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이상진
    
     즐거운 편지 / 황 동 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1958> 
     
    **************
     
    처음에 사랑이 있었다, 마지막에도 사랑이 있을 것이다 
     
     
    베토벤 "Romance" 2번 F장조 Op.50



    
    
    
    ▲ 일러스트=클로이
    
    그대 있음에 / 김 남 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1965>
     
    사랑은 神에게의 질문, 탄식, 갈망 
    


    그대 있음에/김남조 시/김순애 곡/김인혜(So)

    Future Is Beautiful / Daniel Kobialka



    
    
    ▲ 일러스트=이상진
    
     찔레꽃 /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앳어라 벙어리처럼 하앳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2006년>
     '타임캡슐'에 묻힌 옛사랑의 흔적 
    

    Lost Love (잃어버린 사랑) / Zauber Der Panflute



      
      
      ▲ 일러스트=클로이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966년>
       '바람'이 빚어낸 만남과 이별의 변주곡 
      

      Wind / Lee Oskar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성 미 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2003년>
       그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변하겠습니다 
      


      Mexican girl / Smokie



      
      
      ▲ 일러스트=클로이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985>
       
      연인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 풍경' 
      

      White Rose / Mehdi

       



      
      
      
      ▲ 일러스트=이상진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떠돌던 그곳… 너는 없다

      이연 (異緣) / 유익종


      
      
      ▲ 일러스트=클로니 먼 후일(後日) / 김 소 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1926년>
       
           *****************
       
      어제도 오늘도, 먼 훗날에도 잊지 못할 '임' 
      
       
          Una Lagrima Furyiva(남몰래흐르는눈물)/Giovanni_Marradi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하는 까닭 / 한 용 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 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1926년>

 

******************

 

나의 죽음조차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Return To Love / Kevin Kern

     




▲ 일러스트=클로이

 서시 / 이 성 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

 

마음의 낮은 자리에 빗물처럼 고이는 사랑 ^^*!

Just For You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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