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3)/ 이탈리아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와 포 삼각주

(Ferrara, City of the Renaissance, and its Po Delta; 1995)

 

 

 

 

 

 

 

 

 

 

 

 

 

 

   포 강 상류 주변에 있는 페라라는 에밀리아로마냐 주[Emilia-Romagna Region] 페라라 지방[City and Province of Ferrara]에 속하며, 15,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대한 정신이 집약된 예술과 교육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있던 에스테(Este) 가(家)의 궁전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자코포 벨리니(Jacopo Bellini)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등의 유명한 화가들이 장식하였다. 페라라는 1492년에 건축가 비아조 로세티(Biagio Rossetti)가 에르콜 1세(Ercole l)의 명령에 따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상 도시[ideal city]’라는 인본주의적 이념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 프로젝트는 근대 도시 계획을 탄생시켰고, 이후 페라라의 많은 발전에 튼튼한 밑받침이 되었다.

  페라라는 훌륭하게 계획된 르네상스 도시이며, 원래의 도시 구조를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페라라에 표현된 도시 설계의 발달은 이후 수세기에 걸쳐 다른 도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곳에 있던 화려한 에스테 궁전은 르네상스의 중흥기였던 두 세기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과 시인, 철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계획된 문화 경관이 두드러지는 포 삼각주는 많은 부분에서 원래의 독창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페라라는 도시의 중심부가 아닌 포 강둑을 따라 수직으로 도시가 발달했고, 중세 도시가 형성된 그 주변으로 수직 도로와 교차로가 많이 발달했다. 이처럼 페라라만이 이탈리아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로마식 배치를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도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페라라의 도시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디치오네(addizione)’로 알려진 도시 계획 규제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아디치오네는 14세기부터 발전하였고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근대의 모든 도시들에서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1492년에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고, 도로망과 성벽들은 궁전이나 교회 건물 그리고 정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로써 페라라는 마침내 계획된 르네상스 도시로 완성되었다. 16세기를 통틀어 이루어진 도시 계획은 미래의 ‘수도’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 교황 행정부가 들어선 17세기 이후로 거의 3세기 동안 도시는 성장과 발전을 멈추었다. 당시 계획은 성의 남쪽으로는 확장을 제한하면서 도시의 규모를 2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성에서 나오는 거리[에르콜 1세 거리]의 교차로와 에르콜 라 아디치오네[로제티 거리, 포르타 마레 거리]의 중심축을 도시의 출입구와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이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성곽・아성・반원형・탑・보루・망루 등의 다양한 요소에 새롭고 최신화된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완성되었다. 새롭게 도입된 이런 대안들은 도시의 외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리드[격자형]에 맞춰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었고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중세 시대로부터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기념물은 12세기에 지어진 산 조르조(San Giorgio) 대성당이다. 성당의 파사드 건축은 베네데토 안텔라미(Benedetto Antelami)의 영향을 받은 조각가이자 건축 책임자인 니콜로(Niccolo)가 건설했으며, 이는 12세기의 반세기에 걸쳐 완공되었다. 종탑의 건축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설계에 따라 1451년에 시작되었다. 대성당 앞에 우뚝 솟은 13세기의 코무날레(Comunale) 궁은 에스테 가문이 최초로 사용했던 대저택이며, 15세기 말 산 미켈레(San Michele) 성과 에스텐세(Estense) 성이 나중에 추가되었다. 4기의 큰 탑을 갖춘 이 웅장한 요새는 1385년에 노바라(Novara) 출신의 궁정 건축가 바르톨로메오(Bartolomeo)가 폭력 사태 직후에 지었다. 건축 작업은 1570년까지 계속되었다. 많은 귀족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홀이 딸렸으며 대리석 발코니와 로지아, 그리고 프레스코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1385년에 건축된 스키파노이아 궁[Palazzo Schifanoia]은 보르소 데스테(Borso d’Este) 공작을 위해 건축가 피에로 벤베누티(Piero Benvenuti degli Ordini)가 1465~1467년에 처음으로 개축했으며, 이때 피에로를 도왔던 비아조 로세티는 1493년에 단독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 궁에는 웅장한 대리석 정문이 있고, 기사단 영지의 좌우로는 에르콜 드 로베르티(Ercole de' Roberti)가 설계한 긴 벽돌로 된 파사드가 세워져 있다. 여러 개의 홀 장식 가운데 ‘12달의 홀[Hall of the Months]’ 장식은 페라라의 인본주의적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성에서 나오는 거리[에르콜 1세 거리]의 교차로와 에르콜 라 아디치오네[로제티 거리, 포르타 마레 거리]의 중심축을 도시의 출입구와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이 공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세 르네상스 도시와 근대 도시를 잇는 초점은 프로스페리사크라티(Prosperi-Sacrati) 궁, 베빌라콰(Bevilacqua) 궁, 투르키 디바그노(Turchi-Di Bagno) 궁, 디아만티(Diamanti) 궁의 4개 왕궁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1492년 시기스몬도 데스테(Sigismondo d'Este)를 위해 디아만티 궁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1565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파사드의 전체 높이에 규칙적인 건목 치기[rustication; 목조의 기둥이나 보・격자・반자틀 등의 표면 마감]가 특별한 인상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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