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이상진
    
     그리운 부석사 / 정 호 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1997년>
    
    

    죽음도 불사한 '사랑의 의지'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제8번(비창)1악장

     



    
    
    
    ▲ 일러스트=클로이
    
     사랑의 기교 2 ―라포로그에게 / 오 규 원
     
    사랑이 기교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나뭇잎 나무에 매달리듯 당나귀
    고삐에 매달리듯
    매달린 건 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사랑도 꿈도.
    그러나 즐거워하라.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유행가라는
    사실은 이 시대의
    기교가 하느님임을 말하고, 이 시대의
    아들딸이 아직도 인간임을 말한다.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기교, 나의 하느님인 기교여. 
    <1978년>
    

    '사랑'은 멍청한 말…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기교

    Edward Elgar /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Op.12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상그릴라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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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이상진
    
     서울역 그 식당 - 함 민 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1999년>
     

    바라볼수만있어도 - 유익종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합니다 ^^* 김선우·시인

    함민복(46) 시인이 강화도에 들어가 산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시인은 동네의 어부 형님들을 따라다니며 철마다 다른 이름의 물고기를 잡고 뻘 낙지를 잡아 낮술도 할 줄 아는 어민 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다행이다. 그는 가난하다. 그런데 그의 가난은 춥고 궁핍한 느낌보다 어쩐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가난'의 느낌을 풍긴다. 시인의 가난이라 그런 것일까. 가령 이런 얘기는 어떤가. 1998년 무렵. 그가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예술가상'이라는 상을 하나 받았다. 상금이 500만원인, 당시로는 제법 쏠쏠한 상이었다. 참말 오랜만에 거금을 쥐어보게 될 시인은 내심 들떴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걸! 마침 IMF한파를 맞았던 그 해에만 상금이 사라져 버렸다. 상금 대신 트로피를 주었다는데, 그 트로피 조각상이 청동인지 돌인지 하여간 엄청 무거웠다고 한다. 상금 없이 달랑 트로피만 주어졌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무거운 트로피를 들고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인은 내내 중얼거렸다. "이 무거운 게 쌀 가마니였으면 얼마나 좋아!" 눈물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결국은 빙긋이 웃게 되는 일들과 시인은 인연이 많다. '서울역 그 식당'과의 인연도 그렇다. 그대를 보려고 식당 구석에 앉아있는 시인. 그대가 가져다 준 밥. 시인은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온다. 그대가 어떤 그대인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시인이 고백했던 그대다. 그런 그대가 밥을 가져다 주었으니 나는 그저 밥을 먹고 나온다. 술을 가져다 주었으면 술을, 상처와 고독을 한 양푼 가져다 주었으면 상처와 고독을 그저 달게 받았으리. 사랑하는 그대가 내게 주는 것이므로! 가장 함민복스러운 '긍정의 힘'이 '서울역 그 식당'에도 뻗어 있어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 그의 초기시들엔 반생명,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불안, 공포, 분노가 번뜩인다. 독설도 마다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가 강화도 사람으로 10년 넘어 살고 나니 부드럽고 강인한 갯벌의 침묵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날 선 절규 대신 조용한 침묵으로 시를 짓거나 침묵에 가깝게 노래한다. 부드러운 수평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지켜가는 갯벌처럼. 갯벌에서 하루 종일 반죽을 개며 노는 그에게서 '말랑말랑한 힘'을 가진 시들이 '쌀 가마니처럼' 쏟아졌으면!

    2oo8/1o/11/


    Edi .【 Shangri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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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클로이
                
                 열애 / 신 달 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2007년>
                

                 

                상처처럼 온 당신… 그리움으로 욱신거린다

                Laura / Ace Cannon(미국,1934~ ) / Saxophone 

                 


              
              
                
                
                
                ▲ 일러스트=이상진
                
                 가난한 사랑 노래 / 신 경 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1988년>
                 
                가진 것 없어도 사랑하는 어여쁜 청춘이여 
                 
                
                   Himno Al Amor (사랑의 찬가) / Dyango
                

                 


              
              
                
                
                
                ▲ 일러스트=클로이
                
                  저녁에 / 김 광 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69>
                 살아온 날들… 그 글썽임이 별빛으로 빛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유심초
                
                


              
              
                
                

                  ▲ 일러스트=이상진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도 종 환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1986년>
                   다시 만나자, 당신은 흙이 되고 내가 바람이 되어

                  Pardonne Moi (나를 용서해 주세요) / 남택상


              
              
                
                
                
                ▲ 일러스트=클로이
                
                
                  갈증이며 샘물인 / 정 현 종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1999년> 사랑하는 너, 내 마음속의 시소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2악장 (로망스)


              
              
                
                
                
                ▲ 일러스트=이상진
                
                 새벽밥 / 김 승 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
                 
                 
                

                그래도, 껴안을 수 있는 사랑이 있기에...

                Ballade Der Sehnsucht / Monika Martin


              
              
                
                
                
                ▲ 일러스트=클로이
                
                 남편 / 문 정 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 Tammy Wy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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