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가보려 하던곳
어느 날
용띵투러(永定土樓)를 찾아 나섰다.
廈門에서 서쪽 내륙으로 약150km.
시내에 번듯한 호텔이 없는 아주 시골 동네다.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오토릭샤가 대중교통이다. 1위안.
티코만한 낡은 자가용이 하루에 300위안을 달란다.
호텔 옆에서 장사하는 젊은이가 호텔프런트 아가씨에게 통역을 해 주어서 깨끗한 자가용을 하루 빌렸다.
세곳을 들러보기로 하고 280위안.
중형승용차 새차가 왔다.
振福樓가 있는 마을까지 1시간. 입장료 40위안
진복루
3층 토루인데 맨 위층에만 창문이 있다.
辰福樓
진복루 소개.
진복루 내부 사당.
정문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있다.
外環樓.
토루들은 두겹 또는 세겹으로 건물을 짓는다.
외환루.
진복루는 3층 토루다.
토루안에 正東과 正西에 우물이 있다.
팔괘의 원리에 따라 토루를 지어 이렇게 우물을 배치했단다.
내환루 옆에 있는 서쪽 우물.
동쪽 우물.
土樓群.
이 토루는 四環樓인데 중앙이 사당이다.
진복루의 굴뚝.
토루의 1-2층에는 창이 없다. 外侵에 대비해서 건물을 그렇게 지었단다.
1층에 몇게의 주방이 있는데 굴뚝도 2층 높이에서 짧게 뽑았다.
光裕樓.
광유루는 四角土樓.
광유루 소개.
振成樓.
1912년에 완공된 가장 잘 보존된 4층 원형 토루다.
건평이 5,000평방미터에 이른다..
진성루 소개.
진성루
토루들.
承계樓全景.
원형의 승계루와 옆에 있는 四角토루.
승계루는 1628년 - 1644년(明代) 까지 16년간 지어졌으며 1709년(淸代)에 落成했다.
4층에 四環樓로 402介間이며 둘레가 229.34m이다.
토루는 漢나라가 망하면서 황하유역에 살던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남으로 이동해와 황무지를 개간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아가던 客家들이 唐나라 때 부터 창궐한 도적들을 방어하고
폭풍, 지진등 자연재해에 대비해 원형 또는 四角形의 폐쇠된 공간인 土樓를 지어 많게는 수백명까지 집단생활을 시작했다.
이 客家土樓는 明나라 때 주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양식도 다양해졌다.
현존하는 대표적 양식은 圓中有方式, 三堂四落式, 궁전식으로, 주건축자재가
현지의 질 좋은 진흙이므로 "土樓"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全樓의 핵심적 위치는 中央에 모셔진 "祖堂"으로, 종교의식, 결혼이나 喪事 등 큰 행사장소로 쓰였다.
大家族 小社會를 구성하는 객가토루는 외부침입 방지와 태풍, 지진 등 천재지변에 대처하는 기능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족장들로 구성된 지도체계를 갖추고 있어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도모했다.
1층에는 중앙에 사당이 있고주방, 창고, 가축우리 등이 있으며 2층 이상에 침실이 있다.
2층에는 수백명이 연회를 할 수 있는 공공장소가 있는 곳도 있다.
토루 안에는 우물, 욕실 등이 있고 선생을 모셔 글을 배우는 학당도 있다.
굴뚝은 지붕가까이 까지 뽑아 올려 연기가 낮게 퍼져 나가도록 설치했다.
외벽은 이 곳의 진흙으로 만든 큰 벽돌이며 견고하다.
내부는 목재로 지어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창문은 3층 이상에 만들어 외침에 대비했고 대문은 2개 또는 3개만 만들어 방어를 용이하게 했다.
대문은 밖에 철판을 대었고 대문 안쪽에 우물을 만들어 火攻에 대비했다.
현존하는 토루는 약 20,000개에 이른다고하며 복건성에만도 사각루가 400여개, 원형토루가 360여개가 있다고 한다.
*.客家.
중국은 복잡한 혈통과 문화구성을 가진 다민족국가다.
황하유역에 자리잡은 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언어와 문화를 통일하면서, 특히 한나라가 재통일한 후
민족적 공감대가 형성 되었고 이 때부터 漢族이라는거대 민족이 탄생하여 지금은 중국 인구의 95%가 한족이란다.
이렇게 중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족은 漢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다시 통일할 때 까지 약 400년동안 전란기를
시작으로 5차례에 걸쳐漢族의 大移動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관료출신과 학식있는 사람들을 따라 가족단위로 또는 마을단위로 전란을 피해 보다
안전한 남쪽지역으로 이동하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남방의 기후에 맞는 농작물을 재배하고
중원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고 현지의 문화를 흡수하여 효율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중원문화가 토착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풍속을 지켜나가고 언어역시 고대 중국어
로 생각되는 특수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이 客家라고 불리우는 특수집단을 형성하게되었다.
漢族大移動經路圖.
제1차는 後漢이 망하고 魏晉남북조시대 전란기에 양자강 중하류의
안휘와 강서 북부로,
제2차는 唐末 黃蔬의 亂 등으로,
제3차는 南宋末 金人의 침입과 元나라가 들어서면서,
제4차는 淸나라 초기(강희제)부터 중엽(건륭제)까지,
이 때에는 客家人의 제2차 이동이 이루어 지는데,
한줄기는 전란으로 폐허가 된 사천성으로,
한줄기는 심천, 홍콩, 마카오 등 광동성의 동남해안지역과
해남도, 대만 그리고 동남아와 세계80여개국으러 번져
나갔다.
이들 객가는 여자들이 농사일을 맡아하고 남자들은 자녀교육과 사업을 주로 하였다.
사업수완이 탁월하여 중국 내외에서 유태인과 필적할만한 재력가로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전세계에 약 1억명이 분포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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