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1962년>    

 
A Love Idea / Mark Knopfler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 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1987년>
      
      
      Rivers Of Babylon / Bohey M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2001년>       
      
      
      
      봄 / 산사의 명상음악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Memories / Ralf Bach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1983년>       
      
      
      
      Forever / Giovanni Marradi 
      

      
       봄바다 /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2005 년>       
      
      
      
      Living on Love / Alan Jackson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946년>
          저녁놀 / 박경규 작곡, 로망드 마루 orch.

          
          
           바다와 나비   /  김기령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939년>
          
          Ave / Ralf  Bach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2007년>
              사랑의 기쁨 / 클래식 기타연주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75>
               
              
              송학사 / 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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