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66)/ 이탈리아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의 사크리 몬티

(Sacri Monti of Piedmont and Lombardy; 2003)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9개의 사크리 몬티(Sacri Monti;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는 롬바르디아와 피에몬테 주(Regions of Lombardy and Piemonte)에 속하며, 16세기 말에 시작해 17세기에 완성된 예배당과 부속 건물들로 기독교 신앙의 다양한 측면을 잘 보여 준다. 사크리 몬티는 상징적인 영적 의미와 더불어 언덕・숲・호수 등 주변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낸 훌륭한 솜씨로 인해 더욱 아름답다. 내부에는 벽화와 조각 등 중요 미술품이 보관되어 있다.

  사크로 몬테(Sacro Monte; Sacri Monti의 단수형)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이슬람 문화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성지로 접근하기 어려워져 그 대안으로 유럽에 기도소를 만들 목적으로 세워졌다. 성묘를 지키던 프란체스코 수사들은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장소로 원래의 장소와 지형적으로 유사한 세 지역을 선정했다. 밀라노의 공작 영지에 속해 있던 발세시아(Valsesia)의 바랄로(Varallo), 토스카나(Tuscany)의 몬타이오네(Montaione), 포르투갈 북부의 브라가(Braga)가 그것이다. 몇 년 뒤, 특히 1535년에 트리엔트(Trent) 공의회가 열린 후부터는 1480년경에 건설된 바랄로의 모델이 특히 밀라노 참사회의 관할 하에 있던 교구들에서 또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즉 설교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더 많은 사크리 몬티를 창출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의 영향에 맞서기 위해 예수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성자들・삼위일체・로자리오(Rosary; 성물)의 숭배에까지 봉헌되었다. 이 이상적인 계획은 유형별 분류와 건축 양식의 세부 기준을 확충하여 밀라노의 주교 카를로 보로메오(Carlo Borromeo)가 강하게 추진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나온 계획에 따라 곧바로 바랄로의 사크로 몬테를 완성하고 이어서 다른 것들도 시작하였다. 이 단계는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바랄로에 이어 크레아(Crea), 오르타(Orta), 바레세(Varese), 오로파(Oropa), 오수치오(Ossuccio), 기파(Ghiffa), 도모도솔라(Domodossola), 발페르가(Valperga)에서 사크리 몬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일정한 기본 규칙을 따랐지만 건설이 진행되면서 개별적인 예술과 건축술을 개발하였다. 18세기 내내 다른 사크리 몬티가 계획되고 건설되었으나 이것들은 종교적 동기, 엄격한 규칙에 따른 참된 구도, 16~17세기 이전의 시기를 말해 주는 아름다운 건축과 예술적 요소가 부족하여 더 이상 다른 양식들의 모범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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