면서 먹는것도 나쁘진 않다.
애초에 캐러밴세라이(호텔)로 지으려고 했으나 당시 실세(왕)의 압력으로 마드라사(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즉 당시에 돈이 되는 대상(상인)을 위한 숙박시설로 지었으나 왕의 압력으로 학교로 바뀌었다는...(펌글)
8시20분 정도에 쇼가 끝나고 천천히 걸어서 이곳 부하라의 엄지척인 Mir-i-Arab Madrasa이 있는 광장으로... 고고.
멀지 않은 거리라서 Mir-i-Arab Madrasa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여 달밤에 사진....
Mir-i-Arab Madrasa(미르아이아랍 마드라사)는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종교 및 건축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16세기 초에 건축된 이 건물은 셰이바니드 왕조 시대 이슬람 건축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드라사의 인상적인 외관은 멋진 파란색 타일,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그 시대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꾸란 비문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신학교로 기능하고 있으며 수세기 동안 이슬람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쌍둥이 돔과 중앙 안뜰은 마드라사에 고요하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선사하며, 이는 마드라사의 정신적, 학문적 중요성을 반영합니다. 방문객들에게 Mir-i-Arab Madrasa는 부하라의 종교적 역사와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 할 곳으로 지금도 신학교로 사용 중...
Kalan Mosque(칼란 모스크)는 부하라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금요일 모스크로 1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다고.
Kalon Tower(칼론타워,미나렛)징기스칸이 1220년 우즈베키스탄을 정벌할 때 모든 것을 파괴했는데 이 칼란타워(미나렛)는 파괴하지 않았다 한다. 아마도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대로 둔 것이 아닐까. 일설에는 징기스칸이 이 첨탑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징기스칸의 투구가 벗겨져 징기스칸이 겁을 먹고 이 첨탑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벽돌로 다양한 문양을 만들며 아름답게 쌓아올린 47m높이의 이 첨탑은 사막을 힘들게 건너온 실크로드 대상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5시정도) 아르크 성까지 가서 이리저리 보고 찍고 호텔로 내려 오면서 찍어야 겠다.
그리고 12시에 그 부하라 젊은 사진가 만나서 외곽으로 돌기로...
부하라에서 이틀 묵은 호텔 : Asia Bukhara(3성급)으로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편안한 호텔.
아미르 티무르는 티무르제국을 건설한 사람으로 칭기즈칸에 비교가 될 정도로 정복 전쟁을 많이 하였으며 정복한 땅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인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더 유명한 것은 죽을 때 ‘누구든지 감히 내 무덤을 건드리면 전쟁의 악마가 그 나라에 닥칠 것이다’.(whoever would daredisturb the tomb would bring demons of war onto his land) 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6.22.일 구소련에서아미르 티무르의 무덤에서 유골을 꺼내었는데
그 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혼비백산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독소전쟁에서 한동안 소련이 불리한 형국에 있었는데 발굴조사가 끝나서 무슬림 전통 장례식을 거쳐
티무르를 재매장하였는데,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밀어붙이게 되었다고 하며 이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펌 글)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이 ‘구르아미르’다. ‘구르’는 묘, ‘아미르’는 지배자를 뜻한다.
제국을 지배했던 황제의 능이자 '지배자의 무덤'이다.
1403~1404년 티무르가 자신이 아끼던 손자 무함마드 술탄(Muhammad Sultan)이 이란에서 죽은 것을 추도하기 위해 지었지만, 티무르 자신도1405년 명(明) 나라를 정벌하러 떠났다가 오트라르에서 69세의 나이에 병사하여 이곳에 묻혔다.
내부는 황금색으로 되어 있고 티무르의 관은 가운데 흑색의 돌널무덤이고 오른쪽에는 손자 무함마드 술탄,
그리고 아들 샤 로흐, 샤 로흐의 아들 울루그 벡과 티무르의 스승의 관, 모두 9기의 묘가 함께 있다.
그러나 실제 관은 4m 아래 지하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 기사가 추천하는 쁠롭을 먹으러(꽤나 먼 20분거리) 가서 식당은 훌륭해 보이는데 맛도 보통은 넘는다.
그리고 그 택시로 레기스탄으로 가서 일몰즈음의 사진과 9시에 하는 조명쑈까지 보고~
레기스탄(Registan)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있는 광장이다.
레기스탄은 페르시아어로 "모래가 있는 곳"을 뜻한다.
광장 안에는 이슬람교의 학교인 마드라사가 3개 있는데.
광장 왼쪽에는 울루그베그 마드라사(Ulugh Beg, 1417년 ~ 1420년),
오른쪽에는 셰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1619년 ~ 1636년),
가운데에는 틸랴코리 마드라사(Tilya-Kori, 1646년 ~ 1660년)가 있다(위키백과).
틸라 코리 마드라사(Tilya – Kori Madrassah)
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사마르칸트 지도자 얄랑투쉬 바호두르(Yalangtush Bakhodur)에 의해 건설된 틸라 코리 마드라사는 쉐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의 출입문에 그려진 문양이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신학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그들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 출입문을 통과하여 좌측 건물로 들어서니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원의 한 벽에 메카 방향(qibla)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치형 홈인 미흐랍(Miḥrab)과 천장이 화려하게 금색으로 칠해져 있기에
‘황금을 입힌’이란 뜻을 가진 틸라 코리 사원 이름이 생긴 것이라네.
셰르도르(Sher-Dor) 마드라사는 '사자가 새겨진'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드라사로, 울루그 벡 마드라사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1636년 사마르칸트의 지도자 얄랑투쉬 바호두르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사슴을 쫒는 사자와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고 한다.
9시가 되면 조명이 예쁘게 켜지고 조명쑈가 시작된다.
아쉬운점은 그 색깔이 쪼매 촌스럽다는...
호텔로 와서 맥주 한잔하고 씻으니 10시...^^
푹 자고 다음 날(7월 15일) 새벽 , 친구와 카메라를 메고 5시에 또 찾은 레기스탄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