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이상진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 라 연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더욱
<1990년>
"가끔 전기가 나가도 좋아… 당신과 함께라면"
Sad Remembrance / Pra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