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33)/ 이탈리아

 

로마 역사 지구-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 1980)

 

 

 

 

 

 

 

 

 

 

 

 

 

 

 

 

 

 

 

 

 

 

 

 

 

 

 

 

 

 

 

 

 

 

 

 

 

 

 

 

 

 

 

 

 

 

 

 

 

 

 

 

   로마는 로마 공화정과 로마제국의 중심지였으며, 4세기에는 기독교 세계의 수도였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가 세웠다고 한다. 이 지역은 라지오 주의 로마 지역[Province of Roma, Lazio region; 이탈리아]과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 바티칸 시국]에 해당하며,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1990년에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 Urban VIII)의 성벽까지 확장 지정함에 따라 포룸(Forum)아우구스투스 영묘(靈廟)하드리아누스 영묘판테온트라야누스 원주[Trajan’s Column]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원주교황령 로마 내의 종교 건축물공공 건축물과 같은 고대 기념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치외 법권[extraterritorial]’이 보장되는 바티칸 시국의 문화유산은 산타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 성 요한 라테란[St John Lateran] 성당, 성 바울[St Paul] 성당과 같은 독창적인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산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기독교 세계의 건축과 기념물 및 예술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국이 1929년에 체결한 라테란(Lateran) 협정에 의해 많은 유산에 치외 법권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영토에 있는 유산은 바티칸 시국의 독점적인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앞의 세 성당 외에도 칸첼레리아(Cancelleria; 1483~1517), 마페이(Maffei) 궁전, 산 칼리스토(San Callisto) 궁전, 그리고 건축가 베르니니(Bernini)와 보로미니(Borromini)가 수리했던 프로파간다 피데(Propaganda Fide) 궁전과 같은 여러 훌륭한 궁전들이 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종교와 도시 계획 면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로마 바실리카(basilica; 교황으로부터 특권을 받아 일반 성당보다 격이 높은 성당)의 네 곳 중 한 곳이다. 교황령 로마에서 이 성당은 식스투스 5세(Sixtus V)의 도시 설계에서 지렛대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되었다. 대표적인 종탑과 둥근 천장이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로마 전경에서 특징적인 부분이다. 이 바실리카의 특징은 모자이크의 수가 많고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36개의 패널로 구성된 신도석의 모자이크와 5세기에 만들어진 아치형의 모자이크 장식, 그리고 1295년에 완성된 애프스(apse)의 모자이크가 대표적이다. 아름다운 건물 뒤편에 있는 카를로 라이날디(Carlo Rainaldi)의 작품(1673년)은 바로크 건축물 중 가장 엄숙한 이미지를 풍긴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San Giovanni in Laterano) 성당은 312년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에게 주교좌(主敎座)를 놓을 수 있도록 허용했던 로마의 첫 대성당이다. 교황은 클레멘스 5세(Clemens V, Clement V; 재위 1305~1314)가 아비뇽(Avignon)으로 교황좌(敎皇座)를 이전할 때까지 라테란 궁전에 살았다. 현재의 명칭은 이 교회 세례당의 중요성과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 성자들에게 헌정한 베네딕트 수도원[Benedictine monastery]의 영향으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5개의 신도석이 있으며, 외관은 단순하지만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첫 대형 복원 공사는 교황 성세르기우스(Saint Sergius; 재위 687~701)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교황 세르기우스 3세(Segius Ⅲ; 재위 904~911)는 지진으로 파손된 바실리카를 이전의 성당 토대들을 사용해서 과거의 외벽 안에 완벽하게 재건하였다. 그리고 재건 이후에 바실리카를 정식으로 세례 요한에게 봉헌하였으며, 이후 교황 루치우스 2세(Lucius Ⅱ; 1144~1145)를 거쳐서 사도 요한에게 봉헌하였다. 1646년에 이 바실리카는 붕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Innocentius Ⅹ; Innocent Ⅹ)는 1650년 성년(聖年)에 대비하여 보로미니에게 재건 임무를 위임하였고, 보로미니가 건물을 재건하면서 교회는 바로크식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산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San Paolo fuori le Mura) 대성전은 314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의 요구로 지어진 로마의 원로 대성당[patriarchal basilica]의 네 곳 중 한 곳으로 이후에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1823년 화재로 거의 전소된 이후, 이 성당은 건축가 폴레티(Poletti)가 재건하여 1854년에 공사를 마쳤다. 현재 이 대성당의 내부는 80개의 몬토르파노(Montorfano) 산 화강암 기둥에 의해 신도석이 5개로 나누어져 있다. 커다란 창문 사이에는 이집트 산 설화 석고 평판으로 마감한 벽이 있으며, 벽의 상단에는 성 바울의 삶을 표현한 36개의 프레스코가 있다. 그리고 벽 아래에는 프리즈(frieze; 건물 윗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띠 모양 장식을 한 것)가 전체 중간 복도까지 이어진다. 건물 정면의 안쪽 벽에는 이집트 총리가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y XVI]에게 바친 6개의 대형 설화 석고 기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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