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6-6.4까지 10일 일정으로 자유여행동호인 카페에서 만난 회원 29명과 함께 중국 사천성 청뚜에서 시작하여, 칸딩-신두치아오-리탕-따오청-야딩-칸딩-무거쵸-공가산을 다녀왔습니다.
야딩 진주해에서 바라 본, 현지인들이 원조신산이라고 부르는 선네일 설산(관세음보살)
빠듯한 일정에 해발 4-5000미터 높이의 산을 6번이나 넘고 달리는 구간이 있는데, 사전에 건강상태을 확인할 수 없는 5-60대 회원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예상하였고, 실제 크고작은 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모두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행전에 코스와 여행지를 안내할 때 이런 정보를 충분히 알렸든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혈압이나 당뇨 또는 우울증 환자까지 참여하여 가끔 힘들고 애가 탔던 것입니다.
여행제3일 따오청에서 야딩으로 가는 길 전체회원들과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단체비자에 여성회원 한 분의 여권번호 끝자리 수 하나가 틀려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이로인해 돌아오는 항공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사태까지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항공권을 구입한 서울의 중국항공여행사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한 회원의 항공권을 취소하면서 같은 티켓으로 발권한 다른 두 회원의 탑승일정까지 삭제하였기 때문입니다. 다행하게도 그 항공편에 체크인하지 않은 현지인이 있어서 대기상태로 있다가 마지막에 탑승수속을 할 수 있었는데, 하마트면 그 세 사람은 물론, 단체비자를 함께 받은 다른 회원들도 당분간 돌아 올 수 없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해당항공여행사에서는 전산착오라고 해명하였지만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책임자가 배상은 커녕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뻔뻔한 놈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일로 중국항공편을 이용할 때는 보다 공신력있는 여행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 이용할 경우 이런 저런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손해배상을 약정하는계약을 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비자를 신청할 때도 두 번 세 번 개인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야딩을 가기위해서는 이런 고산의 산허리를 수 십 번씩 돌고 돌며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를 달려야 했습니다(카즈라산 고갯길에서).
또 현지 조선족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해 전세버스를 빌리면서 일당 50달러를 지불하고 가이드까지 고용했는데, 이 친구가 마치 자기여행사 행사를 치루는 것처럼 진행하려고 해서 수시로 꾸짖고 바로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경비를 충분히 지급했는데도 자기들 숙식비를 해결하면서 커미션까지 챙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싼 항공료를 보고 합비라는 곳을 경유하는 에에촤이나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면 된다는 중국항공여행사 이야기와는 달리, 공항에서 일단 채크아웃 했다가 다시 검색하고 들어오는 복잡한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동티벳 들어가는 외국인들에 대한 검색을 이처럼 까다롭게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으나, 마치 바보가 똥개훈련시키는 것 같이 어리석은 짓거리로 느껴져서 여간만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청뚜공항에 도착하여서는 그냥 검색없이 바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만....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전화로 예약하여 두었던 신남문 교통빈관에 들려 채크인하고 첫날 밤을 편히 보냈습니다. 청뚜 교통빈관의 숙소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이 즐겨찾는 곳이어서 깨긋하면서도 저렴한 것이 특징입니다. 호텔급인데도 3-4인용 도미토리는 1인당 45위안에 묵을 수 있으며, 표준방은 145-190위안입이었습니다.
제2일 청뚜에서 칸딩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있으나 얼랑산 터널을 앞에두고 산사태가 나서 3시간이나 차를 세우고 기다려야 했는데, 우리 버스가 지나가자 다시 큰 바위가 굴러내려 뒤따르던 차량들은 그 곳에서 하룻밤 세워야 했다는 가슴이 철렁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칸딩의 무거쵸에서
우리가 칸딩을 지날 때는 벌써 어두운 밤이었으며, 해발 4200미터의 절다산 고개를 넘을 때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두치아오(신도교)로 가는 절다산 고갯길은 포장이 잘 되어있어서 어렵지 않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2인실 표준방 하나에 100위안으로 좀 비싼 편이었지만 묵을 만 했습니다.
제3일은 따오청까지 가는 긴 여정이어서 아침 7시에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회원이 차멀미를 시작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는데, 머리까지 아프다고 해서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고산병증세로 보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비아그라 반쪽을 먹도록 했는데, 바로 토해 버려서 쉬는 시간에 안정을 찾은 뒤 다시 복용시켜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 이 회원은 탈 없이 전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야딩가는 길의 티벳불교 사원의 모습
가는 길에 기사와 가이드가 점심 먹는 식당문제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보았는데, 가이드는 이 길이 초행길인지 기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 같았고, 우리가 기사가 추천하는 가격 높은 식당을 피하려 하자 그는 심통을 부려 아주 지저분한 식당 앞에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을 굶은 일부회원들이 어쩔 수 없이 볶음밥과 국수를 시켜 먹었는데, 국수는 차마 입에 당기지 않았으며, 볶음밥 하나를 두 셋이 나누어 먹자 기사가 값을 올려 받도록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빌어먹을 인간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리탕에 도착하여 근사한 호텔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맛있게 먹고 늦지 않은 시간에 따오청 변두리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 수 있었습니다. 날씨는 좋아보였으나 야딩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걱정되는 하룻밤이었습니다.
제4일째 따오청의 아침은 맑았으며, 야딩에 들어서는 고갯길에 이르자 멀리 선네일 신산이 모든 것을 내 놓고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야딩의 입장료는 150위안이었으나 60세 이상은 80위안으로 할인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원 내 셔틀버스요금을 120위안이나 받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숙소마을을 지나쳐 바로 야딩풍경구로 달려가 우선 충고사를 거쳐 진주호를 찾았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 지쳐서인지 4년 전 노래를 부르며 거뜬히 오르던 충고사 길이 여간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충고사에서 진주호까지는 통나무를 이어 박아 만든 계단길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길은 오르막 구간으로 되어있어서 더욱 힘들었습니다.
야딩마을
야딩의 고찰 충고사와 선네일신산
진주호
진주호의 아가씨들
진주호의 물은 많이 말라있었으며, 호수 안에 아름다운 모습을 비춰주며 찰랑거릴 것으로 기대했던 선네일신산은 없었습니다. 시간적으로 늦은 오후여서 산의 모습이 잠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신 송판으로 만들어 놓은 쉼터에 누어 거꾸러 선내일신산을 올려다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정상은 언제나 구름이 일고 있어서 파란 하늘 밑에 우뚝 솟은 그 끝은 볼 수 없었습니다.
입구로 내려오는 길에 충고사에 들러 옴마니반메홈과 나무아미타불을 번갈아 소리 지르며,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기도하고, 이어서 자식들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하려는데 그만 설움이 북받쳐 꼬꾸라져 울고 말았다. 놀란 스님이 다가오기에 붙들고, 두려움에 가득찬 어린아이처럼 더 크게 울어버렸다. 지금은 어리석어 아비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너희들도 오늘 아비처럼 서럽게 울 날이 올 것이다. 스님이 cd 한 장을 주셔서 가져와 고이 간직하고 있다.
새로 단장한 충고사 전경
그날 저녁 묵은 티벳전통가옥은 참으로 어이없는 숙소였다. 천장에 전등은 달려있는데 전기는 이미 끊긴지 오래였으며, 화장실도 집밖에 2개뿐이었다. 세수하는 곳도 간이시설이었다. 취사장은 손가락 만한 촛불하나로 불을 켜고 있었으며,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밤에 갑자기 어느 여성회원이 머리가 아프다면서 울고 어느 남성회원이 안마를 해 주자 이상한 교성 같은 것을 질러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동안 그렇게 소란을 피우다 조용해졌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말짱한 얼굴이었다. 다른 두 분이 약간의 두통과 어지러움증으로 힘들어했는데 다음 날 따라나선 것으로 보아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티벳가옥 수소 3층 지붕에서 본 마을 모습
제5일째 날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늦게 출발하였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말도 타고 전기차도 타면서 우유-오색호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다. 충고사까지 말 타는 값은 40위안이었다. 그 곳에서 20여분 걸리는 낙용목장 까지의 전기차는 왕복 80위안이었다. 4년 전 입구에서부터 5시간 이상 걸어와 하룻밤 묵었던 해발 4000미터 낙용목장 천막촌은 말끔히 철거되고 건너편 현지인 간이숙소까지 송판을 이어 새로 깐 것 같은 넓은 길이 이어졌다.
충고사에서 낙용목장 가는 길의 습지 초원
비는 멈추었지만 바로 앞에 해맑게 맞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해발 5958미터 앙메용설산은 구름 속에 숨어있고 좌축에 우뚝 솟아있어야 할 같은 높이의 하나답길 설산도 히끗히끗 윤곽만 보이는 것이었다. 넓은 초원에서 이제 막 올라오는 풀을 뜯고 있던 야크들도 더 이상 없었고 4년 전에 느꼈던 그 감동도 살아나지 않았다.
현지인 토굴마을에서 왕복 300위안에 말을 빌려 타고 우유해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비 온 뒤라 길이 진창이어서 말이 미끄러져 넘어질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이 길을 걸어서 오르면서도 동충하초 캐러가는 현지 여인들에 뒤처지지 않았는데, 우유호에 이르는 마지막 고갯길 위험구간을 말에서 내려 10여분 걸어가면서 가쁜 숨을 헐떡이어야 했다.
우유호수 오르는 고갯길의 작은 폭포
우유호수
우유호가 내려다보이는 고개에 이르자 먼저 온 일행들이, 호수주변의 한없는, 맑고 깨끗함에 취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소리쳐 오색호 언덕으로 오르도록 불러놓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마지막 힘을 다해 언덕꼭대기에 이르자 선네일신산에서 흘러내린 하얀 석회암이 자갈무더기가 발을 담그고 있는 비취빛 찬란한 오색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언덕아래 앙메용신산이 잠겨있는 우유호가 내려다보이는 것이었다. 마부들은 그 아름다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동충하초 찾기에 열심이었으며 잠간 사이 두 개나 캐는 것이었다.
이곳에 서면 누구나 그 청아한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현지인들이 원조신산이라고 부를 만큼 맑고 깨끗하고 높고 아름답고 신비스럽기 때문이다. 이제 내려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맘으로 한 숨을 내쉬어야 했다.
선네일신산 아래 오색호수
오색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우유호수
오색호를 배경으로
60대 후반에 든 나이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으랴!
오색호 언덕에서 저마다 준비해 온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마부의 다그침에 따라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길 우유호 고갯길을 막 지나는데 부산에서 부부로 온 여성 한 분이 혼자서 힘들게 올라오고 있었다. 늦게 도착하여 말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마리 남은 말을 남편한테 양보하고 자기는 걸어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뿔사! 전혀 예기치 못했는데,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니.... 그렇지만 어찌하랴! 누구의 잘 못이나 책임 질 일이 아니어서... 선네일이 담에 한 번 더 오라는 뜻으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마부에게 팁 20위안을 주면서 적은 것 같아 속으로 미안했는데 그는 크게 고마워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앙메용신산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름속에 감추어진 앙메용의 모습이랍니다.
낙용목장 건너편에 현지인 토굴마을(말 타는 곳)이 보임
동티벳고원의 하늘(멀리 보이는 마을은 해빌 4000미터가 넘는 분지에 자리잡은 리탕)
티벳고원의 하늘 빛
끝없는 해발 4-5000미터의 산악지평선
그날 저녁 따오청으로 돌아와 전에 들렸던 온천에 갔는데, 가이드놈이 주인과 짜고 온천욕비를 올려 받아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1인당 10위안도 안 되는 것을 40위안씩 받아서 작은 욕심을 채웠던 것이다. 차를 빌려 준 조선족 여행사에서 일정표에 넣어서 그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제6일째 우리는 칸딩까지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침에 출발하려고 준비중인데, 부부로 참여하여 또우청에서 갈라지는 인천의 허 모씨가 버스비 반을 돌려달라고 생떼를 쓰며 버스를 가로막고 욕지거리까지 퍼 붓는 것이었다. 만약 따또청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했던 새로운 부부가 버스를 타면 돌려준다고 했던 것인데, 그 부부가 우리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하여 그 사실을 전날 저녁에 통보하였는데도 막무가네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참 별꼴을 다 당하는 구나 싶어서 한 방 갈기고 싶었으나 돌아가는 일정을 생각해서 참아야 했다. 버스비도 돌려주고... 빌어먹을! 잘 먹고 잘 살아라!
마침 날씨가 좋아서 갈 때 보지 못했던 해발 4-5000미터 동티벳고원의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다 볼 수 있었다. 입맛이 떨어지거나 중국음식이 체질에 맞지 않는 회원을 위해 따로 먹을거리를 준비하도록 했는데, 회계를 맡은 총무에게 점심과 저녁을 함께 하지 않은 회원들의 명단을 일일이 파악해서 먹지 않은 식사비는 일괄 거둔 공금에서 돌려주도록 했는데, 이 일이 쉽지 않았던지 중간 중간에 마찰이 일기도 했다.
이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티벳고원에서 멀리 보이는 공가산 일대
절다산을 넘으면서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으며, 칸딩에서도 보슬비를 맞아야 했다. 오랜만에 자유여행답게 각자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일부는 호텔옆에 있는 안마소에서 피로를 풀기도 했다. 100분에 60위안이었다.
제7일째 우리는 예정대로 무거쵸로 이동하였다. 셔틀버스요금을 포함해서 1인당 163위안을 주고 들어갔다. 무거쵸는 호수 그 자체 보다는 그 곳에서부터 내려오는 두견계곡이 아름답다. 해발 3600미터에 위치한 호수의 둘러싼 산은 설산인데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한켠에서 꼬치구이로 파는 야크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두견계곡을 따라 도보로 발온천장까지 하산하였다. 온천은 섭씨 90도씨의 물이 솟아나는데 입장료도 받고 삶은 달걀도 팔고 있었다. 물은 자주 갈아주지 않았는지 이끼도 끼어있고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무거쵸입구 표지석
두견계곡
우리는 공가산으로 오는 길에 루팅의 루팅광장과 모택동공산군의 전적지로 유명한 루팅교를 둘러보았다. 최근에 성역화 한 것으로 보이는데, 광장을 가운데 두고 좋은 아파트를 죽 지어 놓아서 한-두 달 쉬었다 가면 좋은 곳으로 보였다. 마침 중국의 어린이 날이어서 아이들이 예쁜 옷을 입고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가산 산책로
공가산 산책로
공가산 포장도로
공가산으로 들어가는 오후 5시 마지막 셔틀버스시간이 맞추어 입구에 도착하였다. 입장료에 셔틀버스 요금까지 150위안이었다. 노인 할인은 없었다. 잘 포장된 길을 따라 3-40여분 달려서 제2영지라고 하는 온천마을에 도착했다. 방을 배정하는데, 모든 방을 도미토리로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부부를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중국고량주를 곁들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는데, 역시 한-두잔 술이 들어가자 이런 저런 불만이 터지고 큰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한테 부끄러운 일이어서 말려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단체여행에서 조금만 참으면 서로 좋은 여행 할 수 있는데, 아주 사소한 일로, 그냥 귀여운 실수 같은 것을 문제 삼으니 싸우게 되는 것이다. 저녁 먹은 후 일부는 온천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데, 역시 보기 드문 좋은 휴양소였다. 원시림 속의 깊은 계곡에 펄펄 끓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는 해라구빙천온천이 그 이름이다.
공가산 해라구 빙천 온천의 중간지점
온천지역 숙소(중국에서 가장 비싼 편임-도미토리도 1인 204위안)
크레파스가 많은 빙하모습(케이블카에서)
제8일째 아침 우리는 식사를 마치자 4영지서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7560미터 공가산 의 모습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일부는 걸어서 빙하지역 탐방을 떠나고.. 전망대는 눈이 내려서 미끄러웠으며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개와 구름이 짙게 깔려 산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꼭대기에 구름이 감겨있는 정상을 잠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엔 빙하의 시작부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곳에 세운 대형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케이블카 비용 150위안이 아까웠다.
공가산 5영지 전망대(광주에서 온 김성봉회원)
케이블카에서 현지인들과(한국에 오면 우리집에서 홈스테이하겠단다)
공가산 케이블카 노선 계곡모습
그 곳 간이 판매대에서 꼬치와 무국을 먹고 내려와서 걷고 싶었던 숲길을 따라 제3영지까지 걸어 보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니 길이가 60-미터도 넘을 것 같은 끝이 뾰쭉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호젓하게 숲길을 걷는 기분이 좋았는데 금새 셔틀버스가 와 버렸다.
온천에 돌아와서는 저마다 여독을 풀기위해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며 한 밤중까지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출발해서 청뚜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 휴식날인 것이다. 온천에는 숙박자 아닌 일반 여행자들이 무리로 몰려와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제9일 아침에도 일부 부지런한 회원들은 온천욕을 즐기기도 했는데, 아침을 먹은 후 곧장 청뚜로 돌아와서 금리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식사도 각자 알아서 해결했던 것이다. 호텔에서 방을 배정하고 보증금 없이 30여명의 방을 예약해 준 친절한 직원 미스유를 불러내어 그가 안내하는 훠거식당으로 가서 오랜만에 사천성의 특식 매운 맛을 톡톡히 보았다. 그의 집은 청뚜에서 3시간 거리나 되어 일이 끝나면 호텔 직원숙소에 머문다고 했다.
청뚜 무후사 금리거리
제10일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항공권을 구입해 준 여행사직원의 실수로 하마터먼 일부회원이 돌아 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려 무사히 전원 귀국할 수 있었다. 내가 정한 생활지침이 淸淨心是佛이어서 항상 맑고 깨끗하게 살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이를 가상히 여기신 신께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깨우치고 돌보아 주신 것으로 믿으며, 더욱 자중하고 낮은 자세로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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