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7)/ 이탈리아

 

피엔차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the City of Pienza; 1996)

 

 

 

 

 

 

 

 

 

 

 

 

 

 

 

 

 

   로마 교황 비오 2세(Pius II)는 1459년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 주[Tuscany] 시에나 현[Province of Siena]의 피엔차를 새롭게 바꾸기로 결정하고 건축가 베르나르도 로셀리노(Bernardo Rossellino)에게 설계를 맡겼다. 로셀리노는 자신의 스승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원칙을 적용하여 르네상스 인본주의 개념을 도시 설계에 적용한 첫 사례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비오 2세 광장으로 알려진 장려한 광장과 피콜로미니 궁, 보르자 궁[Borgia Palace] 등이 건축되었다. 특별히 외관은 정통 르네상스 양식이고 내부는 남부 독일 교회의 후기 고딕 양식인 독특한 대성당도 있다.

  피엔차 역사 지구는 도시 설계에 르네상스 인본주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즉, 이후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를 넘어선 여러 도시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계획된 ‘이상 도시’의 개념이 발생한 곳이다. 피엔차 특히 중앙 광장 주변의 건물군에 이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인간이 갖는 창조적 천재성의 걸작을 만들게 되었다. 1458년 성 베드로[St Peter] 교황에 추대된 인본주의 지도자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Enea Silvio Piccolomini; 1405~1464)는 시에나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르시아(Orcia)와 아소(Asso) 계곡을 굽어보는 언덕에 자리한 코르시냐노(Corsignano; 지금의 피엔차)에서 태어났다. 교황이 된 지 몇 달 뒤인 1459년 2월에 고향을 찾은 비오 2세는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비망록에 그 모습을 묘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마을에 새로운 건물을 세워 여름 별장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비전은 독일 출신 철학자 추기경 니콜라 쿠사노(Nicola Cusano)로부터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피엔차 대성당에서는 독일의 전통 고딕 양식이 엿보인다. 비오 2세는 이 대성당을 독일에 있는 후기 고딕 양식의 할레 교회[Hallenkirchen]들처럼 건설하고 싶어 했다. 즉, 그가 2세가 여행 중에 흠모하게 된 란츠후트(Landshut), 노이외팅(Neuotting), 슈트라우빙(Straubing), 뉘른베르크(Nurnberg), 빈(Vienna), 뫼들링(Modling), 굼펠스 교회[Gumpelskirchen]를 본뜨고 싶어 했다. 또한 비오 2세는 은행가로서 16세기 초에 아우크스부르크의 자신의 고향 도시를 개조한 인물인 야코프 푸거의 영향도 받았다. 코르시냐노를 변모시키기 위해 비오 2세는 로마에 있는 교황 니콜라오 5세의 교황청 기술자로서 ‘로셀리노’라고 알려진 마테오 감베렐리(Bernardo di Matteo Gamberelli)를 초빙했다. 로셀리노는 인본주의 사상가이자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영향을 받았다. 알베르티는 1447~1455년에 로마의 복구를 책임졌고, 르네상스 최초의 건축 논문인 <건축론(De re aedificatoria)>(1452)의 저자이기도 했다. 로셀리노는 1459년 작업이 시작된 중앙 광장 주변 주요 건물들의 공사를 감독했다. 로셀리노는 알베르티가 명확히 한 르네상스 도시 계획 원칙에 근거하여 도시의 전체 배치 또한 책임 맡았다. 성곽을 두른 코르시냐노 마을은 질리오(Giglio)와 프라토(Prato) 등 2개의 문을 포함한 주요 도로[오늘날의 로셀리노 가]와 이웃한 더 작은 수직의 평행한 도로들로 이루어졌다. 로셀리노는 주 광장 주위에 주요 건물들의 자리를 정할 때 주로 이 기본 구조를 존중했다. 비오 2세의 사업은 그를 수행하는 추기경들의 저택 건설도 포함되었으며 이 공사는 1463년에 시작되었다. 성 프란시스(St Francis) 교회 맞은편에 있는 병원과 호텔 등 사회적 기능을 지닌 2개의 구조물도 로셀리노의 감독 하에 세워졌다. 피엔차의 이상적인 중심은 비오 2세 광장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광장 계획은 트래버틴(travertine; 대리석의 일종)으로 테를 두른 오늬무늬 포석으로 강조되었다. 광장의 남쪽 면에는 로셀리노가 설계하여 1459~1462년에 건설한 대성당이 있다. 알베르티의 영향은 3중 통로가 있는 내부와 어울리는 넓은 아치들이 있는 3중 파사드의 구성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내부는 아치와 십자 아치 천장이 뻗어 나간 커다란 벽기둥 무리로 나뉘며, 할레 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종탑 또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었다. 광장 서쪽 면에는 비오 2세 가문의 옛집 터에 1463년에 세운 피콜로미니 궁이 있다. 트래버틴 초석에 놓인 정면 입면도는 3단의 사암 마름돌로 나뉘며 중간에 넓은 아치 창문들이 있다. 3개의 면은 같으며, 위압적인 3층의 로지아(Ioggia)가 있는 네 번째 면은 높은 정원에 면해 있다. 세련된 안마당의 2층과 3층 바닥은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주교관은 광장 맞은편에 있다. 옛 프레토리오(Pretorio) 궁은 로드리고 보르자(Rodrigo Borgia) 추기경을 위해 1463년 구입했다. 보르자 추기경은 한 층을 더 높이고 고딕 창문들을 교체했다. 광장 북쪽 면에 있는 시청(1462년 건설)은 이러한 기능에 맞는 전통적인 토스카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지면과 같은 높이에 개방된 로지아와 총안상(銃眼狀)으로 장식한 탑이 있다. 광장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반대로 시청은 치장 벽토 석회화(華)와 벽돌로 만들고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장식했으며 오직 로지아만 트래버틴으로 만들었다. 피엔차에 있는 다른 주요 건물들은 로셀리노 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비록 그보다 더 오래된 건축물도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교황청 궁정 사람들의 집으로 건축되었다. 그 밖에 성 프란시스의 고딕 교회와 그 수도원, 아트레바텐세 궁[Atrebatense Palace; 르네상스 양식의 장식과 고딕 구조], 르네상스 양식의 암만난티 궁[Ammannati Palace], 벽돌 건물들, 정원이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곤차가 궁[Gonzaga Palace]이 있다. 피엔차에는 로셀리노가 설계한 많은 르네상스 양식의 분수와 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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