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무덤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 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2007> Danny Boy - Mickey New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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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었네 <1967>

               

               

                    Sympathy (연민의 정) / 남택상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께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되고 놀란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듭니다. <1926>
      A love so beautiful / Michael Bolton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가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때
내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1990>
Star Island / Tim Janis

Star Island / Tim Janis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홀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울 때는 인적(人跡)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1971>

    Why Worry / Charlie Landsborough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 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잇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55년> 목마와 숙녀 / 박인희 낭송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랑하고
      한게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 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는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 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애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이.
      아름다운 한게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1996>
      꿈속에서[산사의 명상음악]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앗던 밤들아
창밖을 떠 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좋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면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

                                          

                                                                           타이스명상곡 기타연주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Tombe La Neige(눈이 내리네) / Paul Mauriat

대설주의보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끄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만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끊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  

눈이 내리면 / 백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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