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Don't Cry For Me Argentina / Giovanni Marradi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