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39)/ 이탈리아
베네토의 비첸차 시와 팔라디오 양식 건축물
(City of Vicenza and the Palladian Villas of the Veneto; 1994)
베네토 주[Veneto Region] 파도바, 로비고, 트레비소, 베네치아, 베로나와 비첸차 지방[Provinces of Padua, Rovigo, Treviso, Venice, Verona and Vicenza]에 속하는 비첸차는 기원전 2세기경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건설되어 15세초부터 18세기 말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 아래 번성했다. 이곳에서 발생한 ‘팔라디오 양식[Palladian]’은 15세기에 활약한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1580)의 건축물들에서 시작되었다. 팔라디오는 고대 로마의 유적을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저택을 비롯하여 독특한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을 설계하였다. 팔라디오 양식의 건물은 베네토 지방 전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영국과 유럽 전역 그리고 북아메리카까지 확산되어 건축 예술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체적으로 새로운 특징을 만들어 내면서도 전통적인 건축물과 조화롭게 융화되어 있는 비첸차는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건축물로서 독창적인 건축 예술을 꽃피운 곳으로 평가된다. 비첸차는 건축물을 통해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과 전 세계의 도시 계획 및 건축 설계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 비첸차는 이탈리아 북쪽 베네토 지방의 베리치(Berici) 산과 레시니(Lessini) 산 사이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여 천연의 통행로가 되었다. 비첸차는 기원전 2~기원전 1세기경 베네티에 의해 최초로 건설되었고, 기원전 49년 무니키피움(municipium)이라는 로마 도시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 받았다. 동서로 나 있는 팔라디오 거리[Corso Palladio]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decumanus maximus; 중앙 도로)가 되고, 남북으로 이어지는 포르티 길[Contra Porti]이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 넓은 광장)가 되는 식으로 오늘날의 도시에서도 비첸차의 고대 도시 계획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재위 아래 세워진 공공건물 중 극장이 현존하고 있으며, 좀 더 현대적인 건축물이 추가되어 도시의 북쪽으로 수도를 연결하는 구간으로 통합이 되었다. 이 도시는 4세기 말에 기독교 교구의 관할권이 되었다. 그러나 5세기 들어 야만인들이 끊임없이 출몰하여 도시를 유린하고 약탈했으며, 끔찍한 역병이 돌아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이어 랑고바르드 왕국의 일부가 되어 36공국 가운데 하나의 수도가 되었다. 로마 교황이 샤를마뉴 대제를 시켜 롬바르드 족을 내몰아 버리자 비첸차는 프리울리(Friuli)의 프랑크 족 지위를 얻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 산 펠리체와 산 피에트로의 최초 베네딕트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침략자들은 카롤링거 왕조의 붕괴를 지켜보았고, 마자르 시대에 약탈이 잦아지자 이에 대비하여 도시의 성벽을 축조하게 되었다. 12, 13세기 동안 주교의 영지를 받은 가신들과 황제 당원간의 잦은 유혈 사태로 비첸차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이 지역은 봉건 군주의 영지로 작게 나눠지고 서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할 경우에는 함께 뭉쳐서 봉기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로마 도시와 같이 비첸차도 나름대로 행정력이 발전하여 1208년에는 성곽 내부에 세운 건물을 관리하고 통제하였다. 새로운 도시 주변 시설물이 델라 스칼라 가문에 의해 시내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지역의 작은 영주들이 서로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고요한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위협을 느끼고 1404년에 전 지역을 통합했다. 18세기 후반 공화국이 쇠퇴할 때까지 비첸차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로서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탁월한 예술 활동을 했다. 봉건 귀족들의 권력은 떠오르는 상공인 계급층에게로 넘어갔다. 봉토를 몰수해 베네치아 귀족 가문에 팔아넘겼고, 이들은 그 땅에 호화로운 대저택을 짓고 대규모 농토를 개간했다. 현존하는 4개의 주요 광장 주변으로 마을이 양극화되었으며, 14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도시는 제한적으로나마 동서로 확장되었지만 기본 틀은 이후로도 계속 유지하였다. 부유층이 생기면서 베네치아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치스러운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출현으로 베네치아의 취향에 내구성을 더한 형태가 마련되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고대 로마제국의 생생한 건축물과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의 작품을 연구하고 깊이 감명 받았다. 그는 비첸차에 바실리카(Basilica), 로지아 델 카피타니아토(Loggia del Capitaniato), 테아트로 올림피코(Teatro Olimpico) 등의 공공건물과 일반 건축물을 건설했다. 반원 모양의 영구적인 실내 극장 테아트로 올림피코는 팔라디오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작품으로 완공은 그의 제자 빈센초 스카모치(Vincenzo Scamozzi)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내에는 23개의 건축물과 주변에 3동의 빌라가 있다. 궁전이나 마을의 집들은 중세 도시의 외형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앙상블을 연출하고 있으며, 쭉 뻗은 도로의 외관에서 베네토 고딕 양식과 팔라디오의 독특한 고전주의 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극장 설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시의 건축은 현실과 환상이 서로 교차되는 느낌으로 비첸차에 독특함을 더해 주고 있다. 라 로톤다(La Rotonda)로 알려진 외곽에 자리한 빌라의 위치도 크리콜리(Cricoli)에 있는 빌라와 유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오스트리아제국과 이탈리아제국의 통치를 받던 19세기에는 전반적인 도시 형태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지난 직후에 비로소 도시는 서쪽을 향해서 상당히 많은 주택이 들어서고 산업이 팽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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