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53)/ 이탈리아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Villa Romana del Casale; 1997)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는 행정구역상 시칠리아[Sicily] 엔나 주[Province of Enna] 피아차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에 속한다. 로마의 지방 지역 개발은 시칠리아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로 상징된다. 서로마 제국의 지방 경제의 근간은 빌라 로마나와 같은 대규모 사유지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빌라 로마나는 이런 종류의 저택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건축된 것으로 거의 모든 내부를 풍부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하고 있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모자이크 장식은 로마 제국 모자이크 중에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메리나 광장에 있는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는 화려한 로마 저택의 탁월한 본보기로서 그 시대의 사회 경제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택에 장식되어 있는 모자이크는 규모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우수하고 독창적이다. 빈약한 증거에 의한 것이지만 농장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초기의 시골 주거지에 로마 저택이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방향은 별장의 목욕탕 방향과 같았고, 토대는 별장의 일부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저택 부지의 초기 단계에 목욕탕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곳이 부유한 소작인이나 부유한 지주의 집사가 거주했다고 짐작된다.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세기 말엽)의 것으로 추정되며, 집주인의 가족을 그린 것 같은 2개의 초상화가 발견되었다. 초기 이 집의 지질 층위를 분석해보면 1세기부터 3세기 말 사분 통치(四分統治; Tetrarchy)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시칠리아의 역사에 있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로서 노예 노동력을 이용하던 전통적 라티푼디움(latifundium; 장원) 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전의 가옥은 4세기 초 10년간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시기에는 아마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막시미아누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imianus)의 소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로마 군인 출신으로 장군이 된 후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의 신임을 받아 황제의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310년에 막시미아누스가 잔인한 죽음을 당하자 그의 아들이자 황제의 친구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에게 권위를 물려주었고, 그는 312년에 로마의 밀비아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콘스탄니누스 대제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가옥이 붕괴된 자리에 310~340년에 건물이 다시 건설되었다. 다시 세워진 건축물이 매우 웅장하고 호화로운 점을 감안하면 영토를 가진 사람은 로마의 통치자가 아니라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명령으로 이 저택이 건설된 듯하다. 9세기에 아랍의 습격이 있기까지 이곳에는 사람이 살았으나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갔다. 1155년경 무렵 시칠리아의 노르만 족 통치자인 폭군 윌리엄 1세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파괴되었다. 저택이라기보다는 ‘궁전’과 같은 가치를 지닌 이 건축물은 로마 저택의 전통에 따라 설계되었지만 크기와 화려함에 있어서는 로마 제국 저택과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수준이다. 발굴된 면적은 일부에 불과하였는데도 약 4,000㎡에 이르며, 총 4개의 구역[방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바닥은 모두 최고급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저택은 지형에 따라 층층이 건축되었다. 첫 번째 구역은 다음과 같다. 기념비적인 입구는 안뜰로 통하고, 안뜰은 공들여 세심하게 만든 욕실과 직면하고 있다. 타원형의 팔라스트라(palaestra; 그리스 식 체력 단련장)은 인상적인 팔각형의 냉욕장[frigidarium]으로 통하며 거기에서 다시 미온 욕실[tepidarium]로 이어지고, 그 바깥에는 3개의 노천 온탕[caldaria]이 있다. 두 번째 구역은 강한 인상을 주는 페리스틸륨(peristyle)이다. 페리스틸륨에는 중앙에 분수가 있고 페리스틸륨에서 바로 방들로 연결된다. 한쪽에 작은 신전이 있다. 남쪽으로 세 번째 구역에는 타원형의 페리스틸륨으로 둘러싸여 있다. 널찍한 식당은 삼면에 반원형 공간이 있고 신화의 여러 장면들이 묘사된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 헤라클레스의 모험이 묘사된 그림이 특별히 눈에 띈다. 네 번째 구역은 중심 페리스틸륨의 동쪽에 있으며, 사냥 장면이 장식된 긴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가장 섬세하고 가장 유명하다고 할 만한 모자이크화가 바닥에 깔려 있으며, 중앙에서 지휘를 하는 주인과 그 부하들이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구역에 있는 큰 연회장인 바실리카의 바닥은 모자이크라기보다는 대리석으로 깔려 있다. 이 구역의 작은 개인 방들에는 대부분 좀 더 평화롭고 가정적인 활동을 묘사하는 모자이크화가 바닥에 깔려 있다. 모자이크 중에 오늘날의 비키니와 매우 비슷한 옷을 입고 운동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특히 유명하다. 모자이크들은 카살레 빌라 로마나의 자랑거리이다. 이 시기의 모자이크는 모자이크 예술이 가장 발전된 시기의 것으로 작업의 질과 묘사하는 장면으로 판단할 때 북아프리카의 예술가들의 작품일 것으로 보인다. 양식으로 미루어보아 최소한 2명의 모자이크 장인이 이 저택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1명은 주로 신화의 장면에 더 고전적인 양식으로 일을 하고, 또 1명은 그 당시의 생활 장면을 담은 더 현실적인 접근 양식을 사용하여 작업한 것으로 생각된다. 모자이크의 주제는 신화, 사냥 장면, 식물, 동물, 집안에서의 생활 모습 등 매우 다양하고 폭넓다. 저택의 기둥과 벽도 회반죽으로 안팎을 장식하였으며 많은 부분이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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