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성(贵州省) 17일 계획
일차 |
월/일 |
요일 |
일 정 |
이동 |
숙박 |
1 |
1/14 |
금 |
● 인천공항-14JAN11 18:40~22:40(Kunnming) |
飞机 |
쿤밍조나단 |
2 |
1/15 |
토 |
● 兴义「묘족부이족자치주(苗族布依族自治州)」로 |
列车 |
兴义 |
3 |
1/16 |
일 |
● 马龄河峡谷 (지각변동으로 형성되어 지구의 가장 아름다운 흉터) |
公共气车 |
|
4 |
1/17 |
월 |
● 万蜂林 (첩첩산중의 원시논밭) |
公共气车 |
|
5 |
1/18 |
화 |
● 安顺 -[천성교(天星橋)] ●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 ● 龙宫 |
公共气车 |
|
6 |
1/19 |
수 |
● 红枫홍풍호(유람, 동족고루, 풍우교, 원시묘족마을) |
公共气车 |
|
7 |
1/20 |
목 |
● 贵阳-중국 10대 누각의 하나인 [갑수루]) |
公共气车 公共气车 |
|
8 |
1/21 |
금 |
● 凱里로 이동 (2시간 소요) ● 昆明행 열차표 예매(27일발or 28일발) |
列车 |
|
9 |
1/22 |
토 |
● 西江- 천호묘족마을(千戶苗宅)] |
公共气车 |
|
10 |
1/23 |
일 |
● 雷山 대당(大塘)으로▶전통 의상으로 미니 스커트를 입는 [단군묘족마을(短裙苗族)] |
公共气车 |
|
11 |
1/24 |
월 |
● 榕江으로 이동 (4시간 소요) 肇兴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오지 소수민족 |
公共气车 |
|
12 |
1/25 |
화 |
● 從江으로 이동 (3시간 소요) [빠샤묘족마을] |
公共气车 |
|
13 |
1/26 |
수 |
● 三江 광서장족자치구 |
公共气车 |
|
14 |
1/27 |
목 |
● 昆明으로 |
列车 |
|
15 |
1/29 |
금 |
● 여유 |
|
|
16 |
1/30 |
토 |
Kunming 발 30.JAN 11 02:25 ~ 07:00인천 착 |
飞机 |
|
위의 계획은 그야말로 계획이 되었습니다.
귀주성에 눈이 많이 내려 계획은 완전히 빗나가고 매일 매일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여름 같으면 충분히 가능했던 계획이었습니다. 귀주성은 겨울엔 가면 않되네요.
[여행 소감]
귀주성은 해발고도는 높지만 위도가 낮아 그리 춥지도 그리 덥지도 않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번 겨울을 눈이 몹시 많이 오고 추워서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길 떠나면 집에 있을 때보다 체감 온도가 더 내려가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다 더 챙겨 입어야한다.
귀주성의 성도인 구이양 이름 자체가 태양이 귀하다고 귀양(貴陽)인데 정말 태양이 귀한 것을 알 수 있다. 17일간의 여행에 15일을 귀주성에 있었는데 정말 태양을 딱 한번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본적이 있다. 귀주성의 아이들은 파란 하늘을 정말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건기인 겨울에 평균 13일이 비가 온다고 한다.
미술시간에 하늘을 무슨 색으로 그릴까?
그림자를 볼 수 있을까?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또 이번 여행은 중국인과 만나 함께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가 그렇게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경계를 해야 할까했지만 우리가 운이 좋았던지 모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万峰林완펑린에서 가는 길에 버스에서 만난 深圳심천 청년은 우리를 안내해 주었으며 아주 작은 돈이지만 시내버스비와 내가 산 맥주 값을 자기가 냈다. 고마워서 저녁을 사기로 했고 저녁은 소박한 식당에 가서 火涡화구어(사브사브 비슷한 음식)을 먹으면서 같이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두 번째 만난 북경에서 출장 왔다는 아가씨를 씽이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는데 말이 잘 안통하는 우리를 구이양까지 친절하게 안내 해 주었다.
세 번째 만난 凯里카이리행 기차에서 만난 묘족 청년에겐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한국에 오면 모든 일 제처 놓고 대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凯里카이리에서 苗族묘족 최고의 식당, 후진타오 주석이 먹고 갔다고 하는 곳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으며 저녁에도 친구들을 불러 만찬을 함께 했으며, 눈이 와서 차가 못가는 雷山레이산은 가는 길이지만 택시로 우리를 데리고 갔으며, 저녁은 의사인 그 청년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 앞 호텔에서 중국음식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융숭한 대접을 하다니 의아했다.
곤명에서 만난 한국인이며 중국에서 11년을 살았다는 분이 중국인은 항상 경계해야하고 소매치기가 많고 특히 음력설 가까이 여행 일정을 잘못 잡았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15일간 곤명에서 놀다 가라고까지 했다. 전날 그분들은 KFC에서 식사기도를 하는 사이에 노트북과 카메라 가방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그들 세분 모두 목사님 집사님들 이었다. 함께 아침을 먹을 때 식전 기도를 충심으로 드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다 있는 소매치기다. 조금만 경계하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같다. 중국 귀주성은 정말 중국에서도 못사는 지방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시내버스는 아무리 멀리 타도 대개 1원(한화180원)이다. 이번 여행은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노인들과 아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의 자리 양보는 배울 만하다.
참고<중국에서 전화기 사용하기>
닛시민박 사모님이 중국에서 쓸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전화기를 소개해서 하나 샀다.
전화기는 LG상표인데 아주 작고 기본기능만 있었다. 이전화기는 250위안(45000원정도)주고 샀는데 많이 쓰진 않았지만 요긴하게 중국여행 중 잘 썼다.
이전화기는 중국 내에서만 쓸수 있는 단점도 있지만 50위안(9000원)정도의 칩(심카드)만 하나 사서 끼우면 여행 중 얼마든지 사용해도 남는다. 20위안, 30위안 짜리도 있다고 한다. 전화기를 통신 가게에 가져가서 50원 카드로 개통해 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카드를 심어준다. 통화가 많지 않은 우리 같은 경우는 몇 달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2개월 정도 후에 칩에 남아 있는 금액이 소멸된다고 한다. 로밍폰의 요금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일 수 있다.
폰은 한번만 준비하면 되고 중국에 갈 때마다 칩을 사서 끼우기만 하면 되고 또한 동남아나 유럽은 모두 이 방식을 사용하니 심카드를 사서 끼워 사용하면 되니 편리한 점도 많다. 그리고 유사시 한국대사관 전화번호 정도는 알아두고 가면 한국말 통화를 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이제는 중국어로 문자 보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문자는 영어와 중국어로 밖엔 되지 않는다.(더 비싼 것은 될 테지만)
중국에 2개월 내로 중국에 다녀 올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 줄 수 도 있다.
[여행일기]
☀첫날(1월 14일)
보충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공항버스를 타고 2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전에 운남성 여행에서 묶었던 쿤밍 닛시 민막에 묶기로 했는데 약간의 짐을 부탁해서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짐이 꾀 많아 항공사 직원이 무게가 20kg 한도를 약간 넘었는데 그냥 부쳐 준다고 하면서 선심을 쓴다. 이짐을 항공 화물로 부치면 몇 십만 원은 될 거라고 농담을 하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도 한다. 둘이서만 중국을 가느냐? 중국어는 잘하느냐? 자기도 중국어를 조금하고 가고는 싶은 데 혼자 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쿤밍공항에 도착하니 닛시 민박집 사모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민박집에 가니 한국인들이 몇 분이 있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 같기도 하고 교회 일을 하시는 분들 같기도 했다. 그분들은 중국에 꾀 오래 산분들이라고 했다. 그분들이 하도 겁을 주어 여행할 맛이 떨어졌다. 중국의 춘절(음력설)을 중국 인구 중 6억이 한 달간 이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음력설을 20일 앞두고 왔기 때문에 차표도 구하기 힘들어 돌아오기도 힘들 것이고 길거리마다 사람들이 많아 소매치기 강도가 성행하니 쿤밍에서 먹고 놀다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까지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한다. 목사와 집사라는 그분들은 어제 KFC에서 눈감고 식사기도 중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갔다는 것이다. 말을 듣고 보니 너무 위축되어 여행이 즐겁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열차를 타서 쳐다보는 사람마다 의심을 한다. 저놈이 이따가 내 주머니를 노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짐을 가지고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는 나라나 같다. 중국만 다르지는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서로 잘 대하면 잘해준다.’ 그렇다고 경계를 완전히 늦추지는 않아야 한다.
☀둘째날(1월 15일)
씽이(兴仪)행 열차를 탓다. 열차표는 닛시에 부탁을 해서 구했다. 열차표는 가장 급이 낮은 좌석밖엔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열차 좌석은 같은 열차에서도 4가지 급으로 나누고 값이 달라진다. 잉쭈어(硬座), 롼쭈어(软座), 잉와(硬臥), 롼와(软臥)인데 가장 낮은 급인 잉쭈어를 탔다. 열차에서 냄새가 심하다. 완전 서민들이 타는 칸이다. 열차도 참 길다. 20칸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사람도 참 많이 탔다. 옆과 앞에 아가씨들이 탔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사람 이라고 하니 호의적이다. 자기들이 사온 과자며 해바라기 씨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가방이며 트렁크들이 모두 커서 물어봤더니 엄마 아빠 동생 선물이라고 하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고향마을 가까이 왔을 때 좋아서 함성을 질러 깜짝 놀랐다.
중국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나 차에서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역무원들이 수시로 땅콩껍질 해바라기 껍질 등을 청소한다. 나도 한 줌 얻어먹어 봤는데 고소한 것이 괜찮다. 땅콩과 해바라기 씨 모두 껍질 채 양념을 해서 볶아 향이 있는 것이 좀 마음엔 들지 않는다.
씽이를 향해 달리는 열차는 작년에 왔던 아름다운 石林석림을 지난다. 씽이 시내는 씽이 역에서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려고 하니 어느 버스가 씽이 시내를 가는지를 잘 모르겠다. 택시기사가 60위안을 부른다. 책에는 10위안이라고 나와 있었다. 다른 택시에게 20위안에 가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더니 손님을 다 채워야 간다고 한다. 짐을 내려 버스 쪽으로 가니 씽이라고 쓰여 있었다. 버스를 타니 1인당 6위안 이었다. 동쪽 버스터미널(東站)을 간다고 한다. 동잔에 내려 숙소를 찾으니 만만치 않다. 고급호텔이 있었는데 외국인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호텔을 소개 해 주었다. 택시비가 5위안이라면서 호텔 종업원이 택시까지 잡아주면서 우리를 盘江宾馆판지앙 빈관에 소개했다. 3성급 호텔이었으며 가이드북에 소개가 되어있었다. 하루에 140위안(25000원, 써놓은 가격은 280원)인데 두 사람의 아침식사를 뷔페로 제공하니 아침식사가 없는 100위안 짜리 보다 싼 셈이다. 식사도 좋았으며 호텔도 아주 쾌적하다. 씽이를 가는 여행자에게 이보다 좋은 호텔은 없다. 100위안짜리 방은 괜찮았지만 화장실이 구식이다.
☀셋째날(1월 16일)
오늘은 万峰林만봉림(완펑린)을 다녀오려고 한다. 호텔에서 물어보니 1路公交车를 타면 직접 만봉림을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1路차를 타니 시골 사람들이 많이 탄다. 차도 많이 낡은 차다. 그러나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박하다. 만봉림이 버스의 종점이다. 만봉림 입구에 내리니 관람객이라곤 우리부부와 심천에서 왔다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에게 말을 걸어 함께 다니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한다. 입장료가 45위안이고 순환 무개차비용이 35위안이었다. 우리는 되돌아오는 길은 시간도 많고 하니 내려서 걷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은 여기저기 들리면서 천천히 걸어 3시간은 걸어서 왔다. 그 청년에게 중국어도 배우면서 여기저기 들려 보았다. 길가에 있는 식물이며 채소 이름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바로 바로 까먹었다.
완펑린은 확실히 절경이다. 계림을 옮겨놓은 듯하다. 계림은 큰 강이 흘러 아름답지만 여기는 논과 밭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무개차에서 안내방송을 하는 아가씨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청년이 천천히 말해준다. ‘중국에서 산수의 경치는 첫째가 계림이고 둘째는 장가계 셋째가 완펑린이다.’ 라고 아가씨가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름이나 가을이 겨울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한다. 관광객은 우리 셋밖에 없는가했는데 나중에 한 팀이 있었다. 무개차가 십여 대가 있는 것을 보니 겨울이 아닌 계절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공원에 들어서자 십여 명 되는 사복 입은 젊은 남녀 들이 군인들에 의해 군대식 제식훈련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는데 그들이 이공원의 안내원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군대 훈련소 생각이 나게 한다.
순환 무개차가 가는 길은 경치기 좋은 곳의 반대편에 산중턱을 깎아 만들었으며 중간 중간 경치가 좋은 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 가면서 사진을 찍도록 하고 있었다.
그 청년과 함께 사진도 찍고 또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하면서 돌아오는 길은 여유 있게 농촌의 정취와 경치를 감상하면서 가게도 들리고 했다. 이렇게 친절한 청년을 만나 함께하게 되는 여행이 더 즐거워 졌다. 구멍가게에 들렸더니 대 낮인데도 컴컴한 조그만 홀에서 동네 아낙네 아가씨들이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들어가니 불을 쪼이라고 자리를 내주고 군고구마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고구마를 얻어먹으면서 맥주를 2병 시켜먹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다고 한다.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심천 청년이 맥주 값을 지불했다.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음력설을 맞아 떡을 하는 방앗간을 보았는데 기계로 떡가래를 만드는데 굵고 짧게 벽돌 만하게 만들어 꼬챙이에 꼬여 말리는 것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땅히 점심을 먹을 때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려 운동장 가에 돌로 만든 원탁에서 가지고 온 과일과 과자로 함께 식사를 했다. 오다가 팔괴전八挂田을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하고 산 밑까지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전 10시쯤 도착해서 오후 2시쯤 정문에 도착했다. 걸은 시간은 서너 시간쯤 되는 것 같다. 청년에게 저녁을 내가 살터이니 시간이 있느냐고 물으니 좋다고 한다. 우리는 식사 주문할 때면 주문할 줄을 몰라 머리가 아프니 당신이 식당과 메뉴를 골라달라고 했다. 웃으면서 화구어火锅(일종의 사브사브)를 말하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네모난 철제로 된 식탁 테이블 중앙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먹은 돼지 족발 화구어다. 채소를 많이 넣어 삶으니 입맛에도 맞는다. 기름에 볶거나 튀긴 음식만 먹으니 느끼한데 비해 채소를 많이 데쳐먹으니 입맛에 맞았으며 값도 비싸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서로 명암을 주고받으며 내가 심천에 가면 좋은 안내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당신이 한국에 오면 내가 좋은 안내를 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네째날(1월 17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눈으로 변한다. 하지만 바로 녹는다. 아열대 지방에 오는 눈이라서 그런지 호텔 종업원들 모두 나와 눈 구경이다. 시내가 질퍽거린다.
이번에는 마링허협곡을 4路차를 타고 간다. 정문에 내리니 관광객이라고 우리 밖에 없다. 중간에 두 명을 멀리서 본 것 빼곤 볼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 비용이 30위안인데 탈 필요가 없다. 걸어 내려가면 바로다. 내려 가다보면 협곡의 폭포 물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 무너져 생긴 협곡임을 알 수 있다. 협곡의 절벽 지형이 특이하다. 협곡 중앙에 나 있는 순환로를 한 바퀴 돌면 된다.
여기 저기 폭포가 열 개도 넘게 있다. 겨울인데도 수량은 참 많은 것 같다. 모든 경치는 아름답다. 그러나 자연보호 정신이 부족해서인지 계곡에 비닐봉지 조각들이 많이 걸려 있다. 협곡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돌아오니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출구에 나오니 여기도 상점주인과 공원 종사자 몇 명이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종사자들은 뭔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원 안내 방송 내용인 것 같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런닝화를 신고 갔더니 운동화가 물이 스며들어온다. 신발가게에 싼 신발들이 많아 신발을 고르는데 신발가게 몇 군데를 들렸는데도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없다. 소수민족(대개는 묘족)이 살고 있는데 발이 모두 작은 모양이다. 키도 나보다 큰사람을 거의 못 보았다. 신발 크기 280mm인데 스타일을 무시하고 맞기만 하면 사려고 했지만 몇 군데 돌아보다가 포기하고 젖은 신발을 신기로 했다.
아열대지방이라 우리나라보다 춥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는 우리나라보다 더 춥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차안과 실내 생활이 많고 난방도 잘 되어있으니 추위를 잘 모르지만 난방시설이 부족하고 실외생활이 많은 여행에는 더 추위를 느끼게 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등산할 때를 생각해서도 안 된다. 등산할 때는 열심히 걸으니까 열이 나지만 여행은 그렇게 빨리 걷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호텔 앞에 여행사에서 기차표를 팔아서 26일 귀양발 쿤밍행 침대열차표를 샀다. 나중에 28일로 바꾸었다. 쿤밍에서 만나 사람들이 기차표를 구할 수 없을 거라고 해서 겁을 먹고 미리 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귀양에 가니 얼마든지 부드러운 침대표(245위안)를 구할 수 있었고 침대칸은 아래층만 차 있었다. 참고로 알아 둘 것은 중국은 10일전부터 열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
☀다섯째날(1월 18일)
서둘러 씽이 동쪽터미널客运东站으로 갔다. 오늘은 황과수 폭포가 있는 안순을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안순을 가지 못한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안순을 포기하고 귀주성의 성도인 贵阳 으로 가라고 한다. 구이양에 가면 안순을 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여기서 베이징에서 출장을 왔다는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가 많은 것을 도와 주었다. 꾸이양을 가는 길에 안순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안순을 가려면 중간에 내려 안순행 버스를 타야하는데 불안해서 그냥 일단 구이양까지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보니 황과수폭포를 들어가는 톨게이트를 볼 수 있었다. 내려 주느냐고 묻기에 그냥 가자고 했다. 중간에 숙소 등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나 혼자나 남자들끼리라면 내렸을 테지만 아내와 함께라서 걱정이 더 했다. 구이양터미널(금양커윈잔)은 구이양 시에서 멀다. 또 公交车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 구이양 역에 내려 숙소를 찾았는데 책에 소개된 호텔은 수리중이어서 옆에 있는 白迪酒店호텔로 갔다. 128위안에 부실하지만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카이리 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니 설명절이 가까워져서인지 188위안으로 올라 있었다.
여행사에 물어보니 황과수는 길이 미끄러워 못 간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먼저 凯里카이리나 들려 보려고 물어 보았더니 카이리도 버스는 가지 않는 다고 한다. 카이리는 기차가 다니는 곳이라 일단 다녀오려고 왕복 열차표를 예매 했다.
자다가 창문을 보니 눈이 펄펄 내린다. 이번 여행에 가장 중요한 곳인 황과수 폭포는 보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 여섯째날(1월 19일)
내일 카이리로 이동하게 되니, 오늘은 구이양에서 갈 곳을 찾아보니 첸링공원黔灵公园이 있었다. 어제 밤에 눈이 많이 왔다. 태양이 귀해서 구이양이라는데 언제쯤 태양구경을 할까가 궁금했다. 1路 2층버스를 타고 30분이상 가니 공원입구가 나온다. 사진기를 든 청년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첸링공원의 설경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한다. 눈이 많이 와서 많은 시민들이 첸링산에 설경을 구경하러 나왔다. 오랜만에 눈이 많이 왔으니 모두가 눈을 보고 즐거워한다. 산책로를 한참 따라 걷다가 되돌아 와서 곤돌라를 타고 정상 전망대에 올라가 구이양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의 돌솥 밥과 비슷한 것이 있어서 점심을 먹었다.
어젯밤에 방이 추웠다. 호텔에 돌아와 호텔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창문이 큰데 에어콘 겸용 난방기가 있었지만 창문이 전혀 단열이 되어있지 않아서 온도를 최고로 해놓아도 추웠다. 방이 좀 작고 창문도 작은 방으로 바꾸어 달라고 해서 바꾸니 따뜻했다. 아열대 지방이지만 난방개념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보다 따뜻하다고 생각 하면 안 된다.
☀ 일곱째날(1월 20일)
오늘은 아침에 서둘러 8시 기차를 타고 소수민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고 많이 찾는다는 카이리로 간다. 하지만 겨울이라 외국인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한국 관광객이 큰 버스로 왔다가 길이 미끄러워 되돌아갔다고 한다. 카이리는 소수민족들이 사는 山江,雷山,西江,郎得, 枞江등 수많은 소수민족 마을들을 들르는 전진기지다. 카이리행 열차를 타니 시골사람들이 많았으며 모두 엄청난 짐들을 가지고 탄다. 음력설 춘절이 가까워 오니 짐이 더 많은 것 같다.
맞은 편 좌석에 멀쑥하게 차려 입은 청년이 있어 물어보니 카이리를 간다고 한다. 내릴 때 따라 내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이리에 가까워오니 내릴 준비를 하라고 일러준다. 역에서 시내가 아주 가까워서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더니 택시를 잡으면서 같이 타고 가자고 한다. 택시비를 내려고 했더니 자기가 낸다. 그리고 호텔을 정했느냐고 물어보아서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카이리대주점凯里大酒店으로 데려간다. 바로 카이리에서 제일 번화한 따스즈(大十字)부근이었다. 고급호텔 같아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가격표보다 훨씬 작게 158위안을 받는다. 중국의 호텔 요금은128위안, 138위안 158위안 등 끝에 8위안으로 끝나는 요금을 받는다. 8자가 돈을 잘 버는 숫자라고 한다. 들어가 보니 넓고 쾌적하고 응접세트에 컴퓨터 인터넷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A급이다. 거기다가 아침까지 괜찮은 뷔페로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15만 원 이상 받는 호텔이다. 요금은 겨울 요금이 좀 싸다고는 한다. 호텔계약을 하고 고맙다고 청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니, 청년이 명암을 주면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한다. 이걸 거절해야 할지 승낙해야할지 잠간 망설였지만 사람이 좋아 보여 승낙을 했다. 짐을 풀고 있으니 전화가 왔다. 그 청년이 호텔로 온다고 한다.
근처에서 간단히 먹으면 내가 대접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택시를 잡더니 시 외곽으로 간다. 길에는 시민들과 경찰, 군인들이 빗자루와 삽으로 눈을 치우느라고 한창이다. 군대 생활 할 때 눈만 오면 빗자루와 밀개로 눈 치우던 생각이 난다.
도착하니 마오猫族 전통식당으로 데려간다. 요정 수준이다. 친구도 한명 불렀다. 한국친구라고 하면서 소개를 한다. 후진타오 주석도 카이리 방문시 여기서 식사를 했다고 자랑을 한다. 잉어 메기 등을 재료로 한 일종의 화구어였다. 메뉴판을 보니 상당히 비싸다. 요리를 시켜놓고 복도와 마당에 나가 자기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사진기를 달라고 한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요리를 먹는 동안 서너 명으로 구성된 묘족 총각 처녀들이 전통 악기를 들고 와서 공연도 해 주었다. 그 청년 집도 알고 명암도 받았고 사람도 좋은 것 같아 경계를 풀고 즐겁게 식사를 했다. 값이 많이 나왔다. 500위안을 내니 몇 십 위안 거슬러 주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도 8만원은 넘은 금액이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카이리시청과 박물관을 구경시켜 준다고 택시로 시청으로 갔다. 시청과 박물관을 구경하고 헤어 졌다. 정말 왜 이렇게 좋은 대접을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 되었다. 무엇에 홀린 거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국인을 왜 그렇게 대접하는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아무리 좋다지만… . 대접은 받았지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그들의 문화인 것 같다.
4시쯤 지금 볼일이 있어 헤어지지만 6시쯤 다시 전화를 한다고 하고 헤어졌다. 왜 또 만나자는 것인지 약간은 불안 하기도하다.
6시가 좀 넘으니 전화가 왔다. 우리숙소로 온다고 한다. 또 저녁을 먹으로 가자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사야 할 것 같아 내가 살 각오를 하고 따라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번에도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 앞에 내린다. 식사를 시키는데 여러 가지 요리를 시킨다. 이건 3명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조금 있으니 친구들이 한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하더니 친구가 4명이 왔다. 모두가 7명이 되었다. 통하든 안 통하든 서로 몸짓 발짓 의사소통을 하면서 술과 요리를 즐겁게 먹었다. 이건 또 내가 낼만한 한계를 넘어섰다. 여행 중 한 끼에 10만 원정도 낼 용기가 없다. 그들은 연속극 대장금과 배우 이영애 얘기를 하면서 한국여자 예쁘다는 말은 빼놓지 않는다. 우리 아내까지 예쁘다고 한다. 늙어서 무엇이 그러냐고 반문했지만 기분은 나쁘진 않다. 한류의 열풍도 실감했다.
부인이 의사라고 소개를 했고 청년은 명암을 보니 유한공사 总经理(사장)지만 돈을 많이 썼다. 지나치게 친절한 것에 의아했지만 계속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 여덟째날(1월 21일)
오늘은 西江이든지 어디든지 소수민족마을 중 갈 수 있는 곳을 가려고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커윈잔)으로 갔다. 표를 사려는 사람은 벌떼같이 많다. 하지만 시골마을로 가는 버스는 모두 길이 미끄러워 가지 못한다고 한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 왔다. 길에는 서너 명이 한 줄로 나무로 만든 상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상자 속에는 숱 불을 피워 놓은 작은 난로가 있었다. 알고 보니 바느질감을 구하는 아낙네들 이었다. 새로 산 옷들을 줄이거나 늘이는 일을 재봉이 아닌 바느질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은 눈이 녹아 질척거린다. 근처 시장으로 갔다. 여기는 내발에 맞는 구두가 있을까? 한군데 커다란 가게에 들르니 44호라고 하면서 가장 큰 신발을 내 놓는다. 신어보니 맞는다. 가격도 69위안(13000원)이니 괜찮다고 생각이 되어 사신고 신던 신발은 낡아 버렸다. 그런데 며칠 신다보니 발이 편하지 않다. 버린 신발이 후회가 된다. 여행은 신발이 아주 중요한 건데. 그 신발은 집에 오자마자 버렸다.
숙소에서 잠이나 자자고 누워있는데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 차를 가지고 왔으니 같이 西江을 가자고 한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들의 말로는 주변에서 시장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데 20분 정도 달리다 보니 시지앙西江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경찰들이 못 간다고 막는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오는데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이제는 정기 버스가 갈 수 있을 거라면서 친구에게 버스터미널로 가자고 한다. 버스터미널에서 알아보더니 이미 버스는 없으니 택시로 갈 수 있다고 하면서 택시를 잡고는 타라고 한다. 레이산으로 가자고 한다. 레이산에는 자기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이 있는 곳이다. 함께 택시를 타고 레이산으로 향했다. 길은 빙판인 곳도 있었지만 산사태가 나 있어 정비 중이었다. 그리고 정기 버스는 경찰차를 앞세워 한꺼번에 5대의 버스가 함께 2시에 1회만 운행하고 있었다. 레이산에서 카이리로 다시 나올 때도 그렇게 나왔다.
레이산에 도착했다. 택시비도 꽤 나온 것 같다.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고맙고 미안한 것을 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중국어 실력이니만큼 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자기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 앞 호텔을 정해준다. 시골인 관계로 호텔 시설은 그저 그렇지만 괜찮았고 값도 100위안으로 저렴했다. 짐을 풀자마자 자기 부인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병원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너무 열악하지만 종합 병원이었다. 외과 수술을 담당한다고 하는 것 같다. 부인 사무실에 들렀다. 전기난로를 가져다주며 반긴다. 알고 보니 결혼 한지 2개월 밖에 안 된 신혼부부다. 노트북에서 결혼식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너무 고마워서 오늘 저녁은 우리가 살터이니 당신 부부와 우리부부가 함께 하자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 것 같다. 여하간 저녁은 우리가 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부인이 퇴근할 때까지 레이산을 구경시켜 주었다. 묘족 행사장은 반원형 목조 건물로 스탠드가 만들어진 커다란 운동장이었다. 묘족 건축양식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거기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고 한다. 특히 투우 투견 등이 열린다고 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데 겨울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부인이 퇴근하면 같이 저녁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경을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함께 나왔다. 우리가 묶을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먼저 카운터에서 부인이 음식주문을 하는 것 같다. 2층 식당 별실로 안내한다. 들어가 보니 열 댓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이 놓인 방이다. 전자동 마작판까지 있는 방이었다. 나중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10인분도 더 들어 온다. 이걸 누가 다 먹지? 하고 생각하는데 손님이 한명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같은 동료라고 소개한다. 부인의 언니와 아이들도 왔다. 그리고 소개 시켜 준다. 처음 생각에는 부인은 통이 더 크구나 생각 했었는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아마 손님을 대접할 때 친구 동료들을 불러 함께하는 묘족의 생활습관인 것일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하간 중국 묘족 전통음식의 진수를 맛보는 것 같았다. 고급술과 고기 야채 등 많은 요리로 너무 잘 먹었지만 저녁 값을 낸다고 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청 많은 값이 나왔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니 옆에 준비된 마작판으로 옮겨 간다. 청년 부인이 패를 잡는다. 금 새 100위안짜리 지폐가 오고간다. 판도 크다. 중국인에게 마작은 우리의 고스톱이상으로 생활인 것 같다. 그들이 마작을 하는 동안 그 청년은 우리는 레이산의 야경구경을 시켜준다. 내일은 함께 할 수 없으니 우리 둘이 西江을 다녀 카이리로 가라고 일러준다. 정말 고마운 청년이다. 그 청년이 없었으면 오늘도 카이리 빙관에서 뒹굴고 있을 텐데…
☀ 아홉째날(1월 22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가 경찰에게 ‘오늘 西江에 버스가 가느냐고 물었더니 길이 미끄러워 갈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먼저 알아보았지만 아침 10시쯤 청년이 들려 오늘도 西江에 갈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카이리로 되돌아 가야한다고 말한다. 자기는 바빠서 먼저 갈 테니 오후 2시버스를 타라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호텔 카운터에 물어 보았더니 12시부터 표를 팔고 기온이 올라가는 2시에 차가 출발 한다고 한다.
12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3위안에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갔다. 표를 사고 2시간이 남아 뒷산을 마을을 구경할 겸 차도를 따라 올라갔다. 아주 시골마을이었다. 그야말로 오지 마을이다. 생활환경이 너무도 열악함을 느끼게 한다. 한겨울에 배추 몇 포기 지고 팔로 가는 아낙네를 볼 수 있다.
2시가 되니 경찰차를 앞세워 5대의 카이리행 버스가 한꺼번에 출발한다. 한 시간이 더 걸려 카이리에 왔다. 전에 묶었던 그 호텔로 다시 돌아 왔다. 씽이의 판장빈관과 카이리의 카이리대주점은 정말 강력 추천이다. 또 호텔에서 멀지 않은 카이리의 10위안 뷔페도 추천한다. 구이양의 10위안 뷔페가 깨끗해 보이지 않는 반면 카이리 지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지하 오락실이 있는 10위안 뷔페는 강력추천이다.
☀열째날(1월 23일)
오늘은 아무데도 못가고 저녁열차를 타고 구이양으로 가서 황과수 폭포 가는 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12시 체크아웃을 하고 시내를 구경하다가 늦게 열차를 타고 구이양으로 왔다. 구이양에 와 보니 전에 129위안에 묶었던 방이 구정이 가까워오니 188위안으로 올라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쓸 만한 곳은 하나같이 188위안이다. 밤이 늦으니 더 이상 돌아다닐 수도 없고 깨끗하고 따뜻하기에 速8酒店으로 정했다.
☀열하루째(1월 24일)
언제 황과수를 갈 수 있을지 모르므로 26일 곤명 가는 기차표를 28일로 바꾸었다. 역 앞 여행사에 물어보니 바가지요금을 요구한다. 호텔 내에 있는 여행사에 가격표를 보니 385위안에 황과수, 천성교, 용궁을 가는 패키지가 있었다. 다른 곳과 가격이 같아 일단 예약을 했다. 내일 황과수를 가는 것은 일기를 보고 오늘 저녁에 확답을 준다고 한다. 일기 핑계를 대지만 일기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몇 명이상의 여행객이 모여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화씨공원花溪公园을 203路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타고 공사관계로 세월없이 간다. 버스 탈 때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호텔 종업원이 일러준다. 화씨공원원, 첸링공원에 비해 더 아름답다. 중간에 커다란 내가 흐르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돌아 올 때도 공사관계로 복잡하여 차선도 없이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 박혀 움직이질 않는다. 우리가 탄 시내버스는 갓길로 오다가 쓰러진 전봇대에 동력전달 장치가 걸려서 움직이질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내려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 돌아와 있으니 내일은 일기 관계로 황과수를 갈 수 없다고 문자가 왔다. 그럼 모래라도 간다고 했더니 모래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열이틀째(1월 25일)
하는 수없이 오늘도 황과수를 못가니 칭옌고성(青岩)을 다녀오기로 했다. 전날 갔던 화씨공원에서 내려서 시외로 가는 마을버스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가면 3위안이면 된다.
운남성의 리장(丽江)고성은 수로가 아름답게 흐르는 고성이라면, 호남성 봉황(风皇)고성은 중앙으로 강이 흘러 운치가 있고 귀주성의 칭옌고성은 작은 산에 있다. 다른 곳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훼손된 곳도 많이 보이지만 그런대로 하루쯤 고성의 옛 풍치를 즐길 만하다. 이름은 모르지만 김으로 찐 녹말가루를 가지고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투명한 죽을 먹어 봤는데 맛이 괜찮다.
숙소에 돌아와 여행사에 물어보니 내일 황과수가 미정이라고 한다. 언제쯤 황과수를 갈 수 있을까. 쿤밍으로 이동할 때까지 사흘밖엔 남지 않았는데.
☀열사흘째(1월 26일)
예고도 없었는데 새벽7시 30분 황과수를 갈 수 있으니 10분후에 준비해서 나오란다.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나오니 버스가 왔다. 이전 황과수를 가는 가보다. 여행 가이드가 중간에 황과수 에스컬레이트 값이라고 하면서 100위안을 더 내란다. 황과수 에스컬레이트 길기는 엄청 길다.
우리팀은 북경에서 온 나이가 좀 든 부부와 중국인이며 호주에서 산다는 한 가족 4명과 일본인 여교수와 학생 2명 모두 9명이 출발 했다.
남편이 회계사인 호주에 사는 중국인 여자는 한국인이라고 하니 어제 저녁 아시안컵 축구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알지 못했는데 일본과 패널티킥으로 해서 한국이 패했다는 소식을 영어로 말해 준다. 덧 붙여 작년에 한국을 다녀갔는데 한국 고등학생들은 대학입학시험 공부에 찌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호주는 그렇지 않아 초등학생인 자기애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처음 용궁龙宫동굴을 들린다. 거대한 굴을 배를 타고 구경하고 나오는 것이다. 동굴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본 것이니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온 것 빼고는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안 된다.
다음은 천성교天星桥를 들렸다. 아름다운 석림 사이로 365일의 날짜가 적혀진 징검다리를 건너가면서 구경을 하는 것이다.
황과수를 가는 길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있다. 처음에 본 것을 황과수 폭포로 잘 못 알았는데 황과수 폭포는 나중에 볼 수 있었다. 황과수 폭포는 겨울인데도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동양 제일의 폭포답게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 체증으로 몸살을 알고 10시가 다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귀주성에 온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
☀열나흘째(1월 27일)
오전은 푹 쉬고 오래된 건물인 명대의 누각 갑수루甲秀樓를 다녀왔다. 강이 흐르는 다리 중간에 있는 운치도 있는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가는 길에 조그만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팽이를 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마 운동을 하는 것 같다. 저렇게 큰 팽이를 치자면 운동이 많이 될 것 같다. 팽이채도 대단히 컸으며 왼손 오른 손을 다 사용해서 팽이를 치는 것 같았다.
☀열닷새째(1월 28일)
오늘은 곤명으로 침대차를 타고 밤에 이동하는 날이다. 시간이 있어 명대 학자 왕양명을 모신 사당인 양밍츠(阳明祠)를 다녀오려고 갔더니 수리관계로 휴관이라 문에서 사진만 한 장 찍고 왔다. 내년 3월 1일 개관이라고 한다.
☀열엿새째(1월 29일) 열이레째(1월 30일)
새벽 6시 도착하니 깜깜하다. 역 수화물 맡기는 곳에 짐을 맡기고 나왔다. 오늘 밤이 아니라 내일 새벽 2시 비행기다. 오늘 하루를 쿤밍에서 보내야 하는데 난감하다. 온천을 가려고 했는데 택시운전사가 온천이 아니라 호텔 목욕탕으로 데려다 주었다. 목욕비도 너무 비싸다. 100위안 이었다.
옆 호텔로 가서 반일만 묶자고 했더니 하루치를 다 내라고 하기에 우선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호텔 식당 종업원 아가씨 참 친절하게 우리를 대하면서 묻는 말에 참 천천히 알아듣게 설명을 해준다. 하이껀공원이 있다고 4路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곤명 민속촌과 붙어있었으며 엄청나게 큰 바다 같은 호수공원 이었다. 춥기도 하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재작년 여름 운남성 여행 때 비가 와서 못 본 민속촌을 다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민속촌 입장료는 90위안 이었다. 재작년 보다 10위안이 올랐다.
민속촌에서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곤명 여행을 하고 가는 길에 비행기 시간이 남아 들렸다는 상해의 젊은 아줌마를 만나 같이 행동을 했다. 그는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었으며 자기는 자유로운 여행을 좋아해서 패키지여행은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시간에 볼만한 여행이 있으니 언제 어디 가서 구경하라고 까지 일러준다. 그들과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민속촌 대공연장에 3시부터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은 볼만 했다. 여기에는 한국 사람들이 만이 와 있었다. 그들도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들린 것 같다.
오래간만에 한국 사람들을 구경하니 반가 왔다.
이제 시내로 나가려고 걷고 있는데 한 멋쟁이 한국인 할머니가 한국 사람인 우리를 알아보신다. 사진을 찍다 일행을 놓쳤다고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한다. 안심 시켜드리고 정문 주차장에 모셔다 드렸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곤명역으로 왔다. 시간이 너무 이르다.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를 연구하다가 먼저 미용실에서 이발을 했다. 그리고 발 마사지를 하러 들어갔다. 40위안에 발 마사지를 하니 이제 겨우 9시가 되었다. 이제 저녁을 먹고 짐을 찾아 비행장으로 가기로 했다. 비행장까지 10위안이면 충분한데 짐을 실어놓으니 20위안을 요구해서 알았다고 하고 비행장으로 왔다.
비행장에 오니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서로 여행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을 잘 갔다. 그래도 밤 12시까지는 이야기로 시간을 잘 보냈는데 체그인 하고 대기실로 들어가니 비행기가 3시 40분으로 지연된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3시 40분이 아니라 보딩시간이 3시 40분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깨어보니 인천이다.
출처 :배낭여행담 원문보기▶ 글쓴이 : 청출어람
'가보고 싶은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국가지리잡지,, 네티즌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곳 랭킹-2부,,마을 (0) | 2011.03.22 |
---|---|
[트럭킹]남부아프리카 4개국 27일 (0) | 2011.03.04 |
네팔 카트만두 덜발광장의 한낮 -펌- (0) | 2011.01.29 |
네팔 "쿰부 히말라야"-- 펌-- (0) | 2011.01.29 |
** 인도 추천코스 30일 ** (0) | 2011.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