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31)/ 이탈리아
발카모니카의 암각화(Rock Drawings in Valcamonica; 1979)
롬바르디아 주[Lombardy], 브레시아 현[Province of Brescia]의 롬바르디아 평원에 위치한 발카모니카(Valcamonica)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사 시대의 암각화[바위그림]가 모여 있다. 선사시대의 농업과 항해, 전쟁, 마술에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는 기호 및 그림은 140,000여 점에 달하며 약 8,000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그려진 선사시대 암각화 뿐 아니라 로마 시대, 중세시대, 근대에 걸쳐 그려진 암각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8,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발카모니카의 암각화는 선사시대 인류의 관습과 사고방식에 대한 뛰어난 조형적 기록이다. 이들 암각화에 대한 체계적 해석과 유형학적 분류 및 연대기적 연구는 선사시대에 대한 연구와 사회학・민족학 분야에 크게 기여하였다. 발카모니카에는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록 지방 최대의 암각화 집단이 있다. 여기에는 농경과 항해, 전쟁, 마술 등의 장면을 묘사한 약 140,000점의 암각화가 지표에 노출된 2,400개의 바위에 그려져 있다. 암각화가 가장 많은 지역은 콘카레나(Concarena) 봉우리와 피초 바딜레 카무노(Pizzo Badile Camuno) 봉우리 사이의 계곡 저지대이다. 암각화의 몇몇 시기는 카무니크(Cammunic) 사회의 발전에 맞춰 판별할 수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인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그림에서는 사냥과 초기 문명의 장면들이 나타나고, 기원전 4000~기원전 3000년의 신석기시대에서 빙하기 말기의 그림에는 종교적인 묘사가 처음 선보인다. 이 시기는 카무니크 예술의 절정으로 일상생활의 묘사와 함께 사람을 그리는 것이 점차 중요해졌다. 기원전 3000~기원전 2000년의 동석시대(銅石時代)에는 그림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냥과 농촌 생활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거의 서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여성의 성년식을 묘사한 장면이 나타난 것은 이 시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기원전 1000년 이후에는 카무니크 사회의 고립이 끝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영토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종종 일어났다. 전투 장면이 바위에 조각되었고, 오두막・마차・수확・무기를 나타내는 그림도 새겨졌다. 카무니크 예술은 이 시기에 최고점에 달한 뒤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제8천년기의 전한랭기(前寒冷期)로, 당시에는 울창한 숲에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주요 수종을 차지하고 있었다. 카무니크 부족 가운데 최초로 수렵 활동을 한 사람들은 산비탈에 집단으로 거주하였다. 특히 해빙기 때에는 눈사태가 빈번했기 때문에 계곡 바닥 지역에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았다.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후 476년 사이에 로마가 발카모니카를 점령하였다. 이 지역에는 철광산이 있어서 켈트족 장인은 여기서 채굴한 철로 좋은 품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완전한 정치적 자치권과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발카모니카는 로마시대에도 이민족의 공격을 받았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헤룰리 족[Herulians]이 침략을 하고, 곧이어 542년의 동고트 족의 침략으로 대규모 살상과 파괴가 일어났다. 랑고바르드 왕국(568~774)이 발카모니카 계곡을 지배하고 있을 때 프랑크 족이 다시 이 지역을 빼앗았다. 발카모니카에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찾아온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교회와 구호소를 설립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구제 활동을 펼쳤다. 서기 1000년 무렵, 발카모니카 계곡의 농경 공동체는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고 자치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단위 공동체 비치니(vicini)의 연합체인 레 비치니(Le vicini)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164년 이후 황제의 승인으로 자치 공동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428년 발카모니카는 베네치아 공화국 치하에 편입되었고, 이후 25년 동안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에서 이 계곡의 합병을 두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발카모니카의 경제적 번영은 수도승들이 생산하는 양털 산업에 달려 있었으나 고지대의 목축업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철광산을 보유한 마을들 또한 중요한 위치를 점하기 시작하였다. 1769년 프랑스가 브레시아(Brescia)를 점유하면서 발카모니카는 ‘칸토네 델라 몬타냐’(Cantone della Montagna)라는 지명으로 바뀌며 7개의 마을로 분할되었다. 1797년에는 세리오(Serio) 자치구가 형성되어 오글리오(Oglio) 강 오른쪽 강변의 자치체를 포함시켰고, 왼쪽 강변의 공동체는 브레시아에 귀속되었다. 1801년에 발카모니카의 모든 지역은 브레시아의 관할에서 벗어나 세리오에 합병되었다. 농업과 목축업은 나폴레옹 치하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오스트리아는 이 계곡 지역을 세리오에 재합병시켰다. 1815~1818년에 발카모니카는 기아와 전염병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왕국이 창건될 무렵, 발카모니카 계곡의 52개 자치체는 브레노(Breno), 에돌로(Edolo), 피소그네(Pisogne)의 세 지역으로 나뉘었으며, 브레노가 중심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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