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2005년>


Capture the Moment / David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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