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60)/ 이탈리아

 

우르비노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Urbino; 1998)

 

 

 

 

 

 

 

 

 

 

 

 

 

 

   마르케 주[Marche Region] 페사로[Province of Pesaro] 마르케 지방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도시 우르비노(Urbino)는 15세기에 문화의 전성기를 누린 곳이다. 당시 이탈리아와 여러 지역에서 온 예술가와 학자들은 이곳에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그 업적은 유럽 여러 지역의 문화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우르비노는 16세기부터 경제적・문화적으로 정체되기 시작한 덕분에 약 1세기 동안 누려왔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문화를 변화 없이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우르비노는 짧은 기간에 탁월한 문화를 꽃피운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인본주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건축의 동질성[homogeneity]을 훌륭하게 획득한 도시 복합물의 특별한 사례를 창조했다. 이후 우르비노의 문화는 유럽 전역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3세기~기원전 2세기 로마 요새는 불규칙한 도로와 배치로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경계 안에 머물러 있던 도시는 11세기 말에 확장을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방어벽이 필요하였다. 12세기 말에 도시는 우르비노의 공작 영지를 넘겨받은 몬테펠트로(Montefeltro) 가문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페데리코 2세(Federico II)가 15세기 중반에 도시를 재정비하는 운동을 벌였지만 전체적인 도시 구조는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설계에 따라 성벽을 재건하였다. 루차노 라우라나(Luciano Laurana)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Francesco di Giorgio Martini)는 공작의 새로운 저택 공사를 맡아 기존의 중세 구조를 약간만 변형한 상태에서 증축하였다.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가 설계한 인근의 성당과 함께 공작의 저택은 도시 구조의 중심이 되었고, 그 설계는 이후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표본이 되었다. 1508년 구이도발도(Guidobaldo) 공작이 죽은 뒤 우르비노는 델라 로베레(Della Rovere) 가문으로 넘어갔으며, 1631~1860년에 파팔(Papal) 주에 합병되었다. 이 시기에 도시의 경제는 전반적으로 침체되었다. 그러나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조반니 프란체스코 알바니(Giovanni Francesco Albani)가 1700년 클레멘스 11세(Clement XI; 1700~1721 재위)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교회와 여러 종교 건축물들의 복원 활동이 많아졌다. 19세기 전반에는 도로 형태에 많은 변화가 생김에 따라 광장을 확장하기 위해 몇 채의 건물을 철거하였다. 동시에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탑을 따라 빈센초 기넬리(Vincenzo Ghinelli)가 균형과 양식 면에서 주변과 잘 어울리게 설계한 극장이 새로 건설되었다 공작의 대저택 서쪽 면은 2개의 가느다란 탑과 측면에 첩첩으로 솟은 3개의 로지아[한쪽 이상의 면이 트여 있는 방이나 복도]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 구조는 벽돌과 창틀, 2개의 위쪽 로지아와 돌로 만든 몇 가지 장식이 있다. 외부는 주로 벽돌을 사용하여 비교적 소박한데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광장을 향한 쪽에서 보면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의 건축가 루차노 라우라나가 르네상스 저택을 기술적으로 결합시켜 만든 2채의 중세 저택의 정면이 보인다. 저택의 내부는 좀 더 화려하며, 특히 중앙의 뜰은 우아한 아치와 조각 장식과 비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저택의 피아노 노빌레(Piano nobile; 르네상스 건축물의 주요 층)는 바로치(Barocci)가 설계한 멋진 계단을 통해 들어간다. 대부분의 방은 현재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벽면과 문틀, 장식대(裝飾帶; frieze), 벽난로 위 선반, 그 밖의 다른 조각과 칠 장식까지 현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저택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공식 접견실에는 성 마르코의 사자가 얕은 돋을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공작의 개인 공간이던 ‘천사의 방[Room of the Angels]’은 벽난로 위 선반에 장식된 춤추는 어린아이 조각상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목재로 된 문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설계한 트롱프뢰유(trompe-l’œil; 실물로 착각하도록 만든 속임수그림) 쪽나무 상감 장식이 되어 있고, 공작의 서재 벽면도 같은 방식으로 꾸며졌다. 서재 천장은 피렌체 예술가들의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이 밖에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공작부인의 응접실 ‘살라 드롤레(Sala d'lole)’가 있는데 벽난로 선반의 여인상 조각 기둥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우르비노의 두오모 대성당은 비오 7세(Pius VII)가 교황으로 있던 18세기 말에 대부분 재건하였으며, 클레멘스 1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재건축을 마감하지 못한 채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교황청의 건축가였던 주세페 발라디에르(Giuseppe Valadier)의 절제된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중요한 예술 작품이 간직되어 있다. 14세기에 지은 성 요한 침례교회의 기도실에는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멋진 프레스코 화가 있다. 산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교회 역시 14세기의 것이며, 내부는 18세기에 다시 디자인되었다. 산 도메니코(San Domenico) 교회는 기본적으로 13세기 건물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의 공사로 접이식 창문과 밖으로 내민 창문이 추가되었다.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수도원과 산 베르나르디노(San Bernardino) 수도원은 르네상스 수녀원 건축의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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