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8)/ 이탈리아

 

카세르타의 18세기 궁전과 공원, 반비텔리 수도교, 산 레우초

(18th-Century Royal Palace at Caserta with the Park, the Aqueduct of Vanvitelli, and the San Leucio Complex; 1997)

 

 

 

 

 

 

 

 

 

 

 

 

 

 

 

 

 

 

   캄파니아(Campania) 주 카세르타와 베네벤토 시[Provinces of Caserta and Benevento]에 속하는 카세르타(Caserta) 궁전 단지는 18세기 중반 부르봉 왕조의 카를로스 3세가 지시하여 건설한 궁전 복합 단지이다. 베르사유 왕궁이나 마드리드에 있는 왕궁과 겨룰 만한 궁전을 짓고자 공원과 정원, 자연 숲지대, 사냥터, 실크 공장을 한데 모아 독특한 거대 궁전 단지를 조성했다. 이 궁전 단지는 자연을 제한하기보다는 자연을 융화하여 유형의 형태로 표현한 계몽주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잘 구현한 건축 단지이다.

  카세르타 궁전 단지는 18세기의 다른 왕궁들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궁전과 공원은 물론 주변 자연 경관에서부터 당시 도시 계획 원칙에 따라 조성된 신도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설계 기획을 표현하고 있다. 실크 생산을 위해 지어진 벨베데르의 산업 건축물은 원래의 건축 개념 및 관리의 밑바탕에 깔린 이상주의적 원칙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건축물이다. 1734년, 필리페 5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3세가 나폴리의 왕으로 즉위했다. 나폴리는 더 이상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독립 왕국이었다. 카를로스 3세는 1750년, 베르사유 궁전과 견줄 만한 새 궁전을 짓기로 결정했다. 새 궁전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과 경쟁하게 될 신도시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로마 성베드로 성당 복원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건축가 루이지 반비텔리(Luigi Vanvitelli)를 고용했다. 1752년에 ‘초석[first stone]’이 놓였고, 공사는 반비텔리가 사망한 1773년 이후 카를로스 왕의 계승자 페르디난드 4세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몬테마이우올로(Montemaiuolo)와 몬테브리아노(Montebriano) 두 언덕에 있는 보스코 디 산실베스트로(Bosco di San Silvestro)는 포도원과 과수원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1773년, 페르디난드 4세는 이곳에 울타리를 둘러 사냥터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의 2층 건물은 사냥용 오두막으로 아래층은 농사일의 목적으로 쓰였다. 산 레우초는 정상에 있는 롬바르드 교회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냥을 위한 숙소 벨베데르는 카세르타의 왕자가 16세기에 지은 건물이다. 원래 카를로스 3세가 매입했었던 영지로, 1773년에 페르디난드 4세가 자신의 아들이 죽고 난 후 버려졌던 낡은 사냥용 오두막을 개조했다. 1776~1778년까지 벨베데르는 복원되었고, 중앙 홀은 교회가 되었다. 1778년, 페르디난드 4세는 실크를 생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페르디난드 4세의 건축가 콜레치니(Collecini)는 목적에 맞도록 건물을 개축하여 학교, 교사를 위한 숙박 시설, 누에실, 실크 방적실과 염색실이 있는 거대 산업 단지로 전환시켰다. 페르디난드 4세는 1789년 산 레우초 직할 식민지[Royal Colony]를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법령을 공포했다. 사회주의 형태의 원형에 해당하는 정책으로 노동자 복장 통일, 성과급 급여율 인하, 지참금 폐지 등의 법령이었다. 콜레치니는 ‘페르디난도폴리스(Ferdinandopolis)’라는 도시를 설계하고자 마을을 확대하기 위한 차기 10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나, 프랑스의 점령으로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왕궁의 정원에 있는 연못과 왕립 실크 공장, 그리고 계획 신도시에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따라서 피조(Fizo)에서 몬테브리아노 정상까지 38㎞에 이르는 구간에 걸쳐 물을 끌어오는 카롤리노(Carolino) 수로가 건설되었다(1769년 완공). 마지막 구간은 티파티니 언덕을 관통해 뻗어 있다. 왕실 부지에서 카세르타베치아라는 중세 마을과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경관이 내려다보이는 지역이다. 1744년, 카를로스 3세는 풍요로운 카르디텔로(Carditello) 지역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1784년, 시골 주택 단지와 주요 건물들로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난 도로가 조성된 단지의 일부를 이용해 사냥을 위한 숙소를 건축했다. 중앙에는 국왕을 위한 방이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농산물, 작물 재배 활동과 관련된 방이 있었다. 로마 원형 경기장을 닮은 앞뜰은 경마장으로 쓰였으며, 분수와 오벨리스크로 장식되어 있다. 19세기에 페르디난드 2세는 농경 활동을 늘렸다. 왕궁은 직사각형 구조로 내부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4개의 큰 안뜰이 있었다. 5층 건물 구조에 면적 45,000㎡, 높이 36m에 달했다. 정면 파사드에만 143개의 창이 있고 건물 전체에는 1,200개의 방과 34개의 계단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벽돌조 건물로 1층과 2층은 트래버틴 마름돌을 마주보고 있다. 중앙에는 둥근 지붕이 전체 구조물을 덮고 있다. 파사드 앞은 타원형 모양을 한 연병장이 있다. 내부에는 3개의 팔각형 현관이 건물의 주 통로를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이 3개의 현관은 전체 건물의 포인트 역할을 한다. 주 계단을 통해 18세기 양식의 가구가 배치되었고, 이를 따라 치장된 국왕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베르사유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예배당은 아래층의 현관으로 갈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특징적인 건물로는 18세기 양식 중 뛰어난 사례로 간주되는 왕립 극장을 꼽을 수 있다. 궁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공원은 루이지 반비텔리가 계획했고, 그의 아들 카를로가 완공했다. 주요 축은 바로크 양식의 연못과 물길로 마무리되어 있다. 이 장대한 경관은 대분수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150m 높이에서 화려한 분수대로 폭포수가 떨어진다. 분수대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 악타이온(Actaeon)이 목욕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