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손 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을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을 푸르게 흔들더니

      그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을 들고 서있

      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꺽인 채

      꺼꾸로 쳐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꽃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서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

      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이 다시 온다면

      <2004년>



                   Water Lilies / Kevin K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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