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잠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 할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1938>
                              
 

한 잎의 여자 오 규 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 눈물같은 여자, 슬픔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묵화[墨畵] / 김 종 삼

    물먹는 소 묵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969년 작>
    귀향 / 곽성삼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 실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앗다 산다는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않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픈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빔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冬天"(동천)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Sweet People / A Wonderful Day
      
      
              "즐거운 편지"



              황동규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때에
              오래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햇다.
              내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것이다. Innocence(순결) / Giovanni Marradi

           
           

           

          '남해금산'



          이성복





          한여자 돌속에 뭍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물속에 들어 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Carmelo Zappulla
          Questo Grande Amore(위대한 사랑)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 훨 훨 깃을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불러 한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아라. From The New World / Tol & Tol 모 일간지(조선일보)에 연재되는...현대시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詩 100편중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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