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6)/ 이탈리아
알베로벨로의 트룰리(The Trulli of Alberobello; 1996)
풀리아 주[Puglia Region] 바리 현[Province of Bari]에 위치한 트룰리(Trulli)는 풀리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석회암 주거지로 선사시대의 건축 기술이 아직 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트룰리에는 인접 들판에서 수집한 석회암들을 거칠게 가공한 석회암 슬라브를 내어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린 지붕인 피라미드형, 원통형, 원추형 지붕이 있어 특징적이다.
트룰리로 알려진 석회암 주거지 알베로벨로(Alberobello)는 고장 특유의 건축이 있는 독특한 사례이다. 유럽의 이런 형태 도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이며, 아직까지도 주거지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따라서 트룰리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선사시대 건축 기술을 대표한다. 풀리아 주의 이트리아 계곡에는 선사 주거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주거지는 돔 모양의 무덤 양식인 톨로스(tholos) 건축 기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같은 주거지의 기원은 14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베르 당주(Robert d’Anjou)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공로를 인정해 사람이 살지 않던 이곳을 타란토의 왕자에게 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왕자와 그 후계자들은 자신의 영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카셀레(Caselle)라는 작은 집을 짓도록 허용함으로써 이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기 1000년쯤부터 아자 피콜라(Aja Piccola)와 몬티(Monti)라는 마을 단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새 거주민들은 자신의 주택을 신속하게 철거할 수 있도록 자연석으로 벽을 두르는 전통을 적용했다. 그 목적은 2가지였다. 하나는 종종 권력에 저항하곤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주택을 쉽게 철거해 새 주거지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철거할 때만큼이나 재빠르게 다시 짓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나폴리의 왕이 세금 사정관을 파견했던 1644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 비교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방법은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해 뒷날 징벌적 세금이 부가되곤 했다. 16세기 중반까지 몬티 지역에는 약 40여 군데의 트룰리가 들어섰다. 잔 지롤라모 구에르초(Gian Girolamo Guercio) 공작이 빵 만드는 곳과 제분소, 숙박 시설을 짓도록 명령한 1620년에는 트룰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 18세기 말까지 이 공동체에 3,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리고 1797년에는 나폴리의 페르디난드 4세(Ferdinand IV)가 로열타운(Royal Town)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아크콰비바(Acquaviva) 가문의 봉건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이 지역의 중세 라틴어 지명인 ‘시바 아보리스벨리(siva arboris belli)’에서 따온 ‘알베로벨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트룰리는 이처럼 새로운 도시로 조성되던 시점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인접한 평야, 뒤에는 강 유역에서 수집한 석회암을 거칠게 가공해 자연 암반 바로 위에 집을 지었다. 자연석으로 벽을 두르는 드라이스톤(Drystone) 기술을 사용해 사각형의 이중벽을 만든 다음, 안에는 돌무더기를 넣고 구멍을 만들어 작은 창을 냈다. 그리고 두꺼운 벽 안에 벽난로와 오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벽으로부터 직접 솟아오르도록 한 이중 지붕은 단순한 스퀸치(Squinch) 구조이기 때문에 직사각형에서 원, 타원으로 간단하게 개조할 수 있었다. 지붕은 치안체(chianche) 또는 치안카렐레(chiancarelle)라 불리는 회색 석회 슬라브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더 큰 주택의 지붕은 장식을 위해 뾰족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종종 재난을 쫓기 위한 상징물이었다. 슬라브를 통해 지붕 아래 처마를 이용해 만든 물탱크로 빗물을 흘려보내도록 하기도 했다. 또 폭이 좁은 돌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문틀, 반원통형 둥근 천장 등 내부는 목재로 꾸몄다. 규모가 큰 트룰리에는 나무 바닥으로 된 2층이 있으며, 나무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끔 했다. 돌로 만든 벽난로와 오븐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것을 덮고 있는 슬라브를 통해 배출됐다. 지붕에 색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류나 지의식물이 자라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재로 신화나 종교의 상징을 집어넣었다. 한편 트룰리의 벽에는 정기적으로 회분을 발랐는데 돌의 외곽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6㏊에 달하는 언덕에 자리 잡은 몬티 지역에는 1,030채의 트룰리가 있었다. 아래를 향해 나 있는 길은 평지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었다. 590개의 트룰리가 있는 아자 피콜라 지역은 몬티에 비해서는 균일성이 떨어진다. 길거리는 봉건 시대에 소작농들이 밀을 탈곡하는 장소였던 공동체 공용의 농가 안뜰로 이어진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문화유산(348)/ 이탈리아/ 카세르타의 18세기 궁전과 공원, 반비텔리 수도교, 산 레우초 (0) | 2014.10.06 |
---|---|
세계문화유산(347)/ 이탈리아/ 피엔차 역사 지구 (0) | 2014.10.06 |
세계문화유산(345)/ 이탈리아/ 몬테 성 (0) | 2014.10.06 |
세계문화유산(344)/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 (0) | 2014.10.06 |
세계문화유산(343)/ 이탈리아/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와 포 삼각주 (0) | 201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