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0)/ 이탈리아

 

나폴리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Naples; 1995)

 

 

 

 

 

 

 

 

 

 

 

 

 

 

 

 

 

 

 

 

 

 

 

 

 

 

 

 

 

 

 

 

   캄파니아 지방[Campania] 나폴리 시[City and Province of Naples]에 속하는 나폴리는 기원전 470년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네아폴리스(Neapolis; ‘새로운 도시’라는 뜻)라는 도시로 건설되었으며, 그 모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오보(Nuovo) 성과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성당과 같은 훌륭한 기념물이 풍부한 독특한 유적이다.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오늘날의 도시 구조에는 그 도시의 유구한 역사가 간직되어 있다. 나폴리는 거리의 패턴, 여러 시대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나폴리 만에 자리 잡은 입지 조건 등으로 유례없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나폴리의 중요성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도시 구조에 기인하며, 무려 2,500년의 도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식민 도시로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발굴을 통해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식민 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성벽 가운데 3개의 구역은 북서쪽에서 볼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은 대규모의 극장, 묘지, 지하 묘지 등 훨씬 더 구체적이다.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 지역의 거리 구획은 이 같은 고전적인 기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의 시기에는 교회 건물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성벽 바깥쪽의 산 젠나로(San Gennaro) 교회, 산 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교회, 성 조반니 마조레(San Giovanni Maggiore) 교회 등은 4세기 및 5세기 건축의 유물이다. 14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의 산타 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 예배당은 나폴리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알려져 있다.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 성은 노르만시대로부터 전해지는 가장 구체적인 유적이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Lucius Licinius Lucullus)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요새 겸 수도원으로 세워진 그 건물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축이 이루어졌으며, 17세기 말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노르만・슈바벤 시대에 지어진 도시는 거의 고전적 성벽 내부에 남아 있었지만 앙주 왕가가 들어서자 마을 외곽이나 주변 마을로 흡수되거나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서양 예술과 건축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고딕 양식이 국내의 건축과 종교 예술 분야에 만연했다. 앙주 왕가 기간 동안에 새로운 성당, 산 로렌초 마조레(San Lorenzo Maggiore) 성당, 산 도미니코 마조레(San Domenico Maggiore), 산타 키아라와 그 밖의 교회 건축물, 그리고 누오보 성, 타란토 왕자의 카푸아노(Capuano) 성과 궁전과 같은 일반 건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의 강한 영향을 받아 나폴리에는 정교한 프로방스식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아라곤 왕조가 즉위하자 많은 건물이 지어졌으며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성벽을 새로 단장하고 보수 개선하였다. 나폴리의 르네상스 유산은 대부분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작품이고, 일부는 카탈로니아의 건축물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궁전은 이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산타 카테리나 포르미엘로(Santa Caterina a Formiello)와 몬테올리베트 복합 단지[Monteoliveto complex] 등 많은 주요 교회 건축물들이 이 시대에 세워졌다. 16세기 초, 이후 두 세기 동안 이어지는 스페인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이때 방어 시설을 강화하게 된다. 특히 톨레도의 페드로 총독이 다스린 20년간,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그의 구상 중 일환으로 도시 정책이 수립되었다. 1600년에 왕궁을 짓고, 한쪽에는 플레비시토(Plebiscito) 광장이 건설되었다(1510~1593). 교회 건물에는 분수대, 자선 기관 단체인 몬테 데이 포베리 베르고그노시(Monte dei Poveri Vergognosi), 산타고스티노 데글리 스칼치(Sant'Agostino degli Scalzi), 카포디몬테에 있는 예수회 학교 박물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 도시는 외곽으로 계속 뻗어 나갔고, 이곳 역시 대규모의 종교 건축물과 일반 건물들이 세워졌다. 성벽의 내외부에 조성한 구역은 국적, 사회 계급과 사업 업종별로 구별하였다. 항구도 17~18세기에 걸쳐 도시의 증가하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성장하였다. 19세기에는 도로의 계획에 급진적인 변화를 보인다. 페르디난트 6세(Ferdinand IV)의 재위 당시 세운 메르카토(Mercato) 광장이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이후 목재로 지은 막사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1860년 대통합으로 대대적인 사회 복구 계획과 사회 재건 사업이 벌어져 빈민가를 깨끗이 청산한 결과, 초기에 세웠던 많은 건축물들이 제거되었다. 도로 역시 구 시가지의 도로를 부수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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