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67)/ 이탈리아

 

발 도르차(Val d'Orcia; 2004)

 

 

 

 

 

 

 

 

 

 

 

 

 

 

 

 

 

 

   토스카나 주[Tuscany] 시에나 현[Province of Siena]에 속하는 발 도르차(Val d’Orcia)의 경관은 시에나 내륙 농업 지방의 일부가 14, 15세기에 도시 국가의 영토로 통합되었을 때, 훌륭한 통치의 이상을 반영하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재설계하여 개발한 지역이다. 이곳은 원추형에 가까운 낮은 언덕 위에 요새화된 거주지가 있는 편평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 풍경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잘 관리된 르네상스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의 전형이 되었다. 등재 유산에는 혁신적 토지 관리 시스템을 보여 주는 농업적, 목가적 경관, 도시와 마을, 농가, 로마의 프란치제나 길(Via Francigena), 수도원, 여관, 사원, 다리 등이 포함된다.

   발도르차는 훌륭한 통치의 이상을 반영하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관을 바꾼 르네상스 시대의 우수한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시에나의 남동쪽에 자리하고 북쪽 경계는 도심에서 약 25㎞ 떨어져 있다. 발 도르차의 경관은 14, 15세기의 시에나 상인들의 정착지를 보여 준다. 그들은 효율적인 농경지로서뿐 아니라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 낸 경관은 신중하고 의도적인 배치와 설계가 엿보이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경관’ 개념의 시초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경관은 효율적이며 기능적이면서 미적으로도 아름다웠다. 혁신적인 토지 관리 시스템에 기초하여 상인들이 소유한 토지를 작은 면적으로 나누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작하게 하였다. 생산물의 절반은 상인들에게 소작료로 지불했는데 상인들이 농경 발전을 위해 재투자할 만큼 충분하였다. 농장 운영은 곡물, 포도, 올리브, 과일을 재배하면서 농가들 사이에 가축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를 가꾸는 혼합농업이었다. 농민들은 메렘마(Meremma) 산과 아미아타(l’Amiata) 산길을 따라 이동 방목을 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의 농업 경관을 만들려는 목표는 포도밭을 꾸미기 위해 장미를 심는 전통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길가와 주거지 주변에 심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그 경관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둥그런 언덕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심은 모양과 그 어두운 색채는 희미한 풍경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룬다. 경관은 그 땅에서 일해야 하는 농민들, 가족들, 일꾼들을 위한 새로운 주거지가 들어서면서 형성되었다. 또한 기존의 마을들을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새로 계획된 마을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피엔차 마을로서 그 이름은 마을의 창건자인 교황 비오 2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비오 2세는 1459년에 베르나르도 로셀리니를 시켜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과 궁전과 공공건물들이 있어 행정 기관과 종교 기관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이상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마을을 확대하였다. 더 커진 언덕 위의 요새 마을은 13세기에는 원래 경계 초소였던 몬탈치노(Montalcino), 라디코파니(Radicofani), 카스틸리온 도르차(Castiglion d’Orcia), 로차 도르차(Rocca d’Orcia), 몬티첼로(Monticchello)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디를 가나 작은 언덕 위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몇몇은 요새화되었다. 이 마을들에는 시에나가 처음으로 이 지역을 통치한 13세기 때의 건물들, 14세기와 15세기에 도시가 확장되던 시기의 건물들, 16세기 피렌체 통치 하에 건설된 건물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이 세계문화유산 지구의 경관에서는 큰 농가들이 눈에 띄는 요소이며 로지아, 벨베데레스, 포치[건물 입구에 지붕이 얹혀 있고, 흔히 벽이 둘러진 현관], 진입로 양쪽으로 나무가 심어진 길 등의 눈에 띄는 건축요소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에나와 연결지로서의 전략적 중요성과 발 도르차 지역의 발달은 로마 시대 이후 로마를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와 연결하는 남북로 프란치제나 길[로마시대에는 카시아 가도로 알려져 있었다]과 얽혀 있다. 중세 말 이후 이 길은 로마 교회와 그 교구들을 연결해 주는 기독교의 길로 이용되었다. 또한 순례자들과 상인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었고, 다양한 사상이 이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이 길은 산탄티모(Sant’Antimo) 수도원의 콜레기아타 디 산 퀴리코(Collegiata di San Quirico)와 같은 멋진 교회와 수도원들을 발달시켰다. 발 도르차의 경관은 (시에나와 더불어) 유토피아적인 이상과 관련이 깊다. 시에나는 일종의 ‘공동체’였고, 발 도르차는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농촌의 발전 모델이었으며, 둘 다 최고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1338~1340년에 로렌제티(Lorenzetti)가 시에나의 시공회당에 그 이상적 풍경을 그려 놓았는데, 그것이 발 도르차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 이상을 더욱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 조반니 디 파올로(Giovanni di Paolo)와 사노 디 페트리(Sano di Petri) 같은 미술가들의 그림에도 영원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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