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42)/ 이탈리아

 

크레스피 다다(Crespi d'Adda; 1995)

 

 

 

 

 

 

 

 

 

 

 

 

 

 

 

 

 

 

 

 

 

 

 

 

  롬바르디아 주[Lombardy] 베르가모 현[Province of Bergamo]의 카프리아테 산 제르바시오(Capriate San Gervasio)에 있는 크레스피 다다는 ‘회사 도시[company town]’이다. 회사 도시란 주로 19~20세기 초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세웠던 것으로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거주하는 도시이다. 계몽주의적 산업가들은 크레스피 다다에 노동자들의 편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여러 시설을 건축하였다. 도시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변화했으나 현재까지도 당시의 모습이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는 여전히 산업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크레스피 다다는 19~20세기 초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에 세운 ‘회사 도시’라는 현상의 중요한 증거로 노동자에 대한 계몽주의적 산업가들의 주요 철학이 표현된 도시 건축물이다. 도시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변화했으나 현재까지도 당시의 모습이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는 여전히 산업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회사 도시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유럽에 세워졌다. 이는 새로운 기업가 세대들이 대규모 노동력을 결집시켜서 자신들의 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계획하여 조성한 것이다. 또 그 공장들은 원자재나 노동력과 같은 자원들에 근접하도록 설립되었다. 이 계획도시는 이탈리아가 정치적 통합을 이끌어 낸 후 국내 시장이 형성되고서야 만들어졌다. 카프리아테 산 제르바시오(Capriate San Gervasio; 베르가모 현)에 있는 크레스피 다다는 이러한 회사 도시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완성도가 높은 곳이다. 다른 회사 도시는 콜레그노(Colegno; 토리노 현)의 로이만(Leumann)과 스키오(Schio; 비첸차 현)에 있는 로시(Rossi) 등이다. 1875년 부스토 아르시치오(Busto Arsizio; 바레세 현) 출신의 섬유 산업가인 크리스토포로 베니뇨 크레스피(Christoforo Benigno Crespi)는 카프리아테 남쪽 벰보(Bembo)와 아다(Adda) 강 사이에 있는 1㎢의 골짜기를 구입했다. 이는 아다 강둑에 면방적 공장을 설치할 목적이었다. 그는 유럽식의 방적 공장을 지은 후, 1878년 초 공장 주위에 노동자들을 위한 3층 높이의 주택 단지를 지었다. 1889년에 그의 아들인 실비오 베니뇨 크레스피(Silvio Benigno Crespi)는 회사의 경영을 이어받아서 공장과 주택단지의 계획을 수정하고 완성하게 된다. 그는 다른 도시 생활의 접근법과 더 명백한 이념을 근거로 해서 계획을 수정하고 완성시켰다. 그는 대규모 공동 거주 구획을 거부하고, 개인 정원이 딸린 단층 주택을 조성했다. 그는 이것이 산업 단지 안에서 불화를 막고 조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1892년부터 그는 이 정책을 실행에 옮겨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피가 경영했던 50년 동안에는 어떠한 노동 분쟁이나 사회적 문제도 없었다. 노동자들에게 단층 주택 외에도 수력 발전소를 지어서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하였고, 공공 화장실과 세탁소병원소비조합학교소형 극장스포츠 센터지방 사제나 의사를 위한 사저 및 그 밖의 공공 시설물을 조성하였다. 실비오 베니뇨 크리스피는 자신의 회사 도시에 보다 상징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을 건축했다. 예를 들면 교회, 크레스피(Crespi) 가(家)의 거주지인 성, 새로운 사무실 복합 단지, 노동자들의 주택의 남쪽에 위치한 소유주들의 주택들이 있었다. 전자의 두 건물은 1890년대에 조성되었고, 후자의 두 건물은 1920년대 초에 조성되었다. 1929년 대공황과 파시스트 정권의 가혹한 재정 정책으로 인해 크레스피 가는 이탈리아 섬유 기업인 STI에 전체 도시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1970년에 로사리 에 바르치(Rossari e Varzi) 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어 레글레르(Legler) 사(社)로 넘어가자 대부분의 집들을 다 매각해 버렸다. 현재는 6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폴리 산업 그룹[Polli industrial group]을 이끌고 있다. 이는 3,200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던 최고 번영기와 비교되는 규모이다. 전체의 복합 단지의 배치는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형태를 띠며 카프리아테에서 이어진 주요 도로로 인해 두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다 강의 왼쪽 강둑에 오른쪽으로 중세시대의 장식을 한 단층 공장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공장 단지 안에 있는 사무실 건물은 에르네스토 피로바노(Ernesto Pirovano)가 설계한 것이다. 이 건축가는 실비오 베니뇨 크레스피가 경영하던 시기에 많은 건축물을 세웠다. 주 도로 정면에 들어선 집들은 세 줄로 된 직사각형 격자 도로 내에 지어졌다. 처음 설계 당시에는 방이 4칸 딸린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2층 건물이었다. 나중에 설계에는 단층 주택에 소형 정원과 텃밭이 각각 딸려 있고, 집 뒤쪽 멀리 떨어진 곳에는 화장실이 있다. 초기에 지은 집과 후기에 지은 집들은 스타일과 배치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집의 형태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어 도시 풍경에 즐거운 다양성을 준다. 교회는 건축가 루이지 카베나기(Luigi Cavenaghi)에 의해 부스토 아르시치오(Busto Arsizio)의 광장에 있는 브라만테(Bramante)의 산타마리아(Santa Maria) 사원을 본떠 설계되었고, 1891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2년 뒤에 완공되었다. 교회는 마을 북쪽 끝, 학교와 극장이 포함되는 광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피로바노(Pirovano)의 성은 작품인 1897년에 완성되었다. 성은 신고딕 양식 롬바르디아의 요소와 베네토(Veneto)에서 유입된 무어 인의 양식을 띤 조각품들과 회화 작품들의 합작품이다. 성의 앙상블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들로 이뤄진 자재를 사용하여 감동을 더하고 있으며 로마 고딕 양식이 연상되는 건축물이다. 크레스피 가족 묘의 색채가 강한 묘지 건물은 아르누보 기법을 가미한 가에타노 모레티(Gaetano Moretti)의 건축물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