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57)/ 이탈리아

 

폼페이·헤르쿨라네움·토레안눈치아타 고고 지구(Archaeological Areas of Pompeii, Herculaneum and Torre Annunziata; 1997)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로마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폼페이(Pompeii)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그리고 이 지역의 많은 주택들이 화산재에 묻혀버렸다. 캄파니아(Campania) 주 나폴리 현[Province of Naples]에 속하는 이 지역은 18세기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업 도시 폼페이의 광막한 공간은 폼페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보존 상태가 좋은 휴양지 헤르쿨라네움의 유적과 대비를 이룬다. 한편 토레 안눈치아타(Torre Annunziata)의 오플론티스(Oplontis) 저택의 벽화는 초기 로마제국의 부유한 시민들이 향유한 호사스러운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지역 주택과 마을의 인상적인 유적은 땅속에 묻혀 버렸다. 발굴된 이 유적은 마치 특정 순간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듯 그 순간의 일상생활과 사회를 완벽하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현장성 있는 유적이다. 폼페이는 기원전 6세기의 오피시아(Opicia)를 기반으로 한다. 역사가인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헤라클레스가 고대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을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두 곳 모두 다음 몇 세기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스칸・삼니움・그리스・에트루리아의 동맹 도시를 거쳤고, 마침내 기원전 89년, 동맹시 전쟁(同盟市戰爭; Social War) 끝에 로마의 동맹 도시가 되었다. 바로 이 해에 폼페이는 콜로니아 코르넬리아 베네라 폼페이아나(Colonia Cornelia Venera Pompeiana; 시민권이 부여된 로마의 정식 공동체 도시)로 격상되었다. 반면 헤르쿨라네움은 그보다 격이 낮은 자치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지진 복구를 위한 재건 작업이 한창이던 두 도시는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폼페이는 화산재와 바위에 묻혔고, 헤르쿨라네움은 화쇄암과 흙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파묻힌 두 도시가 발견된 18세기 이후, 헤르쿨라네움보다는 폼페이의 유적이 더 많이 발굴되었다. 주 광장 양 옆으로는 카피톨리움(Capitolium; 세 주신인 주피터・주노・미네르바를 모시는 신전), 바실리카[재판정], 공중목욕탕의 유구와 같은 인상적인 공공건물들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삼각형 포럼(forum)에 2개의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그리스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뒤에 로마 인의 취향에 맞게 개조된 것이다. 눈에 띄는 다른 공공건물로는 보존 상태가 훌륭한 기원전 2세기의 스타비안 목욕탕[Stabian Baths]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폼페이는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주택들이 유명하다. 먼저 중앙에 안뜰이 있는 홀을 가진 아트리움 주택을 들 수 있는데 ‘외과 의사의 집[House of the Surgeon]’으로 이름 붙여진 집이 바로 이러한 양식의 좋은 예이다.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주택은 규모가 커지고 원주와 아케이드로 장식되었으며, 사교 모임을 위한 사회적 기능이 있는 큰 방들을 갖추었다. 로마 제국의 모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주택 양식은 극단적으로 수많은 방이 있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제대로 갖춘 궁전과 같은 저택으로 발전했다. 파우누스 저택[Houses of the Faun] 그리고 ‘정숙한 연인의 집’이라 불리는 곳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폼페이에서 가장 이례적인 주택은 ‘수수께끼의 집’이라 불리는 곳일 것이다. 성 밖에 있는 이 커다란 시설물은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소박한 타운하우스가 발전한 것으로 확연하게 눈에 띄는 트리클리니움(triclinium) 방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벽화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벽화에는 디오니소스 숭배를 위한 입회 의식이 묘사되어 있다. 폼페이의 또 한 가지 특성은 벽에 새겨진 수많은 낙서이다. 선거철이 다가올 무렵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에 벽에는 수많은 구호가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상스러운 낙서도 있다. 나폴리 만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유적은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에 그 규모가 폼페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도시를 덮은 화산재의 특성 때문에 보존 상태는 더 좋은 편이다. 나무와 같은 유기물은 그대로 제자리에 있으며 많은 건물들의 2층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몇몇 인상적인 공공건물 또한 잘 보존되어 있다. 기념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는 널따란 소운동장[palaestra], 그 크기와 활기찬 장식이 기념비적인 도시형 목욕탕을 비롯한 두 곳의 공중목욕탕, 아우구스투스의 성직자 학교, 전형적인 극장 한 곳 등이다. 주택들 또한 그 크기와 장식이 눈에 띄는데 ‘200주년을 기리는 집’이라 불리는 곳이 대표적이다. ‘사슴의 집’처럼 바다 앞쪽에 있는 주택들은 넓은 뜰과 호사스러운 장식을 자랑한다. 완벽한 상점 때문에 상가 역시 주목할 만하며, 포도주 병과 같이 생긴 수많은 그릇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최근의 항구 지역 발굴 과정에서, 재난을 피하려다 결국은 질식해 목숨을 잃은 불행한 시민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창고가 발견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모두 조각, 모자이크, 무엇보다도 벽화를 통해 그 예술 양식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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